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1:10] 교회분쟁의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이름

'코이네' 2016. 3. 30. 19:07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전1:10)

 

 

많은 신앙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사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물론 우리가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뜻도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순종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그렇게 많치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누리기 원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과연 내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얼마나 많은 순종을 하고 있느냐로부터 우리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때로 매력도 될 수 있지만 갈등과 긴장의 이유도 된다는 점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서로의 다름을 어떠한 자세로 보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각각 다른 특성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크게는 여자와 남자로 창조 되었으며 작게는 모두가 다른 특성의 소유자로 창조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허용하고 누리고 합하도록 하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교훈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생활의 현실속에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내의 분쟁에 대해 바울이 권면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쓴 서신서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파벌싸움이 한창이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파벌만 하더라도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분쟁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서로간의 다툼에 대해 바울은 깨달음을 주기 원합니다. 그 교훈이 바로 오늘 본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의 전체적인 핵심은 13장이며 그 핵심 단어는 사랑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훈의 실제적인 배경은 바로 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때때로 분쟁이라는 비극적인 감정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죄성인 것입니다. 본문은 생활의 세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합하라(고전1:10)

첫 번째로 우리가 본문에서 발견하게 되는 하나님의 뜻은 합하라는 행동의 결론입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요구될 수 밖에 없는 교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르게 창조하신 목적은 서로 갈등과 다투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바로 합해지는 생활의 기쁨과 다양성으로 인한 풍성함을 주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합하라는 권면은 서로가 다르나 서로가 필요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 요구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서로의 연합을 설명할 때 몸의 지체를 빌어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릅니다. 살아온 환경도 그리고 그 환경속에서 형성된 가치관도 우리는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순위도 서로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강조하며 또 자신의 경험이 모두에게 존중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하며 불안합니다. 상대가 나의 경험과 판단을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우리는 더욱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다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중독되고 맙니다. 우리는 결코 분쟁과 다툼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갈등과 긴장과 분쟁을 경험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현실 속에서 서로가 아파하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합하고자 하는 소원보다는 자신이 인정받고 나타나기를 먼저 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 누구보다도 내가 옳았다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에게 원치 않는 분열을 준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서로가 믿는 방법과 주장을 가지고 서로를 미워하며 증오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상대를 미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합하기를 원했습니다. 서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하나가 되어 사랑을 누리기 원했던 것입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의 조건을 분쟁의 조건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같은 말과 마음으로(고전1:10)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섬세하기를 권면합니다. 자신에게 충실하기 앞서 상대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이해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다른 기준과 감정을 인정하고 조정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합하기 위해서는 말이 달라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의미가 올바로 전달되지 않을 때 오해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그 오해는 인간의 관계를 어두운 골짜기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오해는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해석의 오류인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감춰진 목소리 보다는 나타난 단어를 자기 방법으로 해석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서로의 관심과 사랑이 오히려 절망과 아픔으로 전달되는 비극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나누는데는 대단히 서툴렀습니다. 그들은 각각이 기준이 되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자들끼리 뭉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단체적으로 패싸움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분쟁이 없이” 고린도 교회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일은 분쟁에 대한 분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의 감정에 빠져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행동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가르쳤으며 아볼로도 그리스도를 가르쳤습니다. 게바는 베드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역시 베드로도 그리스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배운 고린도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관심의 대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의 분열은 그리스도보다 인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할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하나의 마음과 뜻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명쾌하게 답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고전1:10)

바울은 이제 그들이 잊고 있는 신앙의 기준을 강력하게 제시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분쟁에 대해 바울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바울은 어느 한 쪽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바울파로 자청하는 자들에게 강력한 방법으로 교훈을 주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무엇이 중요한가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합하다는 헬라어는 ‘카타르티조’라고 하며 이 뜻은 ‘수리하다, 완전히 완성하다’라는 말이며 비유적으로는 ‘원상태로 회복하다, 완전히 연합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말합니다. 도대체 누가 너희의 다툼을 허용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합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신데 너희는 어찌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분열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바울은 강력한 어조로 힐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 다시말해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며 형제로서 한몸인 것을 어떻게 분열되어 서로를 미워하며 다투며 증오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앙인은 여기에 순종하고 살던지 아니면 순종하지 못하던지 관계없이 이 사실에 대해 동의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르지만 하나가 될 수 있는 비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96년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시간에 우리 인생의 기준에 대해 다시한번 확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가 다릅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지체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합할 수 있는 비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삶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합하고자 하는 열망을 막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고자 하는 하나된 삶을 우리는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행복과 그리스도의 누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이고 남자이기 전에 형제며 자매인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이 누구며 우리의 피가 어디에 속했느냐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느낌보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더 이상 감춰서는 않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시작된 96년에는 이 하나된 사랑의 실체가 우리 모두에게 넉넉함으로 누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