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죽음
창세기 23 : 1-20
설교 : 황규철 목사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1953년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오드리 햅번은 한편의 영화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녀는 화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연예인의 삶이 그렇듯이 그녀는 늘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화려한 무대의 삶보다는 무대밖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며 많은 사람의 친구로, 가난하고 억눌린 불쌍한 사람들의 벗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는 시간이 생기면 자신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녀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그는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당신에게는 또 다른 손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는 자신을 위한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손길인 것을!"
오늘 본문은 한 여인의 죽음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여인의 죽음과 나이를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사라에 대하여 그의 죽은 나이를 기록하고 있고 그녀의 죽음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그녀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았습니다. 그녀는 좋은 어머니였고 좋은 아내였습니다. 물론 사라에게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녀의 삶을 열국의 어미로, 믿음의 여인으로 성경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사람의 인정을 중요시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정받고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장1절로 6절에는 부녀들을 위한 교훈의 예로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고 불렀고 순종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르겠습니까?
같이 살다보면 헛점도 알게 되고 나쁜 버릇이나 습관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자신의 남편을 주라고 불렀습니다.호칭만 주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그녀는 실제로 자신의 남편에 대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라의 위대한 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사라를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라가 문제점도 가지고 있었지만 사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은 그녀를 인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인정은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눈은 겉만을 보지만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권사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권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분입니다.
그 권사님이 하루는 꿈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너무 반가와서 주님께 가까이 가서 주님을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그러시더랍니다.
놀란 권사님이 한국에서 큰 교회를 시무하시는 목사님을 가리키며 ㅈ 목사님은 아시지요하니까 주님께서 "나는 그도 모른다"라고 하시더랍니다.
당황한 권사님은 한국의 유명한 기도원 원장이신 ㅇ목사님의 이름을 대며 ㅇ목사님음ㄴ 아시지요하니까 주님께서 "나는 그도 모른다"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권사님이 큰일이다싶어서 마지막으로 영락교회를 시무하셨던 한경직 목사님을 물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그는 내 아들이다"라고 하시더랍니다.
신빙성이 없는 꿈이야기입니다마는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눈에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인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라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견딜수 없는 슬픔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고 이땅보다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갔는데 왜 울고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연약해서야 우리의 신앙의 모범이 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종종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을 불신앙으로, 때로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실 것은 주님도 나사로의 죽음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11:35)
불신앙입니까? 믿음이 없어서 우셨습니까?
누군가를 위하여 울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불쌍히 여겨지고 긍휼한 마음이 들어서 마음에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눈물이 말라서는 안됩니다. 눈물속에는 언제나 은혜가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흘리는 값싼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눈물! 이 시대의 불법한 행실로 인한 통곡의 눈물!
히5:7절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심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눈물은 하늘이 열리는 응답의 열쇠입니다. 하늘의 보고(寶庫)를 여는 열쇠입니다.
아브라함은 슬퍼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어나 사라의 매장지를 찾습니다. 그가 머물고 있던 헷족속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비행장에 가보면 입국하는 사람이나 출국하는 사람이나 신고를 하게되어 있습니다.
신고서에는 제일먼저 신분에 대하여 묻습니다.
당신은 방문자 입니까, 영주권자입니까, 시민권자입니까?어디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습니까?직업은 무엇이며 다음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출국신고서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떠날 때에 만일 이러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나는 이땅에서 방문자로 살고 있는가? 영원히 살 것 처럼 이땅에 주인으로 시민권자로 살아왔는가? 이땅에서 주로 무엇을 하며 보냈는가?
천국에 들어 갈때도 입국신고서를 써야한다면 나의 신분에는 천국 방문자인가? 체류허가자인가? 천국시민권자인가?
가장불행한 사람은 이 땅에서도 방문자로 살고 천국에서도 방문자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땅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제대로 할 것도 못하고 천국에서도 방문자 취급을 받는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우리는 이땅에서는 비록 나그네로 살고 있지만 주님계신 그곳에서는 시민권자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시민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여권에 도장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시민의 도장입니다.
무엇입니까? 성령의 인침이 있어야 천국시민입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백성이라는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자신의 아내를 묻을 매장지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때에 겨우 무덤하나 소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보는 땅을 네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 질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평생에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과 아내가 묻힐 무덤하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다고 성경은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부터 21절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소출을 얻었습니다. 창고가 모자라 창고를 짓고 몇년동안 충분히 먹을 양식이 비축(備蓄)되었습니다.
그는 즐거워하며 '내 영혼아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네 영혼을 찾으시면 너의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되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시면 네가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뉘것이 되겠느냐?"
무디성경학교의 교수였던 하브너 교수에게는 사라라는 이름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애석하게도 부인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동료교수가 아침에 식당에서 그를 만나서 하는 말이 '부인을 잃으셨다니 뭐라고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하브너 교수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는 것은 잃은 것이 아닐세'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유명한 작가 C.S 루이스는 친한 친구의 죽음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은 나의 이웃집과 같다. 왜냐하면 나의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에 그는 말하기를'이제 천국은 나의 집과 같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나의 아내가 살고 있는곳이기 때문에'라고 말하더랍니다.
천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완전히 분리된 곳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천국의 삶을 맛보지 못한다면 우리의 천국은 요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 계시록 14장 13절에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죽음은 비록 슬픔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녀의 죽음은 하나님앞에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시민권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앞서가 우리의 선배들이 우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기꺼이 나그네로 살아 가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y 코이네설교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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