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23:25] 회칠한 무덤을 파헤치라

'코이네' 2022. 10. 22. 11:52

 

회칠한 무덤을 파헤치라

 

본문 : 마태복음 23:25-27

 

 

 

예수님께서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신랄한 공격을 하였읍 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을 이처럼 준엄하게 비난한 일이 거의 가 없었읍니다. 예수님은 음행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도 용서하여 주셨고, 반 민족적 매국도당으로 지탄을 받던 세리 삭개오의 집을 찾아 가셔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축복하셨고, 십자가에 함께 달 린 강도를 향하여 낙원으로 초청하시던 분이셨읍니다.

 

그런데 이러 한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회칠한 무덤을 파헤치라. 독사의 자식들아 ! "하고 가흑한 책망을 하셨읍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던 사람들 이었읍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가혹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바리새인들의 신앙 생활 때문 이었읍니다. 그럴듯한 신학,엄격한 도덕율,하나님 왕국에 대한 열 정 등이 모두 회칠한 무덤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속마음 은 썩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문자를 믿고 율법 조문은 어기지 않았으나 그 성경이나 율법의 근본 정신인 쟁 명에 대한 사랑은 염두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때부 터 전승된 관습을 기탄없이 받아들이면서도 아브라함이 가졌던 순 수한 신앙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정신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 바리새 '란 말은 헬라어의 '파리사이]? ( feptJtt ot ) 에서 온 말인데 그것은 분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엄격히 구별하였읍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도 거룩한 영역에 서 자신을 다스리며 이방사람들과 사마리아인들과는 사귀지도 않았 고, 의복,음식까지도 분별하였으며, 하물며 았을 자리까지도 함부 로 하지 ?는 행동 전반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것을 구별하게 되어 결국은 교만하고 옹졸하고 허식이 ?은 비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 던 것입니다. 매사에 거룩거룩으로 일관된 가식된 생활이었다 할까 요? 그들은 스스로 천국은 자기들의 것인 양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매사에 거룩한 저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보다 세리나 창녀들이 먼저 천국에 가리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오늘도 이 비판의 작업은 ?임없이 지구상의 모든 교인들에게 계 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잘못된 신앙은 이런 비판을 받고 있 읍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땅에저 인간으로 사셨읍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셨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 은 종교인들은 하늘 높이 올라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행위를 자 행하며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마치 천사인양 거룩 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리를 향해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 주님께서는 '이 바리새인들아, 이 회칠한 무덤을 파헤치라'고 하는 엄한 경고를 우리에게 하시고 계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도 스스로 정통을 독점하려고 하며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고 자부하면서 거룩한 모습을 드러내는 일 들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읍니다. 그 속에는 온갖 이권과 교만과 파 당 싸움이 도사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외면한 채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바리새적인 교회가 있읍니다. 자칭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독점해 버린 바리새인 들에 게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인잔편에 서셔서 저들과 대결하며 저들의 회 칠한 무덤이 칼을 꽂아 파헤쳐 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아성인 예루살렘을 강도의 소굴이라 하셨고, 그웅 대한 건물들이 꿰허가 될 것을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셨읍니다. 회칠 한 썩어 냄새나는 유대교인의 무덤의 껍질을 벗기고 그 썩은 무덤 속의 부활의 생명을 불어 넣어 생명의 종교로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교회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본레의 생명 을 잃어버리고 회칠한 무덤처럼 되어 가고 말았읍니다. 초대 교회 저 마가의 다락방에서 탄생한 하나님의 거룩한 교휘는 교회당이 없어도 생명이 약동하는 교회가 되었읍니다. 골방에 모여 도 찬송과 감사와 감격이 있었고 토굴 속에 들어가도 생명이 약동 했으며 저들이 모이는 곳마다 교회의 건물은 없어도 생명의 종교로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했으며 저들이 가는 곳이면 사자굴이나 죽음 이 와도 두려움이 없이 복음을 전했읍니다.

