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9:5]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소서

'코이네' 2020. 11. 24. 21:31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소서

본 문 : 시 9:5-14

 

 

시편은 한절 한절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영적 체험이 한데 모아진 내용으로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아름답고 정교한 건축물처럼 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절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심령에 영적인 새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1. 여호와는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본문 “(시9: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모두 책망하시고 악한 자는 멸하십니다. 그 이름은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흙에 기록된 글자처럼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시9:6)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셨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시9: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그의 보좌에서 심판하십니다. 과거에도 오늘도 앞으로도 하나님은 영원히 그의 보좌에서 흔들리지 아니하시고 정직한 심판, 공의로운 심판을 하십니다. 여호와의 홀은 옳고 그른 것을 항상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시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욕에 치우치고 또 인간의 이기심으로 정직하게 판단하지를 못합니다. 또 우리는 양심이 바르지 못하여 이 세상의 어떤 정치적인 판단이나 사법부의 판결, 매스컴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얼마나 부정을 일삼고 부패했습니까?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정치가는 절대로 오래갈 수 없습니다. 모두 바람에 날아갑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권력을 잡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모든 판결을 다시 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으로 보시고 다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무슨 일이든 인간의 방법으로 하면 안됩니다. 기다렸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결정대로, 믿음으로 따라가야 그 자리가 영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이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는 항상 정직하게 판단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여호와의 홀은 흠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육심을 버려야 합니다. 물질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았는지, 인간의 수단으로 얻은 것인지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2. 환난당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십니다.

 

본문 “(시9:9)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오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라고 했습니다. 옛어른들이 말하기를 “개를 쫓아도 구멍을 두고 쫓으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궁지로 몰면 안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너무 몰아붙이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압제당하고 환난당하는 사람에게 산성이 되십니다. 상대방에게 어떤 약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서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는 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우리가 잘못했을지라도 막아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어떤 위협이 오더라도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을 가리지 아니하시고 다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9:11)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시온은 성전입니다. 교회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찬송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고 가거나 말씀만 듣고 가만히 가면 안됩니다. 찬송을 꼭 불러야 됩니다.

예배 시간에는 찬송을 부르기 전에 나와야 됩니다. 찬송을 부른 후에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어떤 분은 성경은 열심히 읽는데 찬송을 안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는 하는데 찬송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늘 찬송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구약 시대 때부터 찬송을 하게 하셨습니다.

(시9: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불쌍하고 가난하고 외롭고 어려운 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들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3. 사망의 문에서 일으킴을 받아야 합니다.

 

“(시9:13)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핵심이 되는 요절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망의 문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오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바로 사망의 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아무리 집을 잘 짓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 잘산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웃으신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망의 문이 바로 곁에 있지만 주님께서 우릴르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자기 능력으로 자기 지혜로 사망의 문을 피해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능력이 발달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옛날보다도 훨씬 더 아슬아슬한 사망의 문 앞에서 우리가 잠자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안고 재워주셔야 안심할 수 있지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이 왜 좋은지 아십니까? 내가 사망의 문에 거할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불치병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만 금방 죽게 되고, 우리에게는 생명이 영원한 줄 아십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망으로부터 마음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은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 사망의 문 앞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망의 문을 조심스럽게 잘 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붙잡고 인도해 주셔야 됩니다. 우리는 “사망의 문에서 보호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망의 문 앞에서 잠을 자고, 사망의 문 앞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여기는 안락하고 궁궐같은 집이니까 문제가 없겠지”하고 생각하지만 역시 그곳도 사망의 문앞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식이 있고 지위가 높아도 사망의 문 앞에 있습니다. 그 앞에서 큰소리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생은 사망의 문 앞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큰 기업도 마귀가 한 번만 역사하면 다 사망의 문 앞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겸손함으로 사망의 문에서 일으킴을 받아야 합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셔서 오늘도 머리털 하나 상함이 없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