설교자료/에베소

[엡3:20] 복된 자화상

'코이네' 2022. 12. 1. 21:51

 복된 자화상

에배소서 3:20-21

 

 

 

자화상이란 자신의 얼굴을 자기가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고흐나 렘브란트 같은 화가는 자화상을 그린 인물로 유명합니다. 사람들은 자화상을 보고서 화가의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마음의 상태가 얼굴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화상이 안정되고 차분한 그림이라면 화가의 상태가 안정된 상태일 것이고 어딘지 그늘지고 불안함이 있다면 마음이 평온하지 못함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행복한 모습일까요 불행한 모습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그림으로는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으로 자신을 그려놓은 자화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자화상의 모습에 따라 삶이 건강하기도 하고 병들어 있기도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한 자화상보다는 병든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삶을 밝게 살아가며 남에게 베풀어주는 건강한 자화상이 없기에 온갖 범죄가 난무하고 정신적인 비정상적인 자기 평가와 좌절감이라고 하는 감옥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의 자화상은 생후 60개월(5)까지의 생활의 영향을 받고, 12세까지 거의 그려진다고 합니다. 이때의 생활이 부모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고 건전하면 건전한 자화상을 갖게 되고 이 때 가정이 불행했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병든 자화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상담자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대조적인 두 여자에 대한 자화상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사례입니다. 한 여인은 알코올중독자이며 피해의식을 가지고 늘 불안하고 거친 성격에 쫓기는 듯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성격장애자이고 다른 여인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고 남에게 베풀기를 즐겨하고 안정된 지극히 모범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상담자가 가장 어릴 때 기억나는 경험이 있으면 얘기를 하라고 하자 불행한 여인은 -자신은 여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계모가 들어왔는데 아주 포악한 여자였습니다. 어느 날 계모가 밖에 나가면서 이 어린 것에게 밥을 해놓으라고 하였는데 밥을 태워먹었습니다. 계모가 들어오더니 험한 욕을 퍼부으면서 머리채를 잡고 때리고 밀어서 비가 와서 덜 마른 마당에 넘어졌는데 얼굴에서부터 옷까지 흙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모양을 하고 하도 서러워서 울었는데 그 모습이 이 여인의 자화상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자기를 생각하면 흙을 뒤집어쓰고서 한스러움에 서러워하는 그 모습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주스런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니 행복할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잊기 위해 술을 가까이하고 자신을 학대하고 인생을 어둡게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밝게 살아가는 여인은 어렸을 때 기억이 자기 집이 과수원을 했는데 싱그러운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과일나무 사이로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는 아침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풍요함과 신선함을 맛보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을 생각할 때마다 신선한 아침에 과일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가슴 벅차게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따사롭고 포근한 사람으로 부자는 아니지만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처럼 마음속에 자신을 그린 그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자화상은 어떻습니까? 건강하십니까? 아니면 병들었습니까?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불안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괘도에서 이탈돼 있는 불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안전한 자궁 속에 있다가 태어나게 되면 불안하여 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뱃속에서 엄마의 심장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엄마의 가슴에 귀를 대면 엄마의 뱃속에서의 안정을 맛보고서 평안을 느낀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떨어지면 웁니다.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같이 있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가 된 후에 채워지지 않는 허무가 마음 깊숙이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에 빈 방이 있는데 이 방은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가 있는데 이 방이 비어있으면 다른 방이 아무리 채워져 있어도 불안을 느낀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불안합니까? 마음에 병든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는 것이 자신이 없습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 분만이 여러분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여러분! 마음의 병이 있습니까? 상처난 과거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까? 병 때문에 낙심하십니까? 미래가 암담합니까? 주님께서는 오늘도 주의 종을 통하여서 여러분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도움의 손길을 펴고 계십니다.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는 이 사실 자체로 만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습니까?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고 여러분을 모든 저주와 병고에서 실패와 불안에서 건져주시기 위함이 아닙니까?

