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설교, 사53장, 고난당하신 메시야, 예수님의 죽음
사 53:4-6 고난당하신 메시아 / 충신교회 박종순목사
주경 학자들은 이사야 40장~66장을 구약 속의 신약(New Testament book of Old Testament)이라 부릅니다. 이유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자로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 게 될 사건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은 그 중의 한 장으로 메시아이신 예 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겪으실 고난과 승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온갖 멸시와 천대, 굴욕과 고통을 다 겪으셨고 결국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주님의 고난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우리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4~5절을 보면 "우리"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반복됩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떳떳치 못한 죄로 붙잡혀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뉴스 카메라를 들이대면 하나같이 머리를 숙이거나 손으로 얼굴을 감싸거나 겉옷을 치켜올 려 얼굴을 감춥니다. 그것은 낯을 들기가 떳떳치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렴치한 죄이든, 떳떳치 못한 죄이든 죄를 범하면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독립운동 을 하던 애국지사가 일경에 체포되어 끌려가면서 얼굴을 감싸거나 겉옷을 뒤집어쓰는 사람 은 없습니다. 이유는 떳떳하고 당당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일도 없고, 도덕률을 깬 일도 없고,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 죽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 4~5절은 "우리" 때문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6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함 받으려면 어린양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 한 어물쩍 그냥 죄가 넘어가거나 사함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29을 보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린양 예수 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서 확인해야 될 것은 "우리"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 "나"입니다. 즉 나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고백해야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나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나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나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사가 그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손과 발 날 위해 찢기셨네 왜 날 사랑하나
고난을 당하여 구원했네 왜 날 사랑하나
내 대신 고통을 당하셨네 왜 날 사랑하나
죄 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 했나 왜 날 사랑하나"
그렇습니다. 이 찬송이 고백하는 것처럼 나 위해 십자가 지셨고, 나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2.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했다"고 했고, 5절을 보면 "찔렸고 징계를 받았고 채찍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곤욕을 당했다"고 했고, 8절을 보면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어 고통을 겪고, 창에 찔리고, 매를 맞고,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온갖 수모와 멸시와 천대와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두 가지 경우에 화를 내거나 난폭해집니다. 하나는 자존심이 상했을 때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부부도 싸우고, 형제도 싸우고, 친구도 싸웁니다. 또 하나는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입니다. 이 경우도 예외 없이 덤비고, 소리치고, 싸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가시관과 못과 창에 찔리셨습니다.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뛰어내려라"고, 조롱했고 십자가에 매달고 발가벗긴 채 수치심을 건드리고 자존심을 자극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길을 올라 가실 때 군병들은 채찍으로 때렸고, 시민들은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괴롭고, 아프고,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하고, 체통이 무너져도 침묵하셨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래야 우리를 살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할말 다하고, 체면 다 세우고, 자존심 다 찾다보면 예수님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참아라, 견디어라, 침묵해라! 너의 자존심과 체면과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합시다.
"그 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눈물로 기도했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비웃는 그 무리들 주의 옷 벗긴 후에 주님 몸 깊이 찔렀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 때 구원을 이루셨네
마지막 피 한 방울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아멘.
스페인의 문인이었던 「"우나무도"」는 자신의 작품 "젊은 작가" 속에서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없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사랑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사랑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둘러보고 찾아보고 소리쳐 보아도 사랑할 사람이 없다면, 그리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시기하고 질투할 사람만 늘어서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셀 퀴에스트가 읊은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여, 사랑은 두 가지 뿐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작아집니다. 그것은 사랑의 크나 큰 손실입니다. 사랑이란 자기를 초월하여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은 시들고 썩고 말라버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는 예수 잘못이 없는 예수, 억울한 예수, 멸시받고 천대받은 예수, 그러나 침묵하고 견디신 까닭은 사랑을 실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치 있는 고생이 있고 가치 없는 고생이 있습니다. 고생 끝에 성공이 있고 낙이 있는 것은 가치 있는 고생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인간을 살리셨습니다. 생명을 주셨고, 영원을 주셨습니다. 죄에서 해방시키셨고, 죽음을 영생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은혜로 오늘 내가 살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3. 고난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가 취할 태도가 있습니다.
먼저, 날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고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 죽으셨는가, 왜 고통을 받으셨는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크신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사랑을 말해야 합니다. 나는 주님때문에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노라고, 주님은 나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노라고, 입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셋째로, 나도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을 감사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 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by 코이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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