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2:15] 그렇다면 사람의 부패한 이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

'코이네' 2017. 12. 13. 16:07

그렇다면 사람의 부패한 이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

(2:15-17)

설교 : 이승구 목사

 

 

 

우리는 지난 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손상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그 원상의 인간은 선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그것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7문이 묻고 있는 "그렇다면 사람의 부패한 이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경험하여 친숙히 알고 있는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이 성향"(5문답)은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성향을 가지도록 만드시지 않으셨다면 도대체 본성의 이 부패는 어디서 온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1. 로마서 5장에 나타난 바울의 대답

 

바울 사도는 보다 중요한 복음의 진리인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표가 되신다는 소위 "대표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시사를 하여 그의 대답을 전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셔서 죄와 부패한 것이라고는 없던) 에 죄와 그에 따른 본성의 부패와 사망이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12),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16),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17),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18),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19)" 그러므로 바울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사망에 매여 있게된 일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한 사람이 우리의 대표로 행하던 때와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우리의 대표가 아니었다면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17),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18),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19)"와 같은 말들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바울의 생각에는 한 사람이 모든 인류의 대표로 행하던 때가 있었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그 한 사람이 "오실 자의 표상"(14)이라고 합니다. , 장차 오실 자가 우리의 대표이듯이, 이 한 사람이 우리의 대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그 한 사람은 자신의 대표로서의 지위 속에서 범죄하였고 불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의 대표로 범죄하고 불순종한 이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울은 그가 아담이라고 말합니다(14).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아담이 우리의 대표였다는 것입니다.

 

2. 아담은 어떤 불순종을 하였는가?

 

우리의 대표인 아담은 하나님에 의해서 고귀하게 지음을 받고서 온 세상을 잘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수행할 때에 한가지 유념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아담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인식과 존중 가운데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피조함을 받은 그의 마땅한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 의무를 다하면 그에게 놀라운 보상을 주시기를 기뻐하였습니다. 물론 그가 이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면 그는 하나님에게서 분리되고 그것은 곧 사망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알리시고 표현하시기 위해서 아담으로 하여금 다스리고 지키도록 하신 에덴 동산 중앙에 한 나무를 만드시고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금하시는 형식을 취하셔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2:17).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이 말씀은 이 나무의 열매에 무슨 독이 있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신 계시의 말씀에 주의하지 아니하고 사는 생활의 결국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므로 결국 죽음임을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 땅을 다스리는 일을 하게 하셨는지, 그 일을 어떤 원칙에 따라서 감당하게 하셨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금지의 명령에는 또한 놀라운 선언과 약속의 말씀도 들어 있는데 그것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사망과는 정반대의 것인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말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금령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 금령을 지킬 경우에 허락되어 있는 생명나무로도 상징되어 있습니다. 생명나무도 그 자체에 어떤 놀라운 생명의 능력이 있어서 사람의 생명을 유지해 주고 증진시키는 일종의 불노초나, 불사의 약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충만한 생명을 상징하는 일종의 성례전적 나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평소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계시를 얼마나 존중하며, 그 말씀에 대해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한 시금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존하며 그의 뜻에 따라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 나가면 그것이 복된 것이고, 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참 생명, 생명의 의미에 충실한 생명을 상급으로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하나님께 의존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을 주장하고 나아가는 삶은 소망이 없고 결국은 죽음뿐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궁극적 생명이냐, 궁극적 사망이냐 하는 것을 선택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말한대로 우리의 대표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창세기 3장의 기록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아담이 사망의 길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하신 나무의 실과를 먹었고(3:6), 이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 됩니다. 이에 따라 그는 곧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피하여 숨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형벌을 선언하십니다(3:17-19). , 그는 땅에서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고, 결국은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인 아담의 불순종의 결과가 이처럼 비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의 대표이므로 그의 비참함은 곧 우리의 비참입니다.

 

3. 대표 아담의 부패와 우리의 관계

 

우리의 대표 아담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살다가 죽게 되었고, 후에는 자신의 이 범죄에 대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불순종을 한 것이 우리의 대표로서의 지위와 대표의 자격으로 한 것이라면, 이런 상황은 그대로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한 사람 아담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이고, 그처럼 이 세상에서 고생을 하다가 죽어야 하게 되었으며, 후에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가지 사실 가운데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두번째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고난 중에 있고 결국은 죽는다는 현실은 누구나 인정합니다(물론 이것이 한 사람 아담의 우리의 대표로서의 범죄 때문임을 인정하는 이들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이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뿐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대표로서의 불순종에서는 물리적 죽음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영적인 사망과 후에 있을 영원한 형벌(영원한 사망)도 초래된 것입니다.

 

우리의 부패성은 이 중에서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영적 사망에서 나오는 현실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후에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음은 물론 계속해서 범죄하는, 또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중에 처하게 되었듯이, 우리도 역시 같은 상황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창조함을 받은 아담과 같은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불순종한 후에 처하게 된 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본래적인 성향을 가진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고, 고귀하신 하나님의 창조와 인류를 향한 그의 뜻에서 벗어난 불순종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4. 본성의 부패성의 정도: 얼마나 부패하였는가?

 

이 최초의 불순종의 결과로 우리는 본성이 부패하였고, 죄 가운데서 수태되고 태어나는 것입니다(7문에 대한 대답). 최초의 죄로 인한 본성의 부패와 최초의 죄에 대한 죄책(형벌받아 마땅함)을 우리는 원죄라고 부릅니다. 원죄의 첫 요소인 이 본성의 부패는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이에 대해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우리가 그 어떤 선도 전혀 행할 수 없으며 모든 악에로 향하는 성향을 가질 정도로 그렇게 부패되었습니까?"고 묻고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다시 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러합니다"고 대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8문답).

 

우리의 본성의 부패는 아주 괴악한 것이어서 그것은 우리로 그 어떤 선도 전혀 행할 수 없게 하는 것이라는 이 말은 우리가 악마와 같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것으로 인정하실만한 것을 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소위 시민적인 선, 자연적인 선은 부패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행해질 수 있으나(부패한 사람도 그 부모를, 그 자녀를 사랑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기도 하며, 나라를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온갖 희생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할 만큼 온전하지 않고, 오히려 죄와 부패에 물들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부패한 본성은 온갖 악에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것 조차도 악으로 물들어 있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가르켜서 전통적으로는 전적인 부패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는 모든 부분에 폭 넓게 미치는 부패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본성의 부패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일에 대해서 부패한 사람은 전적으로 무능력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만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을 정도록 우리가 부패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다시 낳아진 사람만이 이런 본성의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우리의 능력으로 이 본성의 부패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베푸신 일임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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