 

이러한 생영력 있는 교회는 A. D. 515년 콘스탄틴 황제가 칙령 으로 국교화하면서 기독교는 타락하기 시작했읍니다. 세상의 썩은냄새를 맡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늘의 면류관 보다 땅의 면류관에 더 욕심을 냈고 영광스런 주님의 음성보다 땅의 사람의 것에 귀를 기울였고 하늘의 저 영원한 집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땅의 집 을 짓는데 급급하는 타락된 중세교회가 되고 말았읍니다. 말로만 하 니님께 영광이지 모든 영광은 교황이 독차지 해 버렸고, 말로만 복 음이지 율법의 줄에 매여 온갖 신음 소리로 뒤흔들렸읍니다. 중세 시대의 사두개파 유령은 법왕권이니 성직권이니 하는 것으 로 나타났고 바리새의 유령은 공적 사상이니 교회법이니 하는 것들 속에 도사리고 앉아서 하늘로 치솟은 고딕 건물은 생명이 떠나버린 무덤으로 전락시켰던 것입니다. 이런 유령들은 잔인한 화형과 종교 재판으로 그 무덤 위에 회칠을 하는 셈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은 l5l7년 마르틴 루터의 심장을 통하척 터졌읍니다. 여기에 저 터져 나온 불길은 굳어진 무덤의 컵질을 부수고 근대의 아침을 맞는 새역사의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 읍니다. 아버지는 광산업을 하였고 생활은 빈곤한 편이었읍니다.그 는 문학석사를 받았으며 아버지의 요청으로 법과대학을 나왔읍니다. 하루는 친구와 같이 길을 가는데 벼락이 떨어져 친구가 죽었읍니다. 여기서부터 그는 죽음의 문제를 심각하게 접하게 되었고 이 문제로 심히 염려하다가 드디어는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수도원 에 들어가 경건과 고행과 선행을 하여도 마음 속에 죄의 문제는 해 결되지 아니했읍니다. 당시 교황 레오 lo세는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완성하기 위하여 속 죄권을 발매하였읍니다. 이처럼 타락되고 부쇄된 기독교의 상황을 방관할 수 없어 드디어 루터는 9개조의 조문으로 된 토론을 제안 하는 글을 빗덴벨그 성당 정문에 붙였는데 이것이 바로 l5l7년 l0 월 31일이었읍니다.

마루틴 루터는 드디어 성직자 회의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았으나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보롬스회의에서 나는 양심과 성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나의 신념을 취소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읍니다, 결국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장을 받았으나 그는 파문장을 불살 라 버렸읍니다. 회칠한 무덤같이 썩어 냄새나는 중세 교회에 참 생 명 운동을 일으킨 것이었읍니다.

신앙의 모든 권위는 [성경]에서만 찾아야 하고 인간의 모든 구원 은 공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 며 하나님 앞에서 모든 신자는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만인 제사 론]을 부르짖은 것입니다.

중세 교회가 하나님을 교회당 안에 가두고 율법의 줄로 매어 인 간의 교권 안에 유폐시켜 놓으려 할 때, 하나님은 성서와 함께 말씀하시는 분' 이심을 그는 외쳤던 것입니다.

 

