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12:1] 성령의 은사와 통일성

'코이네' 2016. 11. 30. 16:02

성령의 은사와 통일성

고린도전서 12:1-13

 

성령의 사역을 논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말할 수 없습니다. 오순절날 교회라는 몸을 탄생시키시고, 그 몸 안과 그 몸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유감스럽게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를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성령을 슬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인들이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를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숙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을 무엇보다도 강조함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경이로운 영적 연합을 이루는 네 가지 사실을 지적합니다.

 

 

 

첫째, 교회는 동일한 주님을 고백합니다(12:1-3)

 

 

바울은 회심하기 이전 우상 숭배자들이었던 그들의 체험을 현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체험과 대조시킵니다. 과거에 그들은 죽은 우상을 섬겼었으나 이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전에 섬겼던 우상은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며, 또한 그들 중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아직 회개하기 전에 그들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10:20), 길을 잃기에 이르렀었습니다(“끌려갔느니라”, 2).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영()이 그들 안에 거하시며 그들에게 방향을 지도하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정직하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악한 자들도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라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은 결코 참된 고백을 하지는 못합니다(아마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회심하기 전 마귀의 사주를 받아 그처럼 예수님을 조롱했던 일을 언급하는지도 모릅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실 때 신자는 늘 자신을 절제하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14:32).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절제를 무시하는 소위 성령의 나타남(Sprit manifestation)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절제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5:22-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주님이시라면, 교회에는 반드시 일치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분쟁과 불화는 구원받지 못한 세상을 향한 그들의 연합된 증거의 힘을 약화시킵니다(17:20-21).

 

 

 

 

둘째, 교회는 같은 하나님께 의지합니다(12:4-6).

 

 

본문에서는 같은 성령님”, “같은 주님”, “같은 하나님과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들 각각이 받은 은사나, 하고 있는 사역이나 사역의 방법은 다 다를지도 모르지만,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2:13). 은사의 궁극적인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은사를 관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은사를 사용하도록 힘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 합니까? 왜 성도가 서로 경쟁을 합니까?

 

 

 

 

셋째, 교회는 같은 몸을 섬깁니다(12:7-11).

 

 

성령의 은사는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집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개인적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단합된 역사를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교회 성장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위해 사용했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을 때 교회의 단합을 위해 그 은사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 교회가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은 128-10, 28, 에베소서 411절과 로마서 126-8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모두를 종합해 보면, 열아홉가지의 서로 다른 은사와 직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목록과 고린도전서의 목록이 같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울은 어느 서신에서도 성령의 은사를 모두 다 밝히려고 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바울이 열거한 성령의 은사들은 교회의 사역을 위해 유용한 것들이긴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은사들에게만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교회는 같은 세례를 받는다(12:12-13)

 

 

유감스럽게도 성령 세례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의 원래 의미와 동떨어진 뜻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혼돈해서는 안 될, 성령의 가르치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2:12-13). 성령 세례는 회심 때에 일어나는 일로서, 이 때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성령께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전(殿)으로 만드십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성령 세례를 단 한번 체험합니다(12:13). 성령 세례는 이렇게 단회적(單回的)이고 다시 되풀이 도지 않기 때문에 성경 어느 곳에도 이 성령 세례를 구하라는 가르침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5:18 이하) 우리의 삶을 성령께서 통제하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성경에서, 어떤 것으로 충만케 된다는 것은 그것에 의해 통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충만케 되라는 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께 모두 맡기고, 성령 충만케 될 것을 그분께 간구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와 달리, 거듭되는 체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이 끊임없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세례 받는 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된다는 것은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의 증거가 회심 시에 성령의 세례 받은 것을 확증합니다(8:14-16). 성령 세례의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 모두가 방언을 하지는 않았습니다(12:30), 성령으로 충만케 된 것은 증거할 수 있는 권능(1:8), 기쁨과 순종(5:19 이하), 그리스도를 닮음(5:22-26),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자라 가는 것(16:12-15) 등이 입증해 줍니다.

 

 

회심할 때 받은 성령의 은사로 인해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종족, 사회적 지위, (), 또는 성적 구별 등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또 서로 교제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으며 유리한 조건도 되지 않습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