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9:1]교회가 사도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

'코이네' 2016. 8. 24. 18:47

사도에게 교회가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

본문 : 고린도전서 9:1-14

 

 

고린도전서 9장에는 사역자가 필요한 재정적 보조에 관한 바울의 자세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 장은 8장과 10장 사이에 삽입되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대한 논의가 중단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이 장은 그 논의를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8장과 10장에서 바울이 설명한 신앙적 원리를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의 본보기로 내세워 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사용하는 성숙한 태도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재정적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보다 고상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 권리를 기꺼이 포기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헬라인들은 대부분 육체 노동자를 천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노예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스포츠, 철학 및 여가 등을 즐겼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성실한 노동을 존중했습니다. 학식이 많은 랍비들까지도 모두가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녀에게 일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자녀를 도둑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배경 하에서 바울도 가죽으로 천막 만드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개인적 권한을 사용하는 가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이 취해온 재정 방침을 이중적인 면에서 언급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의 전반부에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재정적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섯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 바울의 사도권 측면(9:1-6)

 

'사도'라는 말은 “어떤 사명을 지고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바울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신약의 선지자들로서, 사도의 주된 임무는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엡2:20). 사도가 될 수 있는 자격 중의 한 가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는 체험을 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행1:21-22).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행9:1-9).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행2:32/ 3:15/ 5:32/ 10:39-43). 또한 사도들은 자신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특별한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히2:4). 바울도 고린도 시에서 사역하면서 그러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였습니다(고후12:12). 사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자신의 사도적 사역에 대한 매우 특별한 “인”(印)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고린도는 복음을 전하기에 매우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이 함께 능력 주심에 힘입어 그곳에서 위대한 일을 이룩해 내었습니다(행18:1-17 참조)

 

따라서 바울은 그가 사도로서 복음을 전한 고린도 성도들로부터 재정적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본 장에는 “능력”(Power) <권:개역성경>이란 용어가 여섯 번 쓰였는데 이는 “권위”(authority) 또는 “권리”(right)를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자(使者)였으므로 존중받고 보조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에게 아내가 있었다면 그 아내 역시 고린도 교회로부터 재정적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결혼한 자로서(막1:30). 그의 아내는 베드로와 같이 다녔습니다. 바울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나 그는 그러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또한 모든 시간을 말씀의 사역에만 할애할 권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굳이 천막을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말씀 사역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하는 자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손수 노동을 했습니다.

 

󰊲 인간의 체험의 측면(9:7)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적인 체험을 통해서 모두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이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게 되면 국가는 그에게 봉급을 주고 그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해 줍니다.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포도 열매를 얻을 수 있고 양치는 목자들은 그 젖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마 바울은 마음 속으로 고린도 교회를 군대, 포도원, 양떼 등으로 비유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한 명의 사도로서 바울은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앞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밭으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3:6-9). 주님께서는 교회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셨으며(요15장). 양떼로 비유하시기도 했습니다(요10장). 이러한 비유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즉, 복음 사역자들은 자신의 수고에 대해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에 대가가 따른다는 원리가 세속적인 일에서도 적용된다면 그것은 또한 영적인 일에서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 구약의 율법의 측면(9:8-12)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초대 교회 때에는 구약성경이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율법의 계명에 순종해야 할 의무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영적 원리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곤 했습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에 의해 드러난다.”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신명기 25장 4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바울은 교회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생활을 적절히 보장해 주도록 권고하기 위해 디모데전서 5장17-18절에서도 동일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소는 글을 알지 못하는 동물이므로 신명기의 말씀이 소를 위해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구절은 소를 이용해서 일하는 농민만을 위해서 기록된 것도 아닙니다.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농부는 잔악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소가 모든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풍습일 수 있다)

 

바울은 신명기의 말씀에 내포된 영적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는 그 노동의 대가를 나누어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씨뿌릴 밭을 간 소는 이제, 추수된 곡식을 떠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라는 영적인 밭을 일구면서 주야로 일했습니다. 또 바울은 자신이 뿌린 씨가 열매를 맺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추수된 열매에서 누린 권리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11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원리를 상세히 밝혀 줍니다. 즉, 신령한 축복을 받았으면 그 대가로 물질적인 축복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신령한 복을 주었습니다. 때문에 이방인들은 그들의 물질적인 것을 유대인들과 함께 나눌 의무가 있었습니다(롬15:25-27).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우리로부터 어떤 물질적인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갈6:6-10)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지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아닌 다른 교회로부터는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떠날 때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쓸 것을 두 차례나 보내주었습니다 (빌4:15-16). (고후11: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 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 다른 사역자들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사역에 대한 보상을 받았음을 분명하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12절) 스스로 노동을 해서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신자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신앙적 본을 보여 주길 원했습니다(살후 3:6-9).

 

󰊴 구약의 관행(慣行)의 측면(9:13)

 

구약의 제사장들과 레위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바치는 재물과 예물로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민수기 18장8-32, 레위기6:14-7:36 및 27장6-3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헌물과 또 특별 십일조 중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몫을 규정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구약 규례를 인용하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즉, 율법 아래에 있던 구약 시대의 사역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재정적 보조를 받았다면, 하물며, 은혜 아래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왜 재정적 보조를 받지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가르침의 측면(9:14)

 

바울은 누가복음 10:7-8절과 마태복음 10:10절에 명시된 예수님의 말씀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겐 복음서의 사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의 구전(口傳)을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님의 가르침은 교회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근본 원리입니다.

 

이상과 같이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입증했습니다. 바울의 5가지 논증은 그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있었을 때, 그들로부터 재정적 보조를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증거해 줍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신중하게 그들의 보조를 거부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 내용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