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은사가 가지는 네 가지 성향
우리가 성령의 은사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은사들의 몇 가지 성향을, 성격을 알아야 합니다. 그 네 가지성을 첫째는 주권성, 성령의 은사의 주권성, 둘째는 통일성, 세 번째는 다양성, 네 번째는 성숙성, 이 네 가지를 특별히 바울 사도는 이 고린도전서 12장을 통해서 천명 합니다.
첫째로 주권성,
무슨 말이냐 하면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11절 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바울은 이제 각 은사들에 관한 리스트를 서술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그 다음에11절에서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누구 뜻대로 그 뜻대로 성령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은사가 우리에게 주어질 때 기본적으로 원천적으로 은사가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뜻하셨기 때문에 또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이것이 꼭 나에게 필요하고, 이것을 통해서 기쁨의 삶을 살고, 진정한 봉사의 삶을 살고,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권대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은사를 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은사를 구할 수가 있어요 얼마든지. 그것이 14장에 가면 잘 기록되어 있는데요, 14장1절을 예를 들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4장 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네, 그래서 은사를 구하고 하나님 예언 주십시오 혹은 방언 주십시오 이 구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특정한 은사에만 매달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을 우리가 침해하는 것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단은 구해 보세요. 그러나 주어지지 않거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미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사를 선용하는 것, 그 은사를 활용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원천적으로 궁극적으로 은사는 누가 주신 것입니까? 성령 하나님이 주신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세요.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세요. 나에게 어떤 은사가 있어야 그 것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들을 섬기는 유익한 삶을 살 것인가를 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그 은사가 꼭 필요한 것 같아도 그것 주면 그것이 별로 나에게 유익하지 못할 것 같다 생각하시면 하나님이 안 주실 수도 있어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도 모든 은사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어떤 은사, 그러나 한가지 이상씩은 거듭난 모든 성도들에게 반드시 은사를 주십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기억할 것은 이 주권성 이에요, 은사의 주권성 즉 성령의 은사는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은사 문제에 관한 성령 하나님의 주권성 입니다. 주권성.
그 다음에 두 번째로, 통일성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은사 문제를 이해하려고 할 때 반드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성격 하나가 통일성 이에요.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통일, 혹은 일치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일치성 혹은 통일성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Unity,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은사를 주실 때 왜 주시느냐, 성도들 사이의 무엇을 위해서-- 일치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주시는 것이다. 자, 그것을 고린도전서 12장을 통해서 여러 가지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예컨대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2장3절, 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또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의 역사 때문에 그렇습니까? 성령의 역사에요. 성령이 아니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가 없다 -- 성령이 내게 역사 하셨습니다, 내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구주 되심과 주님 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이 내 입술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어요. 우리 모두가--한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역사이죠? 성령의 역사 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기에 4절 이하에 보시면, 4절 이하에 보시면,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그랬습니다.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우리가 여러가지 다양한 은사들을 받았지만 이 다양한 은사를 주신 성령님은 한 성령님이요, 같은 성령님이에요. 우리는 다 그 같은 성령님을 체험한 것 입니다. 다른 은사를 받았지만, 어떤 성령을 체험했어요? 한 성령님. 당신 성령님하고 내 성령님하고 다른 성령님이 아니라 같은 성령님, 은사는 다르지만 다른 은사를 받았지만, 다른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사를 주신 성령님은 꼭 같은 성령님이시다---우린 같은 성령을 체험했다.
또 5절에 보시면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 직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다양한 직임, 다양한 봉사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다양한 서비스의 직분을 주셨어요. 그러나 그 직분 가운데로 인도하신 주님은 같은 주님, 같은 예수 그리스도, 같은 예수 그리스도 - 우리가 예수님께로 왔을 때,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예수님 앞으로 왔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고, 또 우리로 하여금 너 이곳에서 봉사하라 각기 다른 봉사의 직임을 주셨습니다. 우리 직임은 달라요. 어떤 사람은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어떤 사람은 맨 앞에서 봉사하고, 어떤 사람은 맨 뒤에서 안내위원으로 평생 봉사하고, 어떤 사람은 저 바깥에 가서 차량 안내로 봉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밤낮 이 강대상에 와서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우리 주변에 참 가난하고 참 아픈 성도들을 돌아보고 늘 그들을 세워주는 일에 애쓰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 직임은 달라요. 그러나 우리를 각 직임의 자리로 보내신 그분은 동일하신 주님이신 줄 믿으십니까?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고,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우리가 하는 역사는 여러 가지 역사, 다양한 역사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를 행하게 하시는 분은 긍극적으로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4절, 5절, 6절은 이런 순서로 되어있어요.