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베소

[엡1:1] 성도들은 실제 인물들이다

'코이네' 2018. 7. 5. 17:49

성도들은 실제 인물들이다

본문: 엡1:1~2

 

 

바울은 특정한 무리들 즉,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1:1)을 염두에 두고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성도들'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잘 알려진 어군(語群)에 속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카도쉬'이며 헬라어로는 '하기오스'에 해당합니다. 이 말들은 대개 '거룩하다, 성화되다, 혹은 성도들'이라고 번역되는데, 종합해보면 '성도들'이란 하나님이 구별하셔서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계시의 시초부터 성도들로 이루어진 한 인종을 배출하실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해 출애굽기에서부터 완고하여 반역을 일삼는 그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19:6).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지시는 분명합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11:44-45). 이 명령은 신약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이 말씀이 성도들에게 준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택함을 받은 신약의 성도들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벧전 1:16).

 

부모가 종종 자녀들에게 󰡒네 나이 값을 하라󰡓고 말하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성도답게 행하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우리들이 거룩해질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거룩하게 행할 것을 지시하십니다. 물론 모든 성도가 온전히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어떤 성도도 하나님의 신령한 거룩의 수준에 맞게 행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성도라고 부르십니다. 구원을 주실 때 하나님은 그들을 성도의 위치에 두십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각 성도들은 이미 영적으로 거룩한 삶을 위한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의 모든 거룩하지 못한 부분들을 꾸준히 제거해 가십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살 때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요? 그것은 성도들의 실상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죄가 없는 완전한 자들이 아닙니다. 바울은 문제 많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그의 첫번째 서신의 서두에서 그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고전 1:2). 그런데 본 서신의 뒷 부분을 보면 고린도 교인들은 분열과 성적 문란에 빠졌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온전함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었습니다.

 

성도들이란 반드시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빌립보 교회를 매우 성화된 사람들의 공동체로 여기기도 하지만 빌립보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 역시 분열의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2:2). 분열의 원인은 아마도 이기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권고하였습니다(2:3).

신약의 성도들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도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의 방문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이미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교회는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영적 지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1:7).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가 되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면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사역하였습니다. 이 기간은 바울이 한 교회에서 사역한 가장 긴 시간으로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쳤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회자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헌신적인 디모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직도 미래의 일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1:4; 5:26).

용기를 내십시다. 사도들의 직접적인 계시의 가르침 아래 있었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온전히 성화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건축 공사장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공되기까지 성도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시키시려고 날마다 힘쓰고 계십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성도들󰡑은 이미 다 이룬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 그들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살아갈까요?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로서 삽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름으로 비범한 일을 행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성경과 교회사는 그러한 예들을 많이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모스는 드고아의 목자로서 용모는 시골 사람이었으나 행동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서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과 맞설 수 있는 강인한 선지자의 자질을 보셨습니다.

 

수백년 후에 주님은 평범한 유대인들 몇을 택하셔서 제자와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들 중 가장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의 고기잡이는 별로 성공적이지도 못했습니다. 사실상 그가 예수님의 지시를 따랐을 때에만 어부로서 가장 큰 수확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성격은 좋게 평가해 주더라도 좌우로 쉽게 흔들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도로 세우기 위해 성별하셨으며 오순절에는 많은 무리가 그를 통해 회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대 교회사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예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말 영국 중부 지역에 평범한 한 구두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죽 조각들을 모아서 지구본(地球本)을 만들고,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일개 구두수선공에 지나지 않았던 겸비한 윌리엄 케리(Willam Carey)의 마음을 움직여 현대 선교 운동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1세기 후에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한 소년이 주일학교에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 (Dwight Lyman Moody)였습니다. 그도 구두 판매 세일즈맨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구별하시자 미국과 영국에 부흥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큰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성도들󰡑이란 단어의 뜻을 좀더 밝혀 줄 수 있는 옛날 예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성도들이란 깊은 탄광에서 파낸 석탄 조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하의 어둠과 습기 그리고 거기서 발생되는 질병을 상상해 보십시오.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51:1)란 표현보다 더 적절하게 성도의 근원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캐낸 석탄은 다른 검은 석탄 덩어리들이 불길에 의해 이미 데워지고 있는 벽난로 속으로 던져집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도 어두운 지하 탄광에서 파내어진 다른 무리들과 함께 있게 됩니다. 신약 성경은 교회를 집합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ekklesia)이라고 칭합니다. 한 조각의 석탄이 주변의 불붙는 다른 석탄덩이들에 의해 곧 불타오르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가르침에 의해 영적으로 뜨거워집니다. 성경은 성도를 독립적인 개념으로 말하지 않고 항상 집단적인 무리로 표현합니다. 석탄 조각은 난로에서 옮겨지면 금방 식어버립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이지만 끊임없이 교회의 교제로 데워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10:25)라고 권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도들은 결코 나는 󰡒당신보다 거룩해요󰡓 하는 식의 그릇된 자기 의()에 빠진 어줍잖은 영혼들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별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