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32:9]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야곱이 기도하다

'코이네' 2016. 9. 3. 19:40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야곱이 기도하다

본문 : 창세기 32:9-12

 

야곱의 또 하나 고민의 원인은 불확실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후좌우 성경의 문맥을 가만히 보면 야곱이 형 에서에게 사자를 보내서 먼저 동생 야곱이 왔다는 기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전갈을 받은 에서가 400인을 이끌고 오는데 여러분 보세요 이 400인이 꼭 야곱을 죽이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성경에 죽인다는 말은 없습니다. 혹시 에서가 자기도 권세를 뽐내려고 허세를 과시하려고 퍼레이드를 하려고 오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죄 때문에 죄로 오는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하고 고민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무속인들이 42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 무속인들이 입시철이나 정초가 되면 그 점쟁이들 집마다 한철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용하다는 점쟁이는 20분 점괘를 보는데 몇 백만 원이 아니라 몇 천만 원씩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고액과외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 거액 점쟁이가 문제입니다. 그 점치려는 점쟁이들 사이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데 유명정치가들, 탤런트, 박사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답니다. 왜요? 미래를 알고 싶어서 내일을 알고 싶어서 물론 이것이 사람의 심리지만 성경은 그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미래를 아는 거 내일을 아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우리처럼 예수 믿는 사람 어떤 사람도 예언했다고 합니다. 예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의 죄라고 말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충당치 못하게 하시려고 사람에게 장래 일을 알 수 없게 했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일 일을 알 수 없게 했겠습니까? 왜 그랬겠습니까? 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않아야 좋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몰라도 좋습니다. 우리는 진리대로만 살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믿음대로만 살면 하나님께서 다 좋은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양입니다. 우리 주님은 목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시다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보니까 목자가 양을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갑니까? 양들은 아주 심한 근시안이라고 합니다. 양은 멀리보지 않습니다. 목자를 바라다보지도 않습니다. 양은 바로 눈감고 앞에 양이 걸어가면 바로 그 뒤만 쭉 따라갑니다. 목자가 어이 어이 하면 그 목자 소리만 듣고 오직 목자 소리만 듣고 멀리도 쳐다보지 아니하고 목자가 가라는대로 쭉 갑니다. 앞을 내다보지 않습니다. 소리만 들리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양들의 생리입니다.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내일 일을 알아서 무엇하겠습니까? 나쁜 일 해 놓고, 못된 일 해 놓고 그 나쁜 일이, 못된 일이 주는 그 응보를, 그 징계를 피하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술입니다. 그냥 우리는 내일 일을 몰라도 좋습니다. 우리는 진리대로만 살면 믿음대로만 살면 하나님께서 다 우리에게 좋은 길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만 되면 우리는 부족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우리에게 순간적인 시련이 올지라도 여호와를 믿고 끝까지 따라가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십니다.

 

장래를 알면 인간은 수단을 부리고 꾀를 부립니다. 못된 짓을 해 놓고도 당연히 받아야될 징계를, 화를 마귀의 힘을 빌어서라도 피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됩니까? 마귀의 천지가 되고 부조리하고 악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장래 일 알아서 피하라고 하는 것, 그것은 마귀가 바라는 바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으면 매를 맞고 나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으면 우리는 그것에 응당한 징계를 받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일은 몰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그래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식이 있고, 재산이 있고, 사랑이 있는데도 야곱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야곱은 어떻게 해서 어떻게 해야 또 한 차례 오는 무서운 시련을, 이 답답함을,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20년 전 화란으로 갈 때 그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그때는 야곱의 신앙이 어려서 그가 하나님을 찾을 줄 몰랐고, 하나님이 그를 찾아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이제 여기서 야곱은 이제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자 그는 이제 얍복강 가에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란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어려움은 그의 부모인 이삭이 기도해서 응답되어진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야곱이 스스로 기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삶에 신앙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체험은 참 중요합니다. 신앙의 체험은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가 큰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참된 해결의 길을 신앙의 체험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체험은 대부분 어떨 때 이루어지냐면 고난의 때에 그 신앙의 체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난의 때에 가진 신앙의 체험이 그 사람 일생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붙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때때로 고난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죽을 것 같은 우리가 아무 방법도 수단도 없이 우리가 죽을 것 같은 그 자리에 이르러서 우리는 신앙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예방 주사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요? 그것이 그 체험이 우리를 평생 붙들어주고 우리를 타락하지 않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붙들어 매는 끈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제가 앞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는데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데 고난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하나님을 체험하라 하나님을 맛보라 형식적인 신앙이 되지 말라 껍질만 가진 신앙이 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이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기도하는데 그것도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 말씀을 주장하면서 기도합니다. 야곱을 보면은 야곱이 화란으로 갈 때 겪었던 고난에서 야곱은 신앙이 무엇인가 알았다면 이제 화란에서 올 때 겪고 있는 고난을 통해서 야곱은 신앙의 성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했던 기도의 복을 물려받은 사람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가 기도해서 스스로가 그의 자녀들을 위한 복을 만들고 물려주는 이런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권한을 위해서 오는 복된 신앙의 결실들이었습니다. 야곱은 그때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의리를 상기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감사하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10절에 보면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되었나이다. 야곱은 빈손 들고 화란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에게 다 하나님 말씀대로 다 이루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축복해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비를 넘기게 해 준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만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준 것을 야곱은 알았습니다. 야곱은 처음에는 무서워서, 두려워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것입니다. 감사를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처음에는 무엇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무엇이 없어서 마지못해 할 수 없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다가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내가 달라고 내가 내 환경을 변화시켜 달라고 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서 기도하다가 어떤 일이 생기냐면 기도하다가 내가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참 중요한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입니다. 사실 내가 변화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복이 와도 우리에게 좋은 것이 와도 우리는 그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준비되지 못한 신앙을 가진, 인격이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진 세상의 복은 그 인격을 그 신앙을 파멸시키는 것이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나는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과거가 하나님의 은혜였다면 불우했던 그 과거가 자격이 없는 과거에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셨다면 이제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과거가 내 살아온 발자국이 하나님의 의리로 살아왔다면 이제 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살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도우신 그 체험을 은혜의 흔적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 지금 받으신 복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장래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더 좋은 미래로, 은혜로 우리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세요. 또 우리는 그런 생각도 하지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의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없어서 담대하지 못합니다. 근데 그것도 신앙적이지 못합니다. 언제 야곱이 착하고 올발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야곱이 착한 사람으로 되어갈 뿐인 것입니다. 야곱의 믿음이 있어서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야곱이 믿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충성해서 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더 많이 충성하라고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는 내가 잘했다는 자기 의까지도 깨끗이 포기할 때, 더 깊은 은혜 오직 하나님 은혜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은혜 아니면 내가 죽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붙들고 우리가 살아갈 때 더 큰 은혜 속으로 우리는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변덕을 부렸다고 하나님도 변덕을 부리신 분이 아닙니다. 야곱이 천방지축이지만은 하나님은 그 자리 그 마음, 그 약속을 가지고 우리를 야곱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야곱을 사랑하시고 야곱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여러분들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