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베소

[엡1:12] 성령으로 인쳤다는 말의 의미

'코이네' 2018. 7. 5. 17:55

성령으로 인치심

엡1:12-14

 

세상에는 인침을 받은 남녀가 많이 있습니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출생 때부터 왕좌에 오를 사람으로 인쳐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예의 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경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의 이름은 존경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악명으로 인쳐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인자 잭'이라든지 아니면 그의 현대판인 '요크셔의 살인자' 등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으로 인쳐질 수 있지만, 성경은 영적으로 인쳐진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묘사하기를 '그 안에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1:13).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들의 기준으로 보면 별로 주목받을만한 사람들이 못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주목하십니다.

 

바울이 사용한 '인치다'라는 단어는 사회에서나 정부에서, 또는 상거래에서 흔히 쓰이던 일상 용어였습니다. 어떤 건물이 폐쇄될 때는 인침을 해둡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의 비결도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인봉되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물들도 인침을 받는데 미국 서부에서 불에 달구어진 쇠도장을 사용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곡식 부대도 소유권과 지불 약속을 나타내는 도장으로 인쳐집니다.

 

인침이라는 단어는 이렇듯 흔히 쓰이던 말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이 평범한 용어를 매우 고상한 위치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이 주님을 믿었을 때에 인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의 시제는 부정과거형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침은 확실하게 발생된 사건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성도들이 인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인침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는 것처럼 모든 믿는 자들은 성령으로 또한 인치심을 받습니다(5:1). 성경 어디에서도 우리는 두 등급의 기독교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핼라어의 해당 본문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보통 신자들과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특등 신자들의 구별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1:13의 말씀은 그같은 구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자체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십니다(16:8-11). 그분은 또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십니다(3:5-6). 사실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이 인치심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표지일 뿐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보증이기도 합니다(1:14). 인간과 세계를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이를 위해 모든 신자들 안에 신령한 보증인을 두셨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내 말은 보증수표와 같습니다󰡑라고 종종 말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의 보증수표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인이시라고 할 때 이 말은 단순히 성령님이 약속의 성취에 대한 서약에 불과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약서에 서명할 때 차후 지불을 약속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서약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약을 맺을 때 지불금의 일차 납부금을 함께 지불한다면, 이것은 나머지 금액도 다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보증하는 셈이 됩니다. 성령님은 신령한 약속에 대한 첫 납부금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나머지 금액도 확실히 지불하실 것입니다.

 

 

서명하고 인치시고 구출하심

 

이 구절들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신빙성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행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의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성령님으로 인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마지막 날에 우리들을 하늘로 구출해 가실 것입니다. 이제 󰡐인침󰡑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인침은 '안전'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치되셨을 때 의구심이 많은 유대인들은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무덤을 인봉했고 로마병사들을 세워 시체를 훔쳐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27:62-66). 그들은 무거운 돌문 위에 인을 쳐서 무덤을 단단히 지켰습니다. 죽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고소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사용된 󰡐󰡑이라는 단어 속에는 영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침에 의해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습니다. 성령님의 인은 도적질을 당하거나 파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미 지적한 대로 인침은 '신분의 확인'을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영적 문제아들인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비슷한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하나님의 인치심은 현대 목축 방법에서 유사한 실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소의 몸에 화인을 찍었지만 요즘은 고유번호를 새겨둡니다. 목축업자는 이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소가 생산하는 우유와 사료 등을 살펴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번호로 인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님으로 인치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절실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셋째, 인침의 또 다른 의미는 '확증'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 33에서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참되신 분으로 확증한다는 의미로 인쳤다는 표현이 쓰여진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문서의 진실성을 확증하기 위해서 도장으로 인을 쳤습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학 졸업장에는 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넷째, 에베소서 1:13-14에서는 상업에서 사용된 인침의 예가 나옵니다. 여기서의 인침은 '보증'을 뜻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고 했습니다(고후 5:5). 이러한 내용은 약혼반지를 연상케 합니다. 물론 사랑의 표현으로 주는 선물이긴 하지만 이 반지는 매우 중요한 약속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사랑과 장차 올 결혼을 증시하는 물적 증거물입니다. 이 약속의 상징은 결혼이 이루어질 때 그 의의가 온전히 드러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도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며 언젠가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집에서 살게 될 것을 약속하며 보증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이 우선적으로 위로와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훈계도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30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열거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음욕(19), 거짓말(25), 분냄(26), 도적질(28), 더러운 말(29), 노함과 분냄(31) 등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시는 영적 빛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신 주님에 대해서 우리 영혼을 일깨워 줍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셔서 죄를 드러내시고 깨끗이 치워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이 성경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조명해 주십니다. 우리들을 인치시는 성령님이 바로 이 빛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불순종으로 성령의 빛은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 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