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베소

[엡5:1] 지혜로운 삶

'코이네' 2018. 7. 8. 01:10


지혜로운 삶

성경:에베소서 5:1-10
 
 

지혜로운 삶의 완성은 한 마디로 바울이 본문 1절에서 말한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궁극적 이상이며 최고의 목표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있는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본이란 받아서 좋은 본이 있고 받아선 안될 본이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훌륭한 웅변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즉 이론과 모방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그들은 훌륭한 웅변가는 훌륭한 웅변가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본받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경가 바클레이는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계에서 가장 최고의 표준을 내세웠다”고 본문을 평가했습니다.
 본문이 제시하고 있는 바대로만 산다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가장 최고의 표준대로 사는 사람이 되며 가장 지혜로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1.사랑하며 사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바울은 본문 1절에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라고 했고 2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그의 사랑으로 죄도 용서받았고 허물도 사함받았고 영생의 선물도 받았습니다.다시 말하면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알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을 실천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첫째,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본문 2절에서 바울은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습니다.구약 시대 때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렸던 것처럼 예수님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 사건은 빌립보서 2:7에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했고 8절에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습니다.그토록 자신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으려면 우리 역시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주님과 그의 몸된 교회와 형제들을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어느 외국 잡지에 “예수와 닮은 사나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어떤 사람의 사진이 게재된 일이 있었습니다.얼굴,눈빛,수염,턱 모양이 예수와 너무나 흡사했습니다.그러나 그 사나이는 전과 4범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나이였습니다.얼굴만 닮는 것은 참 닮음이 아닙니다.우리가 주님을 닮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닮는 것이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둘째,용서하신 사랑입니다.
 방종한 딸이 어느 날 말없이 어머니 곁을 떠나 가출을 했습니다.어머니는 딸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사진을 넣은 벽보를 만들고 그 사진 밑에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넣었습니다.그리고 그 벽보를 딸이 숨어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도시의 골목마다 붙였습니다.그 벽보를 보는 사람마다 이상히 여겼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가출한 딸이 거리를 지나다 그 벽보를 보았습니다.
 햇빛에 바래고 비에 젖고 먼지가 묻은 벽보이긴 했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그 한 마디가 타락한 딸을 변화시키고 감동시켰습니다.딸이 돌아와 어머니의 품에 안겼을 때 돌아온 딸을 가슴에 안은 채 그 어머니는 속삭였습니다.“얘야 고생 많았지,지금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어느 날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쯤 용서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일곱 번쯤 하는 것은 어떨는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 물음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이 말은 하나님의 한없고도 완전한 용서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는 것은 490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도 무한한 용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용서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내가 남을 미워하면 우선 나 자신에게 유익이 없습니다.미워하는 내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그리고 영적으로는 기도와 찬송과 기쁨을 빼앗아 가 버리고 맙니다.그리고 나 자신의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도 손해가 됩니다.그러나 용서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고 기쁨이 찾아옵니다.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2.악한 삶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 바울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했고 4절에서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했으며 7절에서는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은 한데 묶어 종합하면 악을 멀리하고 악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어떤 심리학자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모방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 살게 하셨을 때 인간은 하나님을 본받고 교제하며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인간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마귀를 닮기 시작했으므로 그것이 타락과 파멸의 원인이 되었습니다.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닮을 자유도 있고 마귀를 닮을 자유도 있습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는 의지도 있고 마귀와 손잡을 수 있는 의지도 있습니다.지금 이 시간이라도 설교가 듣기 싫다고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쳐 나갈 자유가 있는가 하면 말씀을 경청하고 은혜받을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악을 가까이 하고 악한 사람과 교제하면 자연히 악에 물들고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3에서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했습니다. 하이에나과에 속하는 동물 가운데 하이에나라는 동물이 있습니다.이 동물은 낮에 바위틈이나 움푹 패인 곳에 숨어 있다가 밤만 되면 어슬렁거리고 기어 나와 썩거나 죽은 시체를 찾아 나선다고 합니다.그래서 하이에나를 야행성 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더러운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더러운 행실만 찾아서 하는 사람,썩고 냄새나는 것만을 탐하는 사람들은 하이에나처럼 야행성 인간들입니다.빛의 자녀들은 어둠을 멀리하고 거기에 참예해서는 안 됩니다.

 

 3.빛의 자녀들처럼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빛이라고 말합니다.말라기 4:2에서 주님은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고 했고 요한복은 8:12에서 주님은 자신을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둠의 힘보다는 빛의 힘이 더 강합니다. 5천평의 넓은 공간을 드리우고 있는 어둠도 작은 촛불 하나면 밝힐 수가 있습니다.그러니까 내가 빛되신 주님을 영접하고 내가 빛의 자녀가 되면,내 영혼을 누르고 있는 어둠도 우리 가정과 우리 사회를 에워싸고 있는 저 암담하고 침울한 암흑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하고 물리쳐야 할 대상은 유혹 자체나 죄 자체가 아닙니다.그 대상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유혹하는 유혹자 인간이며 우리로 죄를 짓게 하는 조종자이며 흑암의 권세자인 원수 마귀인 것입니다.죄나 유혹은 비인격체이지만 마귀는 인격적으로 존재하면서 우리의 심령과 가정을 어둡게 만들고 침통하게 만듭니다.그러니까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모시고 그의 자녀가 되면 마귀의 사슬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날마다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젊은 집사님이 담배를 끊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명색이 집사라는 사람이 담배도 끊지 못한대서야 체면이 서질 않는다고 생각한 끝에 고심하다가 여름 휴가를 기해 보따리를 꾸려가지고 철원에 있는 모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자기 생각엔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담배를 끊을 작정이었습니다.그런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남들 다 받았다고 날뛰는 성령도 못받고 담배는 여전히 피우고 싶어서  숲속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피우긴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는 이왕에 결심하고 올라온 걸음이니 도중에 내려갈 수도 없고 해서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기도하는데,갑자기 “내버려라,내버려라”하는 음성이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깜짝 놀라 뭘 내버리라는 걸까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져보니 바지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더랍니다. 그는 그것을 꺼내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위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었습니다. 한탄강 물과 함께 떠내려 간 담배갑과 라이터처럼 그의 희미하고 흔들렸던 지난 날의 신앙 생활도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그에게 찾아왔고 그는 찬송하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날부터 담배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난다는 사실입니다.그 날부터 그는 바울이 본문 10절에서 말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살게 되었습니다.


 이미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려면 담배 때문에 고민하던 젊은 집사처럼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 14절에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고 말했습니다.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8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는 찾나니”라고 말했고 주님은 친히 마태복은 25:13에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그리고 하루하루 주님의 빛을 받으며 빛을 비추며 살아갑시다.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의 어둔 심령과 삶을 밝은 빛으로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더 이상 응달에서 야행성 동물인 하이에나처럼 숨어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빛 앞에 섭시다.그리고 빛의 자녀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