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베소

[엡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 진상민목사

'코이네' 2017. 12. 2. 22:0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본문: 엡2:4-9

설교 : 진상민 목사 (양울교회)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8-9절에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요즘 우리 사회가 많이 거칠어 졌습니다.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큰 소리치고, 조금만 내가 불편해 지면 화를 내고, 남이 내게 작은 실수라도 하면 내 자존심을 뿌리채 흔들리는 상처를 받은양 아주 과하게 퍼붇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입니다. 작은 자극에도 지나치게 분노를 느끼고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을 분노조절장애라고 하는데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지금 곳곳에서 갑작스러운 폭언이나 폭력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앞차가 내 갈길을 막고 있다고 크락션을 빵빵거리다가 급기야 앞질러가서 그 차앞에 차를 세우고는 야 내려 하는 것, 모두 분노조절장애현상이라고 합니다. 술 먹다가 옆에서 조금만 신경 거슬리는 말을 하면 그냥 집어던지면서 싸움을 하는 것 분노조절장애가 있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싸움도 많고, 위아래도 없고, 수시로 칼부림, 방화사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럼 왜 우리 사회가 점점 이렇게 거칠어지느냐 지나친 경쟁 때문이다.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한 경쟁사회속에 살다보니, 어릴때부터그런 경쟁관계 속에 있다보니 자기 감정을 다스릴 줄 몰라서 쉽게 폭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사건들이 대한항공 회항사건, 이별을 통보한 애인을 자동차로 밀어버린 사건, 변심한 애인 토막살인한 사건, 헤어진 여자친구 몰래 학교 휴학해버린 사건 등등 수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쟁속에 내몰리기만 했기에 결국 거칠어 지는 겁니다

 

문제는 성도들도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마음도 점점 메마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과 똑같은 모습이 자꾸 교회에서도 나오고 있는 겁니다. 감격해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골프치다가 케디에게 성추행했다고 고소된 사람 서울 어느교회 장로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305장에 나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이 있습니다. 그 찬송을 지었던 죤뉴톤 한때 깡패 두목이었고 술을 즐기며 허랑 방탕하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노예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었는데 어느날 술에 취해 장난 삼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은혜 받고 회심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하며 찬송을 쓴 것이 지금도 전세계 성도들이 즐겨부르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마디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그 첫마디는 언제 불러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 죤 뉴튼이란 분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그것이 느껴지기에 감동도 되지만 나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래 맞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구나 하며 그 말 한마디에 그냥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중에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18장에 나옵니다. 도저히 그 돈을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몸을 팔고 처 자식 집, 땅 모든 것을 팔아도 갚을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라면 지금으로 말하면 한 달란트가 금 30킬로그램 정도이기에 약 십억정도된다고 합니다. 한 달란트가 십억인데 그것을 무려 만배나 빚졌다,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그것을 알고 그냥 일시에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울면서 내가 어떻게 해서든 갚을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하는데 뻔히 갚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주인이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 기적을 경험하고 나오는데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이 앞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백데나리온 빚진사람에게 달려들어 돈 갚으라고 야단쳤습니다. 그 사람도 울면서 내가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만달란트탕감받은 사람은 그것을 용서해 주지 못하고 안된다며 감옥에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문제는 백데나리온이 얼마의 가치냐 1데나리온이 남자의 하루 일당입니다. 십만원을 치더라도 백데나리온은 천만원입니다. 작은 돈이 아니죠, 그런데 자기는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았습니다. 한 달란트가 천만원이 아니고 10억정도 되는데 그것의 만배의 빚을 탕감받은 것입니다. 그 차이는 얼마냐 일만달란트와 백데나리온의 차이는 백만대 일입니다. 백만원과 1원의 차이입니다. 자기는 백만원을 용서받고서도 1원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나서 다시 그 종을 불러 너 일만달란트 갚지 않으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며 감옥에 집어넣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자기는 일만달란트를 용서받고서도 백만분의 1밖에 안되는 백데나리온도 용서 못한 것입니까? 그 용서받은 감격이 주인의 집을 나설 때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엄청난 것을 탕감받았는데 그 감격속에 살면 어떤 사람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인데 그 감격을 잃어버리니 아주 작은 것에도 화를 참지를 못한 것입니다.