(53:5-8)‘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내 모든 과거의 죄가 못 박혔습니다. 내 무지와 저주와 병과 가난이 못 박혔습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러분! 예수를 믿는 것은 값싼 감상이나 인격의 도야가 아니라 세상 만물의 창조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값비싼 희생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화상을 복된 것으로 갖기를 바랍니다.

나는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다.

어느 누구의 말처럼 "나는 행복 자로다"

"내 맘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네 주님은 내 맘에 구주 되셨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믿음 뿌리 내리고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 주의 시절을 쫓아 구원 열매 맺으면 주의 영화로운 빛 너를 보호하리니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

 

예수를 믿는 여러분은 과거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어두움은 물러갔습니다. 여러분의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벧전 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 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 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담대하고 자신 있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과감히 삶을 투자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화상을 복되게 가지시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의 어려움을 만나도 여러분의 자화상을 복되게 가져야만 합니다. 조금만 안돼도 나는 팔자가 어떻다는 둥 자신을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팔자니 운명이니 사주니 하는 것은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환경으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더라도 결과적으로 마음속에 부정적인 함정을 판 것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을 무척 고통스럽게 보냈기 때문에 남자는 전부 아버지 같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할려고 했는데 교제기간 동안에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던 남편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술주정을 하며 손찌검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었기에 목사님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왜 이렇게 팔자가 기구합니까? 친정아버지가 술주정이 심하여 늘 술을 마시고 와서는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하며 우리를 키웠고 우리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할 때가 되어서 아버지 같은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남편 역시 그런 사람을 만나다니요? 하나님은 너무나 불공평하십니다" 이 자매에게 목사님이 말하기를 "자매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운명을 탓하고 남편을 원망하지만 실은 자매님 자신이 그런 운명 속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자매님은 남자들이 모두 자매님의 아버지 같다는 잘못된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돌보며 가정에 충실한 남편을 마음속에 그리기보다는 술 먹고 난폭하게 손찌검이나 하는 게으른 남편을 마음속에 그려 왔습니다. 그것이 자매님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구하는 것을 통하여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과 생각과 기도하는 자세를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매님의 운명을 지금이라도 바꾸려면 먼저 자매님의 마음속에 있는 함정이 메꾸어지고 마음의 생각이 주 안에서 올바르게 될 때 하나님은 자매님의 생각을 바탕으로 자매님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라고 충고를 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나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3:20-21)‘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엄청난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16-19)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은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20절에 뭐라고 말씀하고있습니까? "온갖 구하는 것에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이-하나님"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화상을 위대하게 가졌다고 해서 여러분 스스로도 우스울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조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이 믿고 투철하게 나아가면 이루어 내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매주 교회에 꼭 출석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열심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믿음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열심을 가지고 있는 뜨거운 믿음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입술로 고백하는 행동이 부족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없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100세된 아브라함과 90세된 사라를 도와주실 때 그냥 도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들이 있겠다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도 사라도 웃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요 사라의 나이 90세여서 인간적인 이성과 지식으로는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기 위해 비상작전을 쓰셨는데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가르쳐주신 바라봄의 법칙이었습니다.

밤중에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내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늘의 별들을 헤아리게 하시고 그 별들의 모습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가슴에 자손들의 영상을 그리게 함으로서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바꾸어진 생각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오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고백하게 하여 들리는 믿음, 밖으로 나타난 믿음, 눈에 보이는 믿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기 위해 그들의 이름도 바꾸셨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많은 민족의 조상' 사래는`사라-여주인'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 "사라!" 그들은 서로"아브라함" "사라"라고 부르며 그들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을 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였고 감각적인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 위에 서서 믿음을 입으로 시인함으로써 속에 있는 믿음을 밖으로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백을 들으셨습니다. 마귀도 들었습니다. 불신앙의 사람들도 들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여 밖으로 드러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고백된 믿음 위에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뒤 그들은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축복 받은 귀한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은 복된 모습을 그리면서 희망에 넘치는 삶을 꾸려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