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보이십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여요? 4절은 성령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어요--다양한 은사를. 또 5절에는 주님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다양한 직임을 주셨어요. 6절에는 성부 하나님이 여러 가지 역사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임이 달라도, 역사가 달라도, 은사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성령님, 같은 예수그리스도, 같은 하나님을 체험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동일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했어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12절, 13절--자 12절, 13절 같이 읽어요. 12장 12절, 13절, 다같이 시작.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또 13절에 우리가 유태인이든 헬라인이든, 우리가 본래부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이었든, 이방인이었든, 그 당시 대표적인 이방인은 헬라인이었으니까, 또 우리의 신분이 종이었든, 또 우리 신분이 당당한 자유인이었든, 종이든 자유자든--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 한 성령으로 Baptism을 받아, 한 성령으로 Baptism을 받아 한 몸이 되게 했다. 여기서 말한 성령의 세례, 성령의 Baptism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령세례하고는 다릅니다.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내가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예수를 믿는 순간 성령이 나를 예수그리스도의 몸에 연합 시켰다, 연합을 시켰다--이것이 성령의 Baptism이에요 여기서는. 그래서 우리가 한 몸,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되었다, 한 몸인 교회에 속한 지체가 되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는 다 소속이 뭐에요? 같다. 그 소속은 어떤 소속 이에요?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물론 교회는 오늘날 다양한 교파의 모습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카톨릭, 개신교, 개신교 안에서도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뭐 굉장히 많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주적인 몸, 그리고 본질적으로 우주적인 예수그리스도의 몸은 몇 개있습니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왜 하나이냐 하면 머리가 하나에요, 머리가. 머리가 누굽니까? 교회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래서 다양한 강조점이 좀 다를지 모르지만, 신앙적인 강조점이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 한 소속을 갖고있다 이겁니다. 한 소속, 한 교회에 소속하고있다, Universal Church -- 우주적인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한 하나님, 한 예수님, 한 성령님 믿고, 체험하고, 그리고 한 교회, 궁극적으로는 한 교회, 궁극적으로는 한 교회에요--- 천국 가서도 뭐 여기 대광교회, 뭐 지구촌교회도 따로 살림 차리고 있는 것 아니에요. 네 그러니까 항상 앞에 있는 교회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옆에 있는 교회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지나가면서 항상 축복하세요. 항상 축복하세요. 우리는 다 결국 한 교회에 소속 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그 은사들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봉사하게 하신 것은 뭐냐 하면, 한 예수님 높이기에요, 한 성령님을 높이고, 한 아버지 하나님을 높이고 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 은사들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무엇을 위해 주신 것 입니까? 일치를 위해서, 다른 말로 뭐에요? 통일을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주신 거에요. 그런데 은사 받은 사람들이 자꾸만 그냥 교회를 나눠 놓으면 안 되요.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장로교는 성부 교회고 장로교 하니까-- 성부 하나님의 주권 항상 강조하고, 순복음교회는 성령 교회고-- 밤낮 성령 강조하고, 침례교회는 밤낮 예수님 소리만 하고-- 성자 하나님, 그럴 듯 하죠? 네, 그러나 긍극적으로 이 성령의 모든 은사들은 뭐에요? 우리가 한 마음으로 한 교회를 받들고 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해서 주셨다. 여기 은사의 통일성이 있습니다. 은사의 통일성, 은사의 일치성, 은사를 주신 것은 우리가 분리 되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 은사를 가지고 뭐에요?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함께 주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서, 우리가 진정한 일치를 경험 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은사 받았다는 사람이 자꾸만 나눠 논다면 이건 뭐에요?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이상한 은사를 받은 것 이에요. 망령의 은사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은사, 참된 은사는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인들의 일치를 위해서 주신 것이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은사의 세 번째 성격은 뭐에요? 다양성 입니다. Diversity라고 합니다.
Diversity, 다양성.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상호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피차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서로에게 유익이 되려면 서로 서로 다른걸 갖고 있어야 되요. 그렇죠?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이 되려면 서로 서로 따른걸 갖고 있어야 되요. 다 같은 것, 당신이 갖고 있는 것 나도 갖고 있고 그러면 뭐 당신이 나에게 도움이 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저 사람이 내게 없는 걸 갖고 있단 말 이에요. 그러니까 뭐에요? 나는 저 사람이 필요하고, 저 사람은 저 사람이 없는걸 내가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뭐에요? 나는 저 사람을 필요로 하고, 저 인간은 나를 필요로 하고, 우린 피차에 필요하단 말 이에요, 피차에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뭐에요?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 은사가 똑 같으면 안 되요. 어떤 사람은 그냥 자기가 은사 받았다고, 그래서 다 그냥 자기가 받은 은사 다 받으라고, 나한테 오면 다 받는다고, 그런데 뭐 순복음교회에 가서도 방언 못하는 사람 난 많이 봤어요--거기 가서도. 네, 다 똑같은 것 아니에요, 다 달라요. 우리가 다 같은 은사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유니폼, Uniformity란 말이 있어요, 획일성. 하나님은 획일성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획일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다양성을 원하십니다.
