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합하라!
성 경: 고전1:10-17
<서론>
본문은 고린도 교회가 서로 당파를 지어 다투는 것에 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원인은 그들의 스승을 지나치게 존경한데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복음을 듣는 일과 세례 받는 일에 있어서 십자가 중심으로 하지 않고 인간 중심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서는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에게 분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복음의 참된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당파를 지어 분쟁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이와같은 분쟁의 잘못된 점을 살펴서 신앙의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1.분파의 죄악성
기독교는 성도 각자의 개체성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개개인의 개성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각각 다르며 개성이 존중되어 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다양성이란 무시되기보다 오히려 존중되고 살려야할 부분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다양한 색상의 조화가 필요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회 앞에 진리의 많은 다양성을 사용하시며, 그렇게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풍요롭게 하며, 편협하고 단편적으로 되는 것을 방지하십니다.
그러나, 이같은 다양성과 자연스러움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해로운 분열을 조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다양성과 아울러 통일성도 함께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2.분파를 금해야 할 이유
1)교회의 머리는 하나이므로 분파를 금해야 합니다.(13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은 나누어진 경우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뉨이 없는데 어찌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나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다양하고 다른 각각의 지체가 있으나, 그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유지하고 있음같이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각각 다른 지체의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당양한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모든 지체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머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하나의 머리와 하나의 몸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괴롭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언행은 삼가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의 몸으로 굳게 결속되어 있음을인하여 모든 분열과 분파를 막아야 합니다.
2)구원이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분파를 금해야합니다.(13절)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13) 이 말씀은 '바울 덕택으로 너희가 구속을 받았느냐?'는 반문입니다. 다시말해 그것이 아니라면 너희가 어찌하여 내 이름을 부르느냐?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분파심은 분파의 이름을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더 높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을 주인의 자리에 앉히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되고맙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부당한 우월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결국 우상숭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죄 없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이름이 무시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세례가 하나이므로 분파를 금해야 합니다.(13절)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13)
세례는 죄 씻음의 표징이며, 주님에 대한 충성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의식을 베푸는 사람이 비록 사도 일지라도 그 세례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세례는 성례전으로서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요, 증거요,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에 참여한 사람들이 분파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엡4:5-6절에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하나이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뿐입니다.
3.분파의 원인
1)편협한 동류의식(끼리끼리 모임)
고린도 교회의 내적 분열에는 편협한 동류의식이 그 저변에 깔려 있었습니다. 파당은 언제나 '끼리끼리'라는 편파적인 성향에서 비롯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형제 관계를 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보혈로 죄씻음 받아 새로 거듭난 같은 한 형제임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분파의식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에게 속한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분파였습니다. 아볼로에게 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기독교를 순수한 신앙적 차원에서 벗어난 헬라적인 지적, 철학적 경향을 추구하는 종교로 전환시키려는 분파 였습니다. 또 게바에게 속한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유대의 율법을 존중하여 은총을 경히 여기는 율법주의적인 분파였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배경이나 사상적인 배경을 따라 교회에서 편협한 동류의식으로 분파를 일으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인간 중심적 생각
분파의 비극은 언제나 인간 중심적인생각에서 기인됩니다. 바울사도는 본문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많이 주지 아니한 것을 오히려 감사했습니다.(14)
당시 헬라의 법에 따르면 누구의 이름으로 돈을 지불하면 그 사람의 계보에 들어가든지 그 사람의 소유가 됩니다. 또 그에게 충성과 복종을 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고린도 교회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를 따지며 분파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을 인본주의적인 신앙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보다 더 내세우는 사람, 또 인간
의 유명세를 따라 예속하려는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인이 아닌 것입니다.
4.분파를 극복하는 비결
1)사명의 참된 의식(17절)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하려 하심이니"(17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바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 교회의 분열상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는 제자화 사역의 한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자에게 세례를 주라(마28:19)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누가 세례를 주었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그 자체 만을 가장 크게 생각했을 뿐, 다른 것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인 것을 깨달아 세례를 받고자 할때에 누가 세례를 베풀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신념을 가졌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복음 전파의 중요한 사역은 뒷전에 두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듯이 이름을 내려는 인간 중심적인 생각은 사라져야 합니다. 내가 맡은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기억하여 자신의 사명에만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
바울의 평생 자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17절) 그것은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롬1:16) 본문 17절에서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에서 나타난 바와같이 바울은 순수한 마음과 용어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나타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찬란한 수식어를 동원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철학적인 지혜의 말을 동원하여 어지럽고 장황하게 설명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 그 자체는 가리워지고 인간의 달변이 무성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은 철저히 부인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구원의 무한한 능력만을 전파하고자 했던것입니다.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 된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 자세에서는 분열이란 결코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도 사탄은 교회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세상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어 분열을 일삼고 있습니다. 참으로 진정한 주님과 십자가 중심의 신앙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인간의 냄새와 거드럼과 분파가 사라지고 오직, 주님 만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복된 하나로의 화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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