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근본 문제 : 하나님을 떠남
본문 : 창3:1~6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됨으로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전반적인 부실공사와 물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지어낸 참사였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와 기둥입니다. 이것은 어디에 지었느냐, 어떻게 지었느냐의 문제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둥이 단단히 서 있지 않은 건물은 외형이 아무리 화려해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집을 지을 때는 무너지지 않는 기초 위에 튼튼하게 지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석 위에 기초하고 견고하게 기둥을 세우고 아름답게 집을 지어가야 합니다. 오늘 다시 여러분이 어디에 집을 짓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을 떠받치는 기둥이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4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했습니다(시 18:31). 그러므로 산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기초하고 기둥 삼은 신령한 집을 지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 2:4-5). 모든 것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기초하고 그를 위하여 산 인생만이 아름답고 견고한 집을 지어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모든 인생은 창 3:1-6 하나님 떠난 문제, 로마서 3:23 죄의 문제, 요한복음 8:44 사단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문제는 누구나 직면하고 있는 문제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해결하십니다.
앞으로 3주간 인생의 근본문제와 그리스도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신 예수님을 살펴봄으로 우리 신앙의 기초를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삼고자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확신과 능력이 귀하신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이 말씀은 인간의 창조형태를 말씀해 줍니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이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막연하게 만물을 지으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지으셨습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새는 공중을 날아다니며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만물은 말씀으로 지으셨지만 인간은 손으로 지으셨습니다. 만물은 육체의 모양만 지으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을 하나님 닮은 존재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찬사와 인간만 영적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만물의 창조자 되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인간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가장 뛰어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지으셨습니까?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가 주신 축복 안에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떠나면 그와 동시에 모든 축복을 상실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2.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간은 그를 통해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신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한한 축복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경계가 되었습니다.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아니함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겸손히 자신을 피조물로 인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인간이 뱀을 통한 마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①마귀의 유혹으로 말씀을 불신앙함으로 떠났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 했는데 마귀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창 3:4). 마귀가 어떤 존재입니까? 요한복음 8:44에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하고 나아가 부정하게 하는 거짓말장이입니다. 속이는 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산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 말씀하는데 마귀는 ‘믿지 않아도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씀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②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마귀는 본래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리던 아름다운 천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스스로 교만해졌습니다. 어느 날 높은 산과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 하나님과 더불어 비기리라 하며 반역함으로 마귀가 되었습니다(사 14:13-14). 마귀는 자기가 타락한 방법과 동일하게 아담과 하와의 교만을 부추켜 범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지 결코 창조주가 아닙니다. 인간은 사람이지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행여 저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의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있지 않습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교만한 마음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마음입니다. 날마다 여러분을 피조물과 하나님께 마땅히 영광을 돌려야 할 자로 인정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의 축복과 평강이 여러분을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3.타락의 결과 저주가 인간에게 찾아왔습니다.
①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3-24)
②하나님의 신이 떠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③마귀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창 3
:14)
하나님의 신이 떠난 인간은 흙만 남았습니다. 육체만 남았습니다. 이때부터 마귀는 마음놓고 인간을 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④고통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까?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 속에 일평생 남편을 사모해야 하며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남자는 종신토록 노동의 수고를 하며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땅이 인간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화가 난 땅은 인간에게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저주받은 땅에서 땀흘리고 고통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생명 있을 동안에 계속되는 인간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⑤죽음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도 인간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범죄해도 인간은 죽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점에 있어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존재의 소멸을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존재의 분리를 말씀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금방 죽지 않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식물이 땅에서 뽑히면 금방 죽지 않습니다. 서서히 시들어갑니다. 가지가 줄기에서 잘려나가면 처음에는 싱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말라버립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식물이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는 순간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식물이 흙을 떠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가면서 죽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인간에게는 죽음이 운명처럼 찾아왔습니다. 