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8:1] 창조자 하나님을 찬양하라

'코이네' 2018. 1. 17. 18:34

창조자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편 8

 

 

시편 8편은 지휘자를 따라 깃딤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라고 주가 붙어있습니다. 깃딤이란 말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기타라는 말이 유래했습니다. 시편 8편은 기타악기에 맞추어 부른 다윗의 시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질문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누구냐? 라는 질문입니다. 두번째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이냐? 즉 나는 누가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요한 칼빈선생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이 인간에 관한 옮바른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이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셔야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우주와 자연세계를 통하여 그가 우리의 창조자가 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온전하게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우리의 창조자가 되시며, 우리의 삶을 성령님으로 이끄시며,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분이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하게 보여주십니다. 시편 8편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우리는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8편의 저자는 1절에서 말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아직도 온 땅에 위엄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습니다. 5억이 넘는 모스렘 교도들은 알라신을 섬기고 있으며, 3억의 불교 신도들은 부처상 앞에 엎드려 절하고있습니다. 6억이 넘는 힌두교 신도들은 수많은 우상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권력자나 물질을, 아니면 자신의 배를 우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참되신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원하셨으며, 우리의 삶과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이름, 위엄이 넘치는 그 이름이 온 땅에 충만하며, 하늘에도 그분의 영광이 가득함을 알고있습니다. 크리스챤 과학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우주를 확장 시켜나가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온 우주에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가득함을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온 우주에 영광과 위엄이 가득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즉 나를 창조하셨고 나를 사랑하시며 구원해주시는 나의 주님이 되십니다.

 

2-3절은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주는 어린 아이와 젖먹이를 통해서도 주를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주의 원수들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 잠잠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우리에게 어떠한 심오한 지식이나, 철학적인 사고나, 어떠한 과학적인 논리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어린 아이와 같은 겸허한 마음, 소박한 마음을 통하여 발견되어집니다. 예수께서 어느날 성전에서 병자들을 기적적으로 치유해주시자, 이것을 바라본 어린아이들은 놀라와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가 됨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학식이 많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부르자 분에 차서 예수님께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본문 말씀인 시편 82절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주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21:14-16)."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메시지는 소박하고 겸허한 어린이들과 같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전달 되지만, 비판적이고, 교만한마음에는 전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읽을 때, 우리가 비평자의 입장에서 읽을 때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 목마를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갈급한 심령으로 성서를 읽을 때,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가 있게됩니다.

 

어느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믿음 없는 교가 공개 강연을 통하여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강의실 뒤에서 강연을 듣던 어느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중년의 남자가 손을 들고 일어나 말하기를, 박사님, 다음에 박사님께서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내가 아는 바로는 (As far as I know)"라는 말을 꼭 부쳐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별로 학식이 없는 중년남자는 정곡을 찔렀습니다.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교수는 자기가 지금 알고있는 바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별로 배우지 못한 중년의 남자는 실상 박사님을 향하여, 선생님의 지식은 제한되어있습니다. 선생님의 제한된 지식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알수 없습니다. 어린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하기에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125절에서 "...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 18:3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3-5절을 읽겠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son of man)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care for)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다윗은 목동시절 들에서 양때를 치면서 한 밤중에 밤하늘에 펼쳐진 많은 별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맑은 밤 하늘에 다윗은 육안으로 약 5천개의 별들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4-inch의 렌즈를 가진 망원경으로 약 200만개의 별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Palomar산에 있는 200-inch의 렌즈를 가진 망원경으로 약 10억개의 별들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성능이 좋은 망원경으로 더 많은 별들을 관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의 하면 우주에는 약 일 천억개의 은하계가 있으며, 각 은하계마다 적어도천억개의 별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태양빛은 일초에 186,000마일즈를 갈수 있으며, 일초에 지구를 7바퀴 돌 수가 있습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빛의 속도로 8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빛의 속도로 지금까지 알려진 우주끝의 중간거리까지만 가는데 800억년이 걸린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우주는 지금도 계속 확장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사역을 지금도 계속하시고 있으십니다.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너무나도 광대한 우주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이란 너무나도 미미하고 왜소해 보입니다. 코넬대학교의 교수였던 세계적인 물리학자 칼 세이간은 천체물리학을 일반대중에게 쉽게 설명해준 분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우주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탐색하였다.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우주의 망각되어진 구석에 던져진 한 은하계안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유성위에 살고있는 존재임을 발견하게된다. 매우 비관적인 인간론입니다. 무한대한 우주속의 인간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미미하고 작아보이고, 미약한 존재 같습니다. 칼 세이간의 말을 빌리자면 광대한 우주의 한 모퉁이에 살고 있는 인간, 무한한 우주바다의 모퉁이 작은 해변가에 살고있는 인간들입니다. 세이간이 바라보는 인간의 운명은 매우 비관적입니다.

