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32:7] 야곱은 왜 그리 두렵고 답답했을까?

'코이네' 2016. 9. 3. 19:29

야곱은 왜 그리 두렵고 답답했는가?

본문 : 창세기 32:7

 

오늘 성경 말씀에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야곱이 또 다시 나옵니다. 지난주에 본 야곱은 화란으로 도망가면서 환난을 만난 야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야곱이 오늘 또 다시 나오는데 시간적으로는 20년이 지난 후인데 이제 반대로 화란으로 갔다가 화란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모습인데 그 야곱의 상황 역시 화란으로 갈 때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오늘 7절 말씀에 보면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본 화란으로 가는 야곱은 고생하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 야곱이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화란에서 나온 야곱은 우리가 본문에서 봤다시피 모든 것을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모든 것을 지금 가졌는데도 야곱은 어쩐다 말입니까? 심히 두렵고 답답하다 그 말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 잠깐 생각하면 야곱은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니 아내가 있다고 하는 말은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사실 야곱은 아내들이 있습니다. 아내가 하나가 아니라 4명이랍니다. 레아가 있습니다. 라헬이 있습니다. 실바가 있습니다. 빌하가 있습니다. 네 명의 아내가 세컨드 써드 포스 아주 줄줄이 거느리고 있습니다. 다 남자하면 복이라고 했는데 아들이 몇 명이냐면 12명이라 아들만 해도 12명입니다. 또 거기에 재산을 세어 보면 엄청납니다. 짐승이 수만 마리나 있고 거기에 그 짐승을 기르는 종자들이 수십 명입니다. 대단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는 그 길은 옛날 쫓겨갔던 그곳으로 이제 다시 돌아오면서 그야말로 금의환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야곱이 즐겁고 신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가진 야곱이 아주 마음이 기쁘고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라 심히 두렵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이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평안할 것 같았는데 돈이 얼마든지 있는 데도 그는 지금 두렵고 답답한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있는데도 답답하십니까? 혹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아도 괜찮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야곱을 보면은 야곱은 정말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옆에 있습니다. 라헬이라고요 이 여자를 사랑해서 14년을 이 여자를 얻기 위해서 머슴살이를 했는데요 그 칠 년 그 14년이 며칠처럼 지나 가버린 그야말로 죽도록 사랑하는, 보고있어도 보고 싶은 그런 여인이 지금 자기 앞에 있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어떻다는 말입니까? 답답하고 두렵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들이 12명이나, 딸은 얼마나 많은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들이12명이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그는 답답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웃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러겠습니까? 이 야곱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돌멩이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죄 문제였습니다.

 

야곱이 이제 금의 환향을 하는데 야곱이 먼저 형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서 사자를 보내서 동생 야곱이 돌아온다고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에서가 사병 400명을 거느리고 지금 야곱 쪽으로 얍복강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아니 형이 오면 그냥 올 일이거나 혹은 두세 명을 데리고 올 일이지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자면 덜컹 두려움이 가슴을 막았습니다. 잊고 있었던 20년 전의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강탈해서 장자권을 빼앗아들고 도망쳤던 그 20년 전의 그 일이 자기 가슴에 떠올랐습니다. 그로 인하여 분을 품고 야곱을 벼르고 있을 에서를 생각한 것입니다. 무서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이러면서 야곱이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 나의 이 불행은 나의 이 고민은 나의 이 괴로움은 못 가진 것이 아니라 죄 때문이구나 20년이 지난 뒤에도 죄는 옷 속에 품은 칼처럼 송곳처럼 가시처럼 불쑥 튀어나와 나를 찌르고 마는 것이 구나 아 죄를 두고는 행복할 수 없구나 죄는 끝내 그 사람을 찾아내고 마는구나 이것이 야곱이 절실하게 이 순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 죄를 두고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야곱은 깨달은 것입니다. 죄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내서 죄의 고향인 죄의 근원인 파멸로 지옥으로 그 사람을 데려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에 익히버스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고린도 지방의 한 골짜기를 지나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죽게되었습니다. 이때 이 익히버스가 너무나도 죽으면서 억울해서 주위에 아무도 없고 강도들이 자기를 때려죽이려 하자 공중에 학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고 비명처럼 외쳤습니다. 학아, 학아 너는 내가 억울하게 죽는 것을 보았지 네가 이 죽음 잊지 말고 내 원수를 갚아다오 그러면서 이 익히버스가 비명을 지르며 죽었습니다. 물론 강도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 달이 지나도 이 익히버스를 죽인 강도를 잡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한번은 고린도에서 노천극장에서 서커스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합니다. 아 그때 어디서 난데없이 공중에서 학이 내려와서 사람들 머리 위를 뱅뱅 돕니다. 서커스에 짐승이 나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렇게 학들이 뱅뱅 돌다가 무서워하지도 않고 어떤 사람 머리 위를 쓱 지나가고 또 머리 위를 지나가고 이렇게 지나갑니다. 관중석에 있던 어떤 한사람이 후닥닥 일어나더니 익히버스 학이 왔구나 나 혼자 죽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이 죽였어 하고 확 도망쳐나가더랍니다. 그래서 그 도망친 사람에게서 익히버스라는 말을 듣고 그를 강도로 알고 잡았습니다. 여러분 학이 그 사람을 그 사람이 익히버스를 죽인 강도라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죄책에 찔려서 발견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죄는 10년이고 20년이고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반드시 찾아서 그 사람을 찾아내서 그와 함께 죽는 것이 그와 함께 망하는 것이 죄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러한 죄를 짓는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못 믿은 데서 생겨난 것입니다. 알다시피 장자권은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장자권은 야곱의 것이라고 하나님이 이미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가만히 보니까 그 장자권이 하나님 말씀대로 될성싶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장자권을 쥐고 있는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자기보다 훨씬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아버지는 곧 나이가 드셔 늙어 죽으실 것 같은데 에서를 사랑하고 있으니 야곱은 초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지 못하고 꾀를 써서 불응하는 방법을 써서 그 장자권을 강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말씀을 믿지 못한 건 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무서운 일을 만들고 오늘의 불행에 처한 것이 야곱의 신세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죄라는 말은 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이 하마르티아라는 말은 빗나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빗나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우리가 빗나간 인생을 살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 빗나간 그곳에는 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빗나가서 다시스로 갔습니다. 빗나가서 갔는데도 인간적으로 보면 마치 다시스로 도망가면 배까지 딱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요나는 속으로 옳거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는 요나를 기다리고 있는 죄의 배였습니다. 그 배는 요나를 태우고 다시스로 가려는게 아니라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려는 저 스올로, 음부로 데리고 들어가려는 마귀의, 사탄의 배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빗나가면 반드시 죄와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그 빗나간 사람을 싣고 그 마귀의 고향인 죄의 고향인 환난과 죽음의 처서로, 스올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죄가 뭡니까? 여러분 죄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마는 성경적인 죄는 하나님과 불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하고는 하나님 말씀을 빗나가고는 그 인생에 평안히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과 불화하면 반드시 그 귀결로 이웃과도 불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웃과 불화한 사람 자기는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혹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깊은 곳에 하나님과 불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에서와의 불화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빗나가서 행복하고, 평안하고, 많은 것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주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용조 목사의 설교 중에서)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