칼 흘이란 유명한 신학자는 말하기를 루터는 하나님을 하나님되 게 하셨다'고 하였읍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 지금도 이 역사의 현장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밝힌 것입니다. 이러한 극적인 작업은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읍니다. 한국 교회에도 이러한 회칠한 꾸덤처럼 되어가는 교회사에 루터 와 같이 햇불을 든 사람이 있었으니 그 분이 바로 장공 김 재준 박 사입니다. 한국 장로교회를 정통이라는 그러한 교권 안에 가두고서 모든 교회가 바리새인처럼 되어 갈때 신앙의 횃불을 들고 일어난 분이 김 재준 박사요, 이 운동이 기장의 탄생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정통이라는 교리로서 남을 저주하고 징계하면서 그리스도를 교권에 가두어 놓으려는 그릇된 신앙이 오늘도 한국 교 회에 바리새적으로 괴롭히고 있읍니다. 회칠한 무덤처럼 되어가는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끊임없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겸손이 있어야 겠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는 우리 교회를 향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느 서양의 교회를 비판하는 풍자 작가는 예수님은 오늘의 교회를 보시면서 '나와 상관없는 교회여 회칠한 무덤을 파헤치라 ! 외치다가 오늘의목사,장로의 손에 붙들려 또 십자가에 죽을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원래 바라던 교회는 이런 교회가 아니었읍니다. 예수 님께서 그토록 심각하게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의 종교 행위가 언제 회칠한 무덤처럼 되었을까요 ? 오늘 이 시간 나 자신에게 이런 음 성이 임하고 있음을 깨달아 회개하는 심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무덤에 회칠한 것입 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읍니다. 히브리서 l1장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 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자기를 찾는 자 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였읍니다. 성서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하여 신앙의 선진들이 걸어간 위대한 삶의 모습을 잘 그려놓고 있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읍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과 삼백 년 동안 동행했읍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에 경고 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하셨읍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아들 이삭을 드렸읍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을 떠났읍니다. 흥해를 건?읍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저들의 행위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믿음으 로 하였다는 사실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읍니다. 사람의 행위를 앞 세움이 아니라 성서는 항상 믿음을 앞세워 기록하였읍니다. 믿음 없이도 착한 일을 할 수가 있읍니다. 성공할 수도 있읍니다.

 

믿음없이 자신의 의를 앞세우는 것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나 이 것은 회칠한 무덤에 불과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길가실 때에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 앞에 엎드렸읍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간절한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쳐다보면서 말했읍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난 다음 고개를 프덕이시며 말씀하셨읍니다. ,간음하지 말 라. 살인하지 말라. 도덕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네부모 를 공경하라 하였읍니다.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믿음을 가졌다 고 하나 그래도 그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하시고, .네 집에 돌아가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빈손 들고 나를 따라 오너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I, 하 셨읍니다. 부자 관원은 기가 막혔읍니다.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빈손을 들고 예수님을 좇으라니..... 부자 관원은 슬픔에 찬 얼굴로 말 없이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읍니 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보아라.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 다 더 힘드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서 물었 읍니다. 그러면 누가 천국에 가겠읍니까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할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구원받기 위해무엇을 하여야 되는 줄 알았읍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행위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 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 lO : 3)고 말씀하셨읍니다. 인간이 구원받 는 것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무슨 수단이나 방법이나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읍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읍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5 :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5 :23)라고 기록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들을 사 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읍니다. 예수님은 이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 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 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믿음과 순종과 사랑으로 받아들이 지 않고 어떤 율법적인 행위, 의식적인 행위, 신학적인 행위,자기 공로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칠한 무덤입니다. 오늘날 인간들도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자기의 행위로서 무엇을 행하여서 공로를 세우려는 삶의 태도는 하니님 보시기에 가장 가증스럽고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이떻게 책망하셨읍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여, 너희가 박하와 회양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 다'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을 조상이라 자랑하면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버린 유대 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 음으로 하지 않을 때 회칠한 무덤이 될 것입니다.

 

들째,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신앙행위는 회칠한 무덤에 블과함니다.

