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8:1] 건강한 신앙은 지식과 사랑과 양심의 조화에서

'코이네' 2016. 4. 22. 18:15

신앙, 지식과 사랑, 양심의 조화

고린도전서 8장

 

바울은 성도의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문제들을 판단하고 결정함에 있어 신자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네 가지 근본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 네 가지 원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식은 사랑과 조화되어야 한다(8장)
둘째, 권위는 절제와 조화되어야 한다(9장)
셋째, 체험은 경계와 조화되어야 한다(10:1-22)
네째, 자유는 책임과 조화되어야 한다(10:23-33)

바울이 전하는 대상은 주로 강건한 그리스도인들, 영적 지식과 체험을 소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권위와 자유를 알고 있는 신자들입니다. 약한 자를 돌보아야 할 의무는 바로 강한 자에게 있습니다.(롬14-15장).


당시 고린도에서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장소는 두 군데로서, 한 곳은 시작이고 다른 한 곳은 각처에 있는 신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의 고기 가격은 매우 비쌌으나, 신전에서 제물로 바쳤던 짐승의 고기는 언제라도 살 수 있는 적당한 가격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 중 믿음이 장성한 사람들(강한 자)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이라고 해서 더러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전에서 고기들을 싼 값에 구입하여 돈을 절약했습니다. 더욱이, 아직 회심하지 않은 친구들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들로 음식을 차려 놓고 초대를 할 경우, 그들은 가정이건 신전이건 장소를 불문하고 참석하기도 했었습니다.그러한 그들의 태도는 약한 성도들에게는 하나의 시험거리였습니다. 아직 믿음이 장성치 못한 이 약한 사람들 중의 대부분은 이방 신들을 섬기다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신자들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롬14-15장에는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식물(食物)과 절기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많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근본적으로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와 동일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도 교회가 분열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 문제를 바울에게 서한으로 문의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일깨워 줍니다.

 

1.  지식 (8:1-6)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 지식이 풍부했고(1:5), 그 지식에 대해 다소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며 , 그것을 섬기는 자들의 미련하고 어두운 마음에만 존재하는 거짓된 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전에 우상의 형상이 있다는 것은 그 우상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못 되었습니다(후에 바울은 우상을 섬기는 것은 곧 사단을 섬기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논리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신은 그의 재단에 바쳐진 음식을 더럽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강한 성도들의 지식은 이 정도까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입장이 그처럼 논리적인데, 약한 자들이 그들을 부당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문제가 다 논리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납득시켜도 밤을 무서워합니다. 어린이들이나 형들이 밤을 무서워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은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쟁용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덕성을 함양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지식을 함부로 떠 벌이면 그것은 훌륭한 성품을 함양해 주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한 태도는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늘 의식합니다. 더욱, 기독교의 교리를 안다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경 지식은 날로 더해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있어서나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성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지식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은 사랑입니다.

 

2.  사랑(8:1-3)

사랑과 지식은 병행되어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엡4:15).
“사랑 없는 지식은 야만이요, 지식 없는 사랑은 위선이다”라는 말은 우리는 흔히 듣습니다. 지식은 힘이며, 그 힘은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만 합니다. 반면 사랑은 반드시 지식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합니다(빌1:9-11)에 나타난 바울의 기도를 보라). 고린도 교회의 강한 신자들은 지식을 구비하고 있었으나 그 지식을 사랑 안에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지식으로 약한 성도들을 세워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랑할 뿐이었습니다.

강한 성도들은 약한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그들이 연약한 상태에 머물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바울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강한 그리스도인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즉, 강한 자란 원칙과 규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율법을 지켜야만 안도감을 느끼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기를 꺼려하는 자들은 오히려 약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자기보다 강한 신자들을 판단하고 그들이 하는 행위로 인해 실족하는 사람들이 바로 약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로 인해 강한 자들이 보다 연약한 그들의 형제나 자매를 도와주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등장해야 하는 때가 바로 이 시점입니다. 사랑은 “덕을 세우며” 또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지식이 사랑 안에서 사용된다면, 강한 성도들은 연약한 성도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을 일으켜 걷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아직 미숙한 성도들을 강제적으로 성장시켜 거인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지식엔 사랑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커지지 않고 머리만 커진 성도가 생깁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은 말하길 “어떤 성도들은 자라지만 어떤 성도들은 부풀기만 한다”고 합니다.지식과 사랑은 모두 중요한 신앙적 요소입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올바르게 향유하려면 지식과 사랑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3.  양심(8:7-13)

'양심'이란 용어는 단순히 “아는 것”(to know with)을 의미하며, 신약 성경에서 32 차례 쓰였습니다. 양심은 우리 행동이 판단되어, 그에 따라 용인되거나 정죄를 받는 마음의 법정입니다(롬2:14-15) 양심은 율법이 아닙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도덕 율법을 증거하는 증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양심은 지식에 근거한다는 점입니다. 영적 지식이 더욱 많아지고 더욱 그에 따라 행동할수록 우리는 보다 양심적인 성도가 됩니다.


구원받은 지가 얼마 안되어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이 약합니다. 그들은 갓난아기들처럼 조심스럽게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또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양심이 약한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무시하고 성도간의 교제를 소홀히 하며, 그 결과 유약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3:1-4 / 히5:11-14). 그런데 어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 누리기를 두려워하는 탓에 연약한 상태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으나 집 떠나는 것을 무서워하여 매일 어머니가 학교까지 데려다 주어야 하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약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쉽게 더러워지고(7절). 쉽게 상처받으며(12절), 쉽게 실족합니다(13절). 이런 이유 때문에 강한 성도들은 약한 성도들에게 양보를 해야 하며 그들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의 전(殿)에서 열리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장성한 성도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으나 약한 성도는 그로 인해 실족할 수가 있습니다. 아직 장성치 못한 성도가 성숙한 성도를 흉내내다가 죄에 빠지고 마는 것을 바울은 10절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강한 성도가 약한 성도에게 사랑으로 양보를 하는 것은 약한 성도가 장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약한 자들이 제멋대로 하도록 다 받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약한 자의 인격을 함양시켜 주고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약해지고 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 지식이 사랑으로 조절되도록 주의해야 하며, 약한 성도가 그 양심을 감당치 못하는 일을 하도록 부추겨서도 안 됩니다. 사랑과  조화된 영적 지식이 발휘된다면, 강한 자들은 연약한 자들을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연약한 자들은 바르게 장성해 강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