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베소

[엡1:22]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관

'코이네' 2017. 11. 26. 00:45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관

 

에베소서 1:22-23

 

 

이 지상에 존재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나는 거룩한 공회(교회)를 믿습니다]고 하는 엄숙한 사도신경의 고백에 아멘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설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예언하였습니다(16:18). 그 예언은 그의 대속의 성취와 함께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참된 내용은 영감의 사람 바울로 말미암아 다시 계시되었습니다.

'교회'란 말이 바울 서신 중에서만도 무려 60회 이상이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사도 시대 이후 선교 시대를 맞이한 복음 역사에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란 단어 에클레시아( )란 단어는 밖에서( = out) + 불러내었다( = to call)는 합성어로 그리스도밖에 있던 무리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불러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약 성경에 교회라고 하는 말 외에 또 다르게 교회의 별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의 몸(1:23, 고전12:27), 성령의 전(2:21, 3:16, 벧전2:5), 하나님의 집(딤전3:15),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 위에 있는 예루살렘(4:26, 12:22, 1:6) 등으로 교회의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 특히 칼빈의 경우에 그의 교회관은 분명합니다.

 

.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1. 교회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9절로 10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는 이스라엘만이 제사장의 나라요,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 시대는 모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 선민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4:16).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기초한 교회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사랑하는 백성을 택하여 놓으시고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한 자들을 구별시킨 장소가 교회입니다. 말하자면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시키는 곳이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우리의 구원은 확고 부동한 기초를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 모든 기관이 다 무너진다 할지라도 결코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을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22절에는 그를 [교회의 머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하였습니다(4:4, 5:23-30). 또 우리는 그에게 붙어 있는 지체라고 하였습니다(15: ).

이 말은 교회의 유기적 통일성을 가리키고 있는 뜻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불가 분리의 생명성을 말합니다. 그가 교회의 머리가 되심은 교회를 향한 그의 주권성 혹은 주격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교회의 신비적 연합성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를 중심하고 형제애로써 연합하여 서로 유무 상통하는 상호 의존성, 친교성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생명적 질서성, 다스림과 다스림 받음을 의미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무한에의 성장(영화)을 목표하고 움직이는 생명성을 합니다. 이것은 비밀의 선택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생명적 육체로 맺고 있는 교회의 내적 특색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특색을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 교회의 특색이 무엇인가?

 

이것은 교회의 외적인 면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은혜의 방편으로써의 교회를 말합니다.

 

1. 진정한 말씀의 선포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315절에 교회를 가리켜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진리의 수호자인 동시에 진리의 선포를 하는 장소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진정한 말씀(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중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가 말씀 선포 대신 여러 가지 의식으로 하나님의 집을 더럽혀 버린 사실을 두고 한 개혁 사상이었습니다.

 

2. 거룩한 성례가 집행되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례와 성찬을 베푸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 자신의 최후 부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19절에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126절에 주님의 살을 떼고 피를 쏟는 속죄의 희생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주님 오실 때까지 기념하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천주교는 화체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그것이 곧 우리 몸에 예수의 살이 되고, 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범신론적인 이단 사상이었습니다.

루터는 공재설(共在說)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떡과 잔 속에 주님이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쯔윙글리는 기념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칼빈은 영의 신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주님을 생각할 때 그 시간에 인격적인 주의 영(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말씀 선포와 성례는 바로 은혜의 방편(수단)으로 여겼습니다. 로마 교회의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음을 개혁자들은 직시했습니다. 곧 말씀 선포가 없는 성례만 행하므로, 나중에 그 성례가 미신에 빠지게 되는 오류를 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3. 정당한 권징을 실행하는 곳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그의 신부에 비유하시므로, 지상에 교회가 교리적 순결과 생활의 성결을 유지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권위로 이단을 정죄하고, 교회의 불순을 제거해야 된다고 개혁자들은 주장했습니다.

 

III. 교회의 속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1. 교회의 사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선지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20). 로마 천주교는 이 사도성을 계보 위주로 해석하여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고 그를 계승하는 교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사도성이란, 계보적 사도권 계승이 아니라 사도적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를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라 가리킨 곳이 없습니다. 더욱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면, 그 교회는 곧 사단의 교회가 되어 주님의 책망을 받고 말았을 것입니다(16:23). 로마 천주교는 또한 베드로를 교회의 기초요, 천국 열쇠를 가진 주권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그 반석(16:18)은 베드로를 가리킴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가리킨다고 하므로, 사도적 신앙고백을 가리켜 사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2. 성결성(거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 같이, 그 성원들의 거룩하여 짐을 추구합니다. 로마 천주교는 교회의 성결은 교회 의식과 예배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성도의 말씀과 성령에 의한 중생과 성화에서 찾았습니다.

 

3. 보편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천주교회는 이 지상에 보이는 조직 교회 속에서 보편성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보이지 않는 교회(불가견적 교회)에서, 교회의 보편성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하나가 된 하나의 교회, 곧 우주적 교회의 보편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럼에도 개혁자들은 지상에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제세례파 교회들은 지상에서의 완전한 교회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개신교 안에 오늘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교회를 '새 인간 사회'를 지향하는 하나의 행동 매체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구조적 개조를 인간 영혼의 개조보다 중시합니다. 저들은 교회와 사회의 질적이고, 내용적인 차이와 구별을 부인하여 이른바 신 만인구원론(neo-Universalism)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는 새로운 인간 가족으로 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누구나 반드시 교회에 다 나오도록 해야 될 필요는 없다. 교회란 또한 '새로운 인간 가족'으로 개인과 사회를 취급하는 '새 계약의 봉사가'(minister)로만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을 위한 교회보다는 인간을 위한 교회, 세상을 위한 교회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인도주의적인 인문주의 교회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좇아 교회는 세상에서 쭉정이와(불택자), 알곡(택자)을 분리시키는 성별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이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철두철미하게 인간 영혼 구원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교회는 진정한 이웃,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강도 만난 자를 피하여 가는 자가 아니고, 그에게 가서 그를 나귀에 태우고 주막에까지 데리고 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주막 주인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자 이어야 합니다.

진정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입니까? 예수님은 레위인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고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향한 인간적인 봉사가 아니라 그 이웃을 향한 영혼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새겨야 합니다.

세계사의 중심은 구속 역사입니다.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운동은 그의 몸된 교회라고 하는 기관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교회는 위대하신 말씀 선포( ) 곧 전도 운동을 통하여 전개해 나가십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좇아 이 교회를 가리켜 교회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또 그 백성들이 그에게 지체로 붙어 있는 몸과 머리인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교회는 예수와 그 택한 백성들이 생명적 관계를 맺고 있는 움직이는 유기적 생명체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예수께서 명하신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시행되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아름다운 영의 순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특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교회는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르기를 목적하고 거룩의 단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 시대, 전 역사의 영역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 곧 우주적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속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적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처음 교회는 내적으로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공동체로써 교제하였습니다. 외적으로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좇아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바로 종교개혁은 그러하지 못한 중세기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나 사도적 교회로 환원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는 살았습니다. 요동하고 요진 하였습니다. 생산하고 창조하고 개혁하면서 전진하였습니다.

 

제네바의 베드로의 성당을 개신교회로 바꾸어 칼빈이 거기서 설교를 하고, 쮜리히 시에 카톨릭의 성당을 개신 교회로 만들어 쯔글리가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새로운 세기의 문을 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한 때 선진하던 구라파 문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관을 계승하는 축복의 후예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