 

사람 다 똑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용서받았는가? 내가 어떤 사랑을 받았는가? 내가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나도 남을 용서해 줄수 있고, 사랑해 줄 수 있습니다. 감격속에 사는 사람은 그렇게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감격이 내게서 사라지고 있기에 지금 폭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작은 일에도 자꾸 분노하고 있다. 작은 일에도 자꾸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서툰 행동을 잘 견디지 못하고 있다 그럴 때 다른 사람 그 말이나 행동을 보지 말고 내 마음을 봐야합니다. 내가 지금 메말라 있지 않느냐? 내가 주님이 주신 그 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렸지는 않았느냐 내 마음을 봐야합니다.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런 분노 폭발이 이시대 우리 한국에서만 있느냐? 성경시대에서도 있었고, 이 에베소서를 받고 있는 에베소교회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이 쓰여지게 되었고, 이 말씀들이 선포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구원하신 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데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내 이웃이 말한마디 실수하는 것 그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냐 그래서 쓰여졌습니다. 그토록 내 이웃의 이 말이 힘들더냐? 그토록 내 이웃의 행동이 내 자존심을 건드리던 것이더냐? 그럼 너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은 어떤 것이더냐? 꼭 일만달라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그것의 백만분의 일밖에 안되는 백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해주지 못하는 모습과 똑 같기 때문입니다.

 

2:1절의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런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다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이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런 너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데 왜 자꾸 갈등하느냐 왜 자꾸 싸우느냐 왜 만나는 사람마다 갈등이 있느냐 좀 화해해라 좀 사랑하며 살아라, 좀 참아주며 살아라 그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어떤 사랑을 깊이 깨달으셨습니까? 바라기는 그 감격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오랫동안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느냐 그 감격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그래도 조금더 잘 참고, 조금더 겸손하고, 인내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중에 하나가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매 주일마다 되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격을 계속 가슴에 품고 살려고 하니 우리가 덜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나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도 메마르면 얼마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메마르면 안됩니다.

 

오늘 오후 예배때 박선교사님의 배트남 선교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타국에 가서 선교하시는 분들, 고생 많습니다. 사는 것이 열악하고, 안전의 문제도 보장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런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가슴에 그 뜨거움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격이 남아 있는 한 그 나라 그 민족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선교사일 찌라도 그 감격이 사라지면 돈을 밝히고, 내 명예를 찾고, 내가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도나 선교사나 목사나 어떤 직분자일찌라도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하는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감격으로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인디언 선교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내가 인디언 속에 들어갔으니 인디언들처럼 살고, 인디언들이 먹는 것을 먹으리라 하며 입에도 맞지 않는 거친 인디언 음식을 먹으며 선교를 했습니다. 그 지역 인디언들은 옥수수죽을 주로 먹었는데 그 옥수수는 흙이며 모래며 여러 가지 이물질이 섞여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죽으로 만들어 먹으니 먹으면서 흙이며 모래며 씹게 됩니다. 이 선교사님도 그 옥수수죽을 계속 먹었는데 결국엔 이빨이 자꾸 부러지더랍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살면서 선교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가슴에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님, 날 사랑하신 주님, 그 은혜, 그 사랑을 내가 아는데 그 은혜로 내가 구원받아서 이 기쁨을 누리는데 내가 이 정도의 고난을 견디지 못하랴 하며 그 안에서 견디다 보니 이빨이 다 빠져가는 것입니다.

 

요즘 저도 좀 더 감격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냥 일에 치중하고, 뭔가를 계획하고 바삐 움직이기보다 좀 일을 작게 하더라도, 좀 덜 바쁘게 되더라도 감격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속에 묻혀 사는 우리가 됩시다. 남들 나보다 조금 더 앞서가더라도, 나보다 조금 더 편하게 살더라도 우리는 감격속에 삽시다. 덜 먹더라도 감격이 있는 마음이 더 나은 것 아니겠습니까?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