모든 형태의 죽음은 존재의 소멸을 말하지 않고 분리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범죄 하는 순간 죄지은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죽음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은 인간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하나님이 없는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이 세 가지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인간에게는 이 세 가지 형태의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이 세 가지 죽음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죽어서 계속적인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어제 이중헌 집사님이 찾아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형수님이 신장병으로 일주일 간격으로 투석을 하며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안부를 묻고 하다가 병원에 계신 장주익 성도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교만한 인생을 살다가 중한 병을 얻어 육신은 고통받고 있지만 그 병을 통해 온 가족이 구원받게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집사님이 대학을 함께 졸업한 가장 친한 친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는 집사님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싶어는 했지만 집안에서 장남인지라 부모님이 반대하고 제사문제 때문에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취업하지 않고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졸업 2주일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통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가 지옥에서 처참한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생각만 하면 고통스럽기 이를 데 없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불치병을 얻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엄청난 죄를 지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예수 믿게 된 사람이 행복하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는 목욕탕 사우나실에 들어가면 5분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지옥을 생각해 봅니다. 이곳보다 천배 만배 뜨거운 불꽃, 그리고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형벌의 장소, 그곳에 가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뭇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목사의 직임을 맡겨 주신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4.인간은 다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 떠나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얼마나 불행한 삶인지 모릅니다. 물을 떠나 죽어가고 있는 물고기 신세가 인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할 때 줄기에서 잘려져 바싹 말라 죽어 가는 가지의 모습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불행을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앞에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찾아온 온갖 불행은 하나님께 되돌아감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인간이 스스로 열어갈 수는 없습니다. 구원문제에 대하여 인간이 얼마나 참담한지 아십니까? 지옥의 그 엄청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고 껄껄 웃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인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살후 2:10-11). 하나님 떠난 인간은 지혜, 지식마저 어두워져 하나님의 뜻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되었습니다(고후 4:4-5). 행여 조금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하나님 아닌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운명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구원에 대한 대 전제 하나가 생겨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 스스로 구원을 성취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건져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외딴 섬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그 등대는 어둡고 캄캄한 밤에 길을 잃은 배에게 안내자가 됩니다. 길을 잃은 배는 등대의 불빛을 보고 포구로 안전하게 피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넓고 넓은 밤바다에서 등대는 꺼져있고 길 잃은 배가 항구를 찾아간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인간에게 구원의 길은 하나님이 열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문을 닫아버리면 영영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구원의 길을 하나님이 제시하셔야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인간은 영적으로 죽어 버렸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죽은 육체가 활동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죽어 있는 영은 하나님을 향하여 활동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위하여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은 육신적인 노력에 불과한 것이지 영적인 노력은 되지 못합니다. 육체의 일은 영적인 일과는 현저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②천국을 값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8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평생을 다한 그 어떤 노력도 지옥의 심판을 면하고 천국을 얻을 수 있는 값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쪽에서 볼 때 구원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절망적이기에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구원의 길이 필요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 하자마자 인간을 구원할 대책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전되는 원죄를 갖지 않은 여자의 후손이 와서 마귀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고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됩니다. 구약성경에는 수많은 예언서, 선지서가 있습니다. 그 성경들이 여자의 후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 하나님께 닿아있고 사람으로 사람에게 연결되어 다리가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님 외에는 달리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그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또 다른 구원자는 없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 존재는 분명한 자기 소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의 소속이 마귀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갈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자녀가 갑니다. 아버지 집에 자녀가 삽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제 이중헌 집사님 말씀이 밤새도록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가장 친구가 대학원 졸업 두 주일을 남기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렇게 허망하게 지옥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치병에 걸려서라도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게 더 낫잖아요. 지옥에 가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요. 그렇게 지옥 가느니 차라리 구원받은 사형수가 더 행복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무엇해야 합니까? 복음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족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세요. 포기하지도 마세요. 갑자기 어느 날 죽음이 찾아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저의 가정에도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저의 주변에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더 이상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가 살아 있을 때만이 구원의 기회가 됩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날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옵니다. 그들이 죽은 뒤에 땅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전도합시다. 찾아가 구원합시다. 정말 예수님만이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 이름을 전합시다. 정말 예수님만이 영원한 천국의 부요를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된다고 믿는다면 예수를 전합시다. 우리에게 있는 생명을 나누어 줍시다.
우리의 가슴이 오직 복음으로만 불이 붙고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증거 하는 충성된 지체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자료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12:1] 복을 끼치며 살도록 부름받은 존재_김명혁 목사 (0) | 2022.03.24 |
---|---|
[창26:23] 가정의 영광_김창인 목사 (0) | 2020.04.23 |
[창23:1] 사라의 죽음 / 황규철목사 (0) | 2018.02.06 |
[창18:1]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 황규철 목사 (0) | 2018.02.06 |
[창3;16]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0) | 2017.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