사랑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는 가증한 것이요, 위선이라는 것 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사랑 없는 모든 덕목은 죽은 것이고 무가 치한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읍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 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 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지식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 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 라.' 예수님은 사랑이 없는 형식의 껍데기만 남아 인간을 얽굽.매어무 거운 짐만 지우는 바리새인들에 게 '남에게 무거운 짐만 지우는 자' 라고 하였읍니다. 바리새인들이 종교 형식으로만 살아 가듯이 현대 교회의 신앙 생활도 내용을 잃어가고 있는 데 비극 이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 현대 교회를 이렇게 풍자하였읍니다. 현대 교회는 극장이다. 거룩한 쇼를 상연하는 무대다. 성도들은 시간이 되면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름다운 음악과 위로의 기 도와 죄를 사해 주는 듯한 속량의 설교를 듣는다. 그리고 다시 죄악 의 거리로 돌아간다. 헌금을 입장료 내듯 한다. 관중은 최신식으로 장식된 극장을 찾듯이 시설 좋은 교회를 찾는다. 오늘 한국 교인은 큰 교회를 좋아한다. 세상에서 온갖 잡탕을 하 고서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 때문에 천당 입장권을 얻어야 겠기에 대교회 사람 숲 속에 숨어서 속량의 은혜극만 즐기는 유랑 교인이 되어 간다. 교인은 관중이 되어 간다. 보수를 받고 예배극 을 돕는 단원은 늘어가나 진정한 희생과 사랑의 성도는 날로 그 수 효가 줄어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나, 이웃을 사랑하고, 성도 간에 사랑하는 삶의 교제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는 회칠 한 무덤처럼 되어 간다고 탄식하였읍니다.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을 율법에 매인 바리새인으 로 잘 설명해 주고 있읍니다. 허랑방탕한 아들이 거지꼴이 되어 살 아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큰 잔치를 떼풀었읍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이러한 처사가 몹시 언?았읍니다. 그리고 이 렇게 불평하였읍니다. '여러해 동안 소자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섬겨 말?을 어긴 일이 없는 나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신 일이 없거늘 창기와 더불어 재산을 탕진해버린 자식이 돌아왔기로 이 무 슨 잔치이냐 ?'고 불평을 하였읍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읍니다. 사랑이 말라버린 현대인에 게는 동생을 향한 눈물도 관심도 없읍니다. 세상을 향한 인정도 었 읍니다. 흑, 여러분 가운데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이 있읍니까?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 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데 일 찍부터 주를 섬겨온 나는 왜 이모양일 까? 하고 생각하는 이런 분 말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맙시다. 선을 행하는 그 자체가 바로 보상입니다. 아버지에 대해 불평을 한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조용한 음성으로 책망하십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이 동생은 죽었다 살아 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 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냐 ?'하였읍 니다. 아버지의 지극히 크고 넓은 사랑을 망각한 아들에게 주는 책 망이 이 말씀 속에 깃들어 있읍니다.

 

셋째, 부활의 소망이 없는 자는 회칠한 무덤입니다.

이 땅위에 무수한 종교가 무덤에 회칠을 하고 있읍니다. 공자, 석가, 마호메트 모두가 무덤이 있으며 그 무덤을 아무리 미 화하여도 회칠한 무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이 없읍니다. 그분은 무덤을 깨뜨린 분입니 다. 그리스도는 부?하셨읍니다. 무덤에 죽음으로 갇혀있지 않고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도의 모든 소망은 하늘 나라에 있읍니다. 부활 영생이 없는 신 앙은 회칠한 무덤입니다. 만일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이 몸을 아무 리 아름답게 꾸며_도, 좋은 옷을 입히고 아름다운 명예로 ?난다 할 지라도 무덤에 회칠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무덤의 존재가 아 닙니다. 죽음을 미화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서 영생하는 자들이올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자는 회칠한 무덤입니다. 괴테가 말한쌔로 '부활, 영생의 소망이 없는 자는 아무리 화려한 성공을 하였을지라도 처량한 나그네에 불과하다'고 할 것입니다.

결코 생명이 없는 일에 회칠을 하는 일을 되풀이 하지 말고 무덤을 깨는 부활의 생명을 지니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여러가지 화장품을 가지고 맛사지를 하고 화려하게 가 꾸어도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라면 무덤에 회칠하는 것이요. 결국 회칠한 무덤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 서울 거리에는 회칠한 무덤 들이 길거리에 많이 보입니다. 그곳에 현흑되지 맙시다. 믿는다고 하면서 정신을 잃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맙시다. 

 

회칠한 무덤같은 세속의 인간들, 또 믿는다 하면서도 회칠한 무 덤처럼 죽은 심령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얘기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생명입니다. 교리나 전통이나 신학의 이론이 아닙니다. 그 것은 다듬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위에 우리의 회칠한 무덤을 깨트려야 합니다.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안 됩니다.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회칠한 무덤 속, 썩고 냄새나 는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악을 성령으로 소멸합시다. 회칠 한 무덤(마음) 속을 말씀의 칼로 파헤치고 성령의 불로 새롭게 합 시다. 여기서만이 그리스도의 위대한 삶의 승리가 있고 영원한 생 명력 있는 신앙이 움터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