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23:13] 화를 당할 사람들

'코이네' 2022. 10. 8. 11:43

 

화를 당할 사람들

 

성경:마 23:13-36

 

 

1.서 론

신약성경은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축복에서 시작해서 축복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마태복음을 보면 마태복음 5장에 팔복으로 시작하여 오늘 본문인 23장에는 여덟번에 걸친 ‘화있을진저’즉 저주로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성경에는 축복과 저주의 양면성이 다 나옵니다.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율법에서 ‘하라’는 형태는 그것이 축복받는 비결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반대로 ‘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하면 우리에게 저주가 임하고 화가 되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본문에 ‘화 있을진저,화 있을진저’하는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정말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간곡한 말씀이기도 합니다.이 시간에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5장의 팔복과 23장의 여덟번의 화를 비교해보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겠습니다.

 

2.본 론

(마태복음 5장의 팔복과 23장의 여덟번의 화-저주의 비교)

(1)마태복음 5장 3절과 23장 13절입니다.

5장 3절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이요”라고 했습니다.축복의 내용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본문 23장 13절에는 “화 있을진저……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자가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613개의 율법을 만들고 거기다가 울타리 율법을 더 만들어 놓고는 자기들도 다 지키지 못하면서 교인들에게 지키도록 강요를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천국문을 닫고 그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들도 못들어가게 막았습니다.

 

(2)마태복음 5장 4절과 23장 14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아,나는 죄인이다.하나님,나는 정말 죄인입니다’하는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신다고 했습니다.이 말씀은 본문 14절과 짝을 이룹니다.본문 14절이 우리말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어성경에 있는 것을 번역해보면 “화 있을진저 너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여 너희는 경건한척 하고 길게 기도하면서 과부의 집을 삼키는도다 너희들에게 더 큰 심판이 있을 것이라” 이렇게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이 사람들은 위선자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칭친을 받으려고 길거리에서 오래 기도했습니다.그러나 이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과부들의 집을 탐했습니다. 예외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마음이 착하기 때문에 약한 것이 특징입니다. 특별히 과부가 된 분들은 약합니다. 그때 성직자들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가서 ‘집사님,권사님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하고 얘기를 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이단종파 가운데서는 그런 돈있는 과부들만 찾아다니면서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저주가 있겠다고 했습니다.

 

(3)마태복음 5장 5절과 23장 15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천국에 간다는 말입니다.그리고 그것 뿐만 아니라 그 가문이 번성해서 땅을 차지할 것을 말했습니다.그런데 본문 15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교인을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돌아다니며 선교활동를 했습니다.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즉 그들도 지옥 자식입니다.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기독교는 장사가 아닙니다.우리가 선교를 해야 하지만 남이 세워놓은 탑을 헐면서까지 한다면 그것은 장사꾼입니다.

 

(4)마태복음 5장 6절과 23장 16-22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절에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만족함을 얻는다고 했습니다.그런데 본문 16절에서 22절을 보면 이것과 대조가 되는 말씀이 나옵니다.그 당시 그들은 맹세하는 일을 자주했습니다.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맹세하면 그것은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맹세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과,성전의 금과,제단의 것을 가지고 맹세를 했습니다.바로 물질을 얻기 위해서 이들은 맹세라고 하는 것을 사용했던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속여 물질을 얻기 위해서 맹세를 하였다 그말입니다.이런 사람들은 배부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만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도 빼앗김을 당한다고 그랬습니다.

 

(5)마태복음 5장 7절과 23장 23,24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7절에 보면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랬습니다.그런데 본문 23절과 24절을 보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했습니다.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십일조 생활을 보이기 위해서 큰 밭이 아닌 모퉁이나 울타리 등에 심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조그마한 것,세부적인 것에까지 십일조를 내면서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즉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는 말입니다.의(義)=공의(公義),인(仁)=자비(慈悲),신(信)=(信仰) 이것이 바로 종교의 본질입니다.그런데 이것은 다 버렸습니다.이것은 십일조를 내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본문에 보면 “이것도 행하여야 하고 저것도 행하여야 할지니라”했습니다.보다 더 중요한,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사랑을 버리고 이런 것들을 행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 외식입니다.이들은 약대는 삼켜버렸고 하루살이는 걸러냈습니다.조그만 한 것,행해도 되고 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지키고 정말 큰 것은 하나도 안지켰습니다.한 마디로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6)마태복음 5장 8절과 23장 25-28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본문 23장 25-28절의 내용을 보면 외적으로는 순전하지만 내적으로는 부패하고 썩은 것을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25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는도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주님은 아주 크게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이스라엘의 사람들은 바위에 자연적으로 생겨진 동굴이나 혹은 굴을 파서 가족묘지로 씁니다.그런데 1년에 한 번씩,유월절 직전에 거기에 회를 바릅니다.마치 헐고 오래된 아파트에 페인트를 칠하면 새집처럼 보이듯이 묘지에 회를 하얗게 칠하면 깨끗해 보입니다.그러나 속에는 썩은 시체,썩은 뼈 같은 것들이 가득한 냄새나는 곳입니다.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심령이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하고 경건한데 속에는 냄새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7)마태복음 5장 9-12절과 23장 29-33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12절에 보면 두 가지가 나옵니다.하나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사실 그 내용을 보면 천국을 차지한다는 말이나,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사실은 같은 뜻입니다.화평케 하는 자나,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습니다.그런데 본문 26절에서 36절의 내용을 보면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그들은 바로 화 있을진저 마귀의 자녀들이 된다고 했습니다.마태복음 5장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말씀하고 있고,23장에서는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결 론

 

본문에서 여덟 번에 걸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라고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그리고 율법을 지킨다고 조그마한 것은 지키면서 큰 것은 지키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인 것은 아무렇게나 하면서 비본질적인 것에는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기에 나온 말씀이 2000년 전에 살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을 향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이 말씀은 바로 오늘날 보수적이고 정통이라고 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주님은 이 경고를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94년도를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경건하고 잘 믿음으로 살려고 한다면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그런 기회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는 위조지폐가 많이 있습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돈이 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위선이 있다고 해서,기독교 안에 위선이 있다고 해서 기독교 전체가 잘못됐다고 이렇게 말을 해서는 물론 안됩니다.이제 중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순간순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방을 아무리 깨끗하게 소제해도 그 다음날 보면 또 더럽습니다.이것은 우리의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마음의 방,심령의 방도 자꾸만 더러워집니다.그래서 계속 청소를 해야 합니다.순간순간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살펴서,호리라도 ‘화 있을진저’라는 저주의 말씀에 해당되는 자들이 아니라,모두가 다 축복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