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3:16] 우리의 죄악과 하나님의 의로우심/ 이승구 목사

'코이네' 2017. 12. 13. 16:10

우리의 죄악과 하나님의 의로우심

(3:16-24)

설교 : 이승구 목사

 

 

 

이 땅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는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든지 간에 그 주제들로부터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생각하는 것이중요합니다. 인간의 죄악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배울 수 있을까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우리의 죄악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이중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요구하시는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말하며, 둘째는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형벌을 내리시는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말합니다. 우리도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따라 이 두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1.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인간이 철저하게 부패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음을 말하고 나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그 부패한 심성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 가운데서 사람이 수행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라는 식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교육적인 요리문답인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는 이 질문을 미리 제기하여 인간들의 부패한 심성에서 나오는 질문을 방지하며, 그런 질문에 대해서 미리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9). 그 대답은 한마디로 하나님에게는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사람들이 특히,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아담이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 가운데서 요구하시는 것을 다 행할 수 있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조건을 다 허락하셔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하시는 바를 행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게 만드시고 그런 사람에게 명령을 하신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람이 자신의 고의적인 불순종으로 자신과 모든 후손이 "하나님의 명령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능력을 상실한 책임이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는 잘못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옳고 바르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어그러지게 만들었고, 또 지금도 어그러진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죄에 대해서 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타고난 죄와 스스로 범한 죄들에 대하여 아주 불쾌하게 여기실 정도로 의로우십니다. 그의 의로우심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참아 보실 수 없을 정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하심을 잘 인식하고있었던 하박국 선지자는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1:1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본성의 성격상 죄를 묵과하실 수 없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하여 공정한 심판으로 형벌하십니다. 이 심판은 아주 공정하고 의로우신데 그것은 그의 본성이 의롭기 때문입니다. 그의 본성상 하나님은 의로운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가장 높은 의로우심에 대하여 범하여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에 대해서 사람은 가장 극심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 형벌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먼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전인으로서 범죄한 것이므로 형벌도 전인으로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말해야 합니다(11문에 대한 답). 몸과 영혼으로 범죄한 인간은 몸과 영혼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 전인이 받는 형벌은 시간내에서 받는 형벌과 영원에서 받는 형벌로 나눌 수 있습니다(10문에 대한 답).

 

(1) 시간 내에서 주어지는 형벌

 

일단 시간 안에서 주어지는 형벌은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받는 형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형벌의 내용을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 타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심판선고를 통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여자들은 수고하고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3:16). 또 하나는 여자들의 마음속에 남자를 지배하려는 소원이 있으나 결국에는 남자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우리 개역 성경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3:16)고 옮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절을 좀더 심리적으로 이해하는 옮김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도 좋으나, 이 말의 표현에는 후에 가인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는 말씀의 구조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와 연관해서 해석한다면(위에서 우리가 시사한 대로) 여자와 남자사이에 서로를 지배하려는 우위권 다툼이 있게 되리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협조하고 돕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관계로 변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투쟁, 만인의 투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남자에게 주어진 형벌은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게 되어서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본래 창조에는 속하지 않았던 모든 현실이 나타날 것에 대한 시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적인 악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질병, 자연의 부조화와 재난, 천재지변 등이 이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에는 이런 것이 있도록 의도되지 않았으나, 이제 인간의 죄악때문에 그런 일들이 따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고 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삶 자체에 대해서 일종의 양면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욕구가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마음 즉, 죽음의 욕구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죄에 대한 형벌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에 대한 우리의 기괴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 괴롭다고 해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난의 삶을 살다가 사람들은 급기야 죽게 되는데, 이것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주어진 것입니다.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로부터 취하여진 흙으로 돌아가는 일은 그렇게 취함을 입은 때부터 그렇게 돌아가도록 된 것이 아닙니다. 흙으로부터 취하여졌지만 인간은 아주 고귀하게 창조되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원히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이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과의 풍성하고 충만한 교제를 상징하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선언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에서 축출된 이유입니다. 범죄한 우리들 인간은 이제 하나님과의 교제의 영역밖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엄중한 선언이 이와 같은 식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2) 영원히 주어지는 형벌

 

그러나 죽는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다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영혼과 몸의 분리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과 몸이 받는 형벌이 끝나게 되면 그때부터 몸은 땅속에 들어가서 썩지만, 그 후에는 영혼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 사후 상태에서의 영혼의 고통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최후에 우리가 부활하여서 몸과 영혼이 함께 받을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면 그 영원한 형벌을 영혼이 미리 받고 있는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은 이 세상에 있을 때부터 계속해서 영원히 형벌을 받고, 몸도 이 세상에서도 형벌을 받고 또 죽어서 썩는 것도 형벌이며, 부활 후에도 몸으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여 범죄한 사람은 몸과 영혼에 대한 영원한 형벌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결론: 형벌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렇게 형벌을 받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심하시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타락한 인간의 심성은 분명히 그런 식의 생각을 해 나갈 것입니다. 마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것이 하나님의 너무한 처사라는 생각을 사탄이 주입시키자 최초의 여인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처럼 오늘 타락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이렇게 심판하시고 형벌을 주신다면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없다든지, 죄인은 결국 없어지는 것(멸절하는 것)으로 다 끝나고 만나든지 하는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 450여년전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작성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사고의 고귀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형벌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형벌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보지 못하거나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비하시지는 않으십니까?"고 묻고는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하십니다"고 대답합니다(11).

 

그러나 그들은 이 자비와 함께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옳으심을 분명히 보고 잘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 선배들의 신앙에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하심을 그의 형벌에서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