 

그런데 시편 8편의 저자가 바라보는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하게 광대한 우주는 최근의 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Bing Bang Theory즉 한순간의 폭발에 의하여 생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창조한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예술작품을 손가락으로 만들듯이, 하나님은 그의 탁월하신 솜씨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것입니다. 온 우주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의 손가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며, 그의 인장이 찍혔고, 그의 성품과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한히 광대한 우주속의 인간은 너무나 작아보이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우주의 은하계들보다 그의 자녀된 우리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하늘의 별들보다 우리의 영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돌봄)하시나이까?" 더 나아가서 시인은 말하기를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말은 기억한다는 말이며, 권고하신다는 말은 돌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지만 우리를 기억하시며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생각하시며 돌보실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5절에 보면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원어 성경에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 개역성경과 영어의 KJV, NIV같은 성경도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고대사회에서 국제공용어인 헬라말로 70인의 학자들이 모여 번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번역과정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보다 좀 못하게 만드셨다는 구절이 번역자들 생각에 좀 불경건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히브리성경에 기록된 말씀인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보다 좀 못하게 만드셨다"는 구절을 "하나님이 인간을 천사보다 좀 못하게 만드셨다"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한국 개역성경과 KJV, NIV같은 성경은 헬라말로 번역된 70인번역을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을 천사보다 좀 못하게 만드셨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최근에 번역된 표준새번역, 영어의 NRSV이나 독일의 루터 새번역에서는 원어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보다 좀 못하게 만드셨다"로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피조물가운데 오직 인간만을 그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우리의 머리위에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하실 정도로 무한한 값어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어느분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가치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수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 부족한 점을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강점, 가능성, 은사와 달란트를 발견하여 개발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수상을 지낸 골다 메이어 여사는 "나는 미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내 얼굴이 못생겼다면, 얼굴을 바꿀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녀는 외모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 은사, 달란트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개발하여 세계적인 여성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는 말은 왕권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자로 인간을 삼으시고 그에게 권한을 위임해주신 것입니다. 6-8절을 보면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자와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대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자연세계에 사는 생물체를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자연세계를 잘 보존하고 지켜야할 것입니다.

 

미국 인디안 수와미족의 추장이 1855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피어스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적이 있습니다.

워싱톤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백인들이 총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땅을 빼앗어 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내가 만일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한가지 조건을 내놓겠습니다. 즉 백인들은 이 땅에 사는 짐승들을 그들의 형제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입니까? 만일 모든 짐승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커다란 영혼의 고독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이 대지는 신에게 소중합니다. 그리고 대지를 해치는 것은 조물주에게 대한 모독입니다. 들소들이 모두 살육당하고 야생마들이 모두 길들여지며 성스러운 속이 인간의 냄새로 가득 찰 때, 그리고 산열매가 무르익은 언덕들이 수다스런 부인네들에 의해 더럽혀질 때 잡목 숲과 독수리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입니다. 당신들 백인이 만든 도시는 조용한 곳이 없습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나 밤의 연못가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었이겠습니까?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거든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하듯 사랑하고, 우리가 보살피듯 보살피며, 당신들의 자녀들을 위해 그 땅을 보존하고 또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그 땅을 사랑하시오. 신에게 있어 대지는 소중한 것입니다."

 

백인들은 인디안을 야만인이라고 무시했으며, 인디안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고 멸시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못하던 인디안 추장은 하나님을 믿는 백인 크리스챤들보다 오히려 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자연세계를 돌보며 환경을 지키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인간들의 죄와 이기심과 탐심으로 인하여 자연환경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더불어 같이 살라고 하신 동물과 식물들이 하나씩 멸종되어가고 있습니다. 땅과 바다, 하천과 지하수와 대기는 갈수록 화학물질과 중금속으로 오염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로 인하여 모든 생물체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19절에 보면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 동물과 식물, 어족들을 인자와 긍휼과 친절과 은혜로 대해줄 것을 피조물들은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 머리위에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까지 주실 정도로 우리를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로 대해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그들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하나님보시기에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 것을 우리는 알어야합니다. 왜 이 세상에 인종차별과 우월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한 자로 만드셨는데, 우리가 하나님보시기에 존귀한 삶을 살지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웃도 하나님보시기에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그들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망각했기 때문은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인자와 긍휼과 친절과 사랑으로 대하듯이, 우리들도 맡겨주신 자연세계와 생태계, 그안에 사는 모든 동물과 식물, 그리고 조류와 어족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친절과 긍휼, 사랑과 친절, 그리고 은혜로 대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온 하늘과 땅에 하나님의 위엄 있으신 이름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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