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인가(5) "복을 끼치며 살도록 부름 받은 존재"
창 12:1-3
설교 : 김명혁 목사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 다섯 번째 설교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사람은 "동행하며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고 기쁜 일이고 신이 나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3월 1일 우리 교회에 한 달 전부터 새로 나오는 5살 난 어린 아이와 손을 잡고 도드람 산 꼭대기까지 함께 올라갔다가 함께 내려왔습니다. 산엘 가든지 바다엘 가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동행한다는 것은 재미있고 즐거운 일입니다. 사람은 지음을 받을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고 부부와 동행하고 이웃과 동행하며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고 이웃과 동행하며 즐겁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1. 복을 끼치는 사람과 해를 끼치는 사람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기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여 나를 사랑의 도구로 써 주소서!" "주여 나를 축복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런 기도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 다운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사람은 누구인가?" 다섯 번째 설교를 합니다. 사람은 "복을 끼치며 살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복을 끼치며 사는 사람도 있고 해를 끼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수 많은 노예들에게 복을 끼치며 살았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해를 끼치며 살았습니다. 여수 순천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공산 게릴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지만, 자기 두 아들을 살해한 게릴라 청년을 용서한 손양원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며 살았습니다.
장기려 박사란 분이 계셨습니다. 의학계에서 존경을 받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날 새벽 1시 45분경 85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평생토록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면서 살았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치료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무료로 진료했고 무소유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한국의 슈바이쳐"라고도 불렀고, "살아 있는 작은 예수"라고도 불렀습니다.
강변교회 초기에 이성진 집사님과 한영숙 집사님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적 감화와 복을 끼쳤습니다. 우리 안진국 집사님이 이 집사님과 한 집사님의 헌신적인 신앙에 감화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하는데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황규민 집사님은 변호사 일을 하면서 너무나 바쁘게 지내지만 대치 중학교 학생들에게 복을 끼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가정과 환경 문제로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극진한 관심을 나타내며 그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앙 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타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신송태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 지역의 많은 고려인들과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신 선교사는 현지인들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들과 다투거나 싸우지 않으면서 겸손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속이 상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 가슴을 치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신송태 선교사에게 온갖 중상 모략을 다 퍼 붓고 교회를 떠났던 50여명의 신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습니다. 신 선교사는 현지인들과 현지 문화를 존경하며 현지인들을 가슴에 품으면서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결국 신 선교사가 현지인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고 카자흐스탄 국무총리 명의로 된 감사 증서까지 수여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복을 끼치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해를 끼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번 같이 불러 부르십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주여 나를 사랑의 도구로 써 주소서!" "주여 나를 축복의 도구로 써 주소서!"
2. 복을 끼치며 살도록 부름 받은 아브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아, 아브람아"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목적이 있었습니다. 세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목적은 떠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분부했습니다. 둘째 목적은 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셋째 목적은 복을 끼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저를 부르실 때도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부르십니다. 첫째 목적은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라고도 분부하시고 바벨론을 떠나라고도 분부하십니다. 불신앙의 처지와 삶에서 떠나라고 분부하십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을 따르던 삶에서 떠났고, 간음하던 여인은 간음의 삶에서 떠났고, 마태는 부정축재의 삶에서 떠났고, 대도 조세형씨는 큰 도둑의 삶에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부르실 때 첫째로 떠나라고 분부하십니다. 우리가 빠져 있던 거짓과 정욕과 부도덕의 죄악 된 삶에서 떠나라고 분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첫째 목적입니다.
둘째 목적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부르신 자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복을 주시되 큰 복을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시는 두 번째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100배의 복을 주셨고, 야곱에게는 분에 넘치는 복을 주셨고, 요셉에게는 만사형통의 크나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되 큰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큰 복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고향을 떠난 저에게도 하나님은 분에 넘치는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저를 부르시는 또 하나의 큰 목적이 있습니다. 셋 번째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우리들이 떠나는 것도 중요하고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세 번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복의 도구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는 궁극적인 목적은 너를 인하여 땅의 모든 족족이 복을 얻는 데 있는 것이니라."
아브람이 처음에 그 말씀의 뜻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는 데는 관심이 많지만 남에게 복을 끼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지금 아브람 한 사람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에게 큰 복을 주시마 약속하시던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관심은 어두움과 불행 가운데서 죽어 가는 수 많은 이방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브람을 바라보시면서도 실상은 저 멀리 서 죽어 가는 조선 사람들, 중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 북한 사람들을 포함한 땅의 모든 족속들을 바라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자기의 뜻을 거듭 거듭 나타내 보이셨습니다(창22:18, 26:4,28:14).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남에게 복을 끼치는 일을 싫어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는 사역 수행하기를 거부했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이기적인 인간들의 불행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오늘 날 부르심을 받은 우리 한국교회의 신자들의 이기적인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 복을 끼치며 삽시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저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며 사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복을 나누어 주지 않고 자기 혼자 소유하려고 할 때 그 복은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 복은 없어지고 맙니다. 복은 나누어 줄 때 그 가치를 발휘합니다. 복이 증가됩니다. 우리 허충강 선교사와 이미화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복을 러시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살고 있습니다. 박윤애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복을 항가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저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많은 복을 북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살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고 싶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는 복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만 할 뿐입니다. 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면 우리는 그 복을 받아서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 만 합니다. 복을 남에게 전달하면 전달할 수록 하나님께서는 통로인 우리들에게 복을 가득히 가득히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들, 복의 통로의 역할을 하십시다. 복을 나누어 주면 우리들에게 복을 더 많이 부어 주실 것입니다. 지난 1월 18일 두 동생을 살려내고 천사가 된 여덟 살 소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이던 수연양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후진 트럭에 치이게 된 6살짜리 4살짜리 두 동생을 밀쳐 내어 살리고 자기는 트럭에 깔려서 숨지는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수연양은 동생들에게 생명을 끼치는 짧은 삶을 살고 죽었습니다.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었습입니다. 어쩌면 복을 끼치는 삶을 살려면 희생을 각오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을 끼친 우리 주님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복을 끼치면서 사람 답게 사십시다. "주여 나를 축복의 도구로 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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