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6:9] 삼위일체 하나님과 새로운 피조물

'코이네' 2016. 6. 22. 17:29

삼위일체 하나님과 새로운 피조물

본문 : 고린도전서 6:9-20

 

고린도 시는 성적(性的)으로 지극히 문란한 곳이었습니다. 고린도 시는 오늘날과 유사한 철학, 즉 성은 정상적인 육체의 기능인데 원할 때에 그 기능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는 사고가 만연하던 방종한 사회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심으로써 성을 창조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성의 올바른 사용법을 우리에게 일러 주실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바울은 여기서 지적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 범죄를 정죄하십니다. 바울은 9절에서 성에 관련된 몇가지 범죄를 열거합니다. 그 당시, 우상숭배와 성 범죄는 늘 병했습니다. “탐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는 동성애 관계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바울은 로마서1장 26-27절에서도 이 동성애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10절에서 바울은 탐욕스러운 마음 때문에 서로를 송사하는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음행죄도 깨끗이 하시어 그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11절).

본 구절에 쓰인 동사의 시제는 과거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결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해 주셨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사용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6:12-14)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지으셨고 뜻하신 날에 우리 몸을 영광 가운데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부활에 관해서는 15장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의 몸이 놀라운 기원(起源)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장래에는 우리의 몸이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 몸을 그렇게 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겠는가?
고린도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음행을 변호하기 위해서 두 가지 내용을 주장했습니다.

 

첫째, 그들은 “모든 것이 나에게 가하다”고 주장했습니다(12절)

 

이것은 고린도 사람들이 흔히 주장하던 말로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그릇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속박을 받으려고 자유함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이 일이 나를 노예로 만드는가? 이러한 행위가 정말 나의 영적 생활에 유익할 것인가?”

 

둘째, 그들은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고 주장했습니다(13절).

 

그들은 성(性)을 충족되어야 할 일종의 욕구로만 취급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을 소중히 여기고 조심스레 사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음행은 성욕에 의한 것이며 탐식은 식욕에 의한 것입니다. 이 둘다 죄에 해당하며 둘 다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따라 인간에게는 정상적인 어떤 욕구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이유로 해서 그 욕구에 굴복하거나 늘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혼외(婚外)의 성관계는 파멸을 초래합니다. 이에 비해 결혼에 의한 합법적인 성관계는 창조적인 것이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혼외의 성관계에는 확실히 묘한 흥분과 쾌락이 숨겨져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혼외의 성관계는 은행에서 돈을 강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얻을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며 언젠가는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반면, 합법적인 결혼에 의한 성관계는 은행에 돈을 예금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부간의 성관계는 안전이 있고 안도감이 있으며 후에는 이익 배당금을 받습니다. 결혼에 의한 성관계는 장차 기쁨을 가져다 줄 관계를 수립할 수 있지만, 혼외의 정사는 양자의 관계를 파괴하는 길을  마련할 뿐입니다.

 

󰊲성자 하나님(6:15-18)

 

신자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12:12 이하 참조).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가 어떻게 그와 동시에 죄와 연합할 수 있는가? 그런 일은 우리를 아연실색케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방 신전의 매춘굴에 출입하고 있었습니다(당시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정에는 천여 명 정도의 성창(聖娼)들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한 영(靈)이며, 우리의 몸을 그리스도께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롬12:1-2). 날마다 자신의 몸을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것으로써 하루를 시작한다면 그날 하루 동안 그 몸으로 행하는 일들이 그전과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바울은 성 범죄의 심각함을 설명하기 위해 창조 기사를 언급합니다(창2:24 참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육체적으로 결합하면 그들은 곧 전인격(全人格)을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육체적 결합 속에는 다른 어떤 결합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깊은 “하나됨”(oneness)이 있고, 이는 깊고도 지속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바울은 음행죄는 인간이 자기 몸에 대해 지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죄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 범죄에는 전 인격이 관련되기 때문입니다(18절). 남녀의 성은 단순히 몸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남성”이라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것에는 인격의 총체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성관계는 인격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바울은 창기와 합하는 것을 결혼과 동등한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합법적인 결혼에는 책임이 내포되나 매춘에는 책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남녀가 장성하면 그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합법적인 결혼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가 어떻게 풍요한 성장의 체험이 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결혼은 서로에 대한 책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맹세하고 서로에 충실할 것을 서약할 때, 그들은 튼츤한 터를 놓는 것입니다. 그 터 위에 그들은 새로운 가정을 건설합니다. 결혼은 성(性)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울타리이며, 서로 헌신을 약속한 부부로 하여금 이 경이로운 체험에서 날로 성장해갈 수 있게 해줍니다.

 

󰊳성령 하나님(6:19-20)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지으셨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그분의 몸의 지체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성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에 내주하시면서 우리의 몸을 바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드십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어떻게 부도덕한 행위로 그것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너희”(your)말은 복수이나, “몸”(body)과 “성전”(temple)은 단수 명사입니다(19절). 이것으로 보아 바울은 여기서 개개인의 신자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 전체를 언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지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의 몸입니다. 따라서 성도 개인의 행실은 교회 전체의 영적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교회를 말하는 것이든 개개의 신자을 말하는 것이든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요16:14). 성령께서는 우리의 몸을 사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며 그분을 드높이실 수 있습니다(빌1:20-21). 우리가 성령님과 맺는 특별한 관계에는 특별한 의무가 수반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하는 일에는 이와같이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三位) 하나님이 모두 관여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이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음행죄는 한 개인의 인격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음행죄는 정서(情緖)에 영향을 끼치며 그 당사자를 노예로 만듭니다.(12하반절). 음행은 사람을 사로잡고 그의 전 삶을 타락시키며 그를 파멸로 이끄는 습관의 노예가 되게 만듭니다. 더욱 음행은 개인의 육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18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음행자, 간음자, 동성애에 빠진 자들은 그들의 죄를 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결코 그들을 망각하지 않습니다.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비록 더딜 때도 있지만 그 대가는 확실히 받게 됩니다. 죄는 용서받았으되 그 죄로 인한 결과에 영향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성에 관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영원한 결과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더없이 중요합니다. 음란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9절과 10절에서 두 번씩이나 거듭 언급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다윗처럼 자칫 그런 죄를 저지르고 또 사함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러한 죄는 아예 저지르지를 말아야 합니다(요일3:1-10).

엄밀하게 말하자면, 음행죄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죄들이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교회는 탕자의 죄는 지적하면서도 그 형의 죄는 망각하고 있습니다(눅15:11-32참조). 죄에는 육체적인 죄도 있지만 마음의 죄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망각하지만 바울은 10절에서 마음의 죄의 종류를 열거합니다. 탐심은 가진 자도 간음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지옥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고전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꾸짖어서 욕설을 퍼부음)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과 그 죄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죄인을 “새로운 피조물”(구후5:17,21)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를 만드신 성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자 하나님, 그리고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인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가 범죄하면 복음 전도 사역에 방해가 되며 성도의 교제를 더럽히게 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