아까는 뭘 강조했어요? 일치성-- 그런데 그 일치라는 것은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일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일치에요. Unity in Diversity라고 그러는데,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 이에요. 은사가 다 달라요. 그런데도 기도하다 보면 하나에요, 그런데도 전도하다 보면 하나에요, 그런데도 교제하다 보면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양성 속의 일치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다 다른 은사를 주셨느냐, 다르게 주셨다. 로마서 12장에도 여러분이 연구해 보시면, 12장 6절 이하에 은사 문제를 말하면서 다른 은사를 주셨다, 우리가 각기 다른 은사를 받았다,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왜 다르게 주셨느냐? 다른 것을 가지고 뭐에요 예?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 여기 8절 이하 10절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들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리스트가, 어떤 은사들이 나타납니까? 우선 지혜의 말씀, 이것은 삶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지혜에요. 그래 가지고, 자매님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잘 도와줄 수 있어요. 카운슬링을 통해서, 격려를 통해서 도와줄 수가 있어요. 또 지식의 말씀, 이 지식의 말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어떤 특별한 은사로 어떤 개인에 대해서 정확한 어떤 무엇을 알고 있을 수가 있어요. 어쩐지 알아요, 자꾸만 알아요. 그 안걸 가지고 에- '너 나 못 속여' 뭐 이렇게 하라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지식의 말씀을 가지고 뭐냐하면 그러니까 그의 아픔과, 그의 고통을 알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격려해주고, 섬기도록 지식의 말씀을 주셨다 이 말이에요. 또 믿음--믿음의 은사, 이 믿음의 은사는 이 믿음의 은사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믿지 못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믿게 되요. 또 불신앙과 답답한 속에 있던 사람들이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그와 더불어 교제하면 긍정적이 되요. 아이, 될 거에요,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 주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과 교제하면서 나는 더 믿는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거에요, 믿음의 은사를 갖고 도와 주는 거에요.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형제와 자매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의 병을 치유합니다. 얼마나 필요한 은사에요? 능력? 행하는 사람이 있어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있으니까 불가능이 막 극복이 되요, 새 힘이 생겨요, 이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어서 그를 통해서 내 앞 길을 다시 한번 내가 전망해 볼 수가 있고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영 분별함의 은사가 있어서 또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내가 진정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도록 도움을 받을 수가 있어요. 내 곁에 방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그와 더불어 기도할 때, 또 그의 기도를 경험할 때 나는 더 깊은 기도를 경험할 수가 있어요. 방언의 통역함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시는구나. 이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가 있어요.
자, 14절부터 27절까지는 그것을 몸의 지체의 기능에 비유하고 있어요. 자 몸의 모든 지체들이 각 지체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도 같은 기능이 없어요. 다 기능이 달라요. 손의 기능이 다르고, 또 발의 기능이 달라요. 자 입이 ㅡ 지금 제 사지백체 가운데 제일 열렬하게 활동하고있는 부분은 주둥입니다, 지금ㅡ 하도 내가 말하다 피곤하니까 이 발보고 야,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너는 멀거니 서있어서 뭘 하니, 너 사라져라, 발이 사라져 봐요, 어떻게 돼요? 제가 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들은 다 자기 본위로 생각하고 자기 은사가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지백체 가운데 안 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특별히 강조된 말이 이런 단어예요. 21절 다 같이 읽어봐요, 21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은사 가운데 잘 교제하려면, 제일 중요한 자세가 무어냐 하면 이 자세예요,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하는 자세. 그런데 은사를 가지고 잘못 교만한 상태에 머물게 되면 자기 은사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뭐냐하면, 다른 사람은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쓸데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 이건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진정한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의 태도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내게 은사를 주신 것은 그거 가지고, 뭐에요 이웃을 섬기도록 주신 거예요.
그러나 또 내가 없는 게 있어요. 내가 없는 은사가 많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필요해요,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필요해요.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주실 때, 제가 어느날 갑자기 낙심 된 상태 속에서 새 힘을 얻을 수가 있어요. 제가 얼마나 여러분들을 필요로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몰랐어요? 네, 저는 여러분을 필요로 해요. 또 여러분은 제가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안 필요해 볼까요 한번? 자 옆에 있는 사람 쳐다보고, 자매님, 형제님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한번 해보세요. 좀 스위트하게 고백을 해 봐요, 무뚝뚝하게 그러지 말고. I need you,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다양성 이에요, 이것이 은사의 다양성 이에요. 하나님이 그것이 다른 은사를 주신 이유에요. 이 다양성 속에서 서로 서로 도움을 얻고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지막으로 은사의 성숙성.
성령의 은사는 사랑으로 선용되어야 한다. 이걸 사실은 여기 27절에서부터 30절까지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이것을 어디에서 다룰까요? 13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자, 이 마지막 부분에 보면, 12장의 마지막, 우리는 다 다른 은사와 은사에 따른 다른 직분을 받았다. 28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자, 29,30절 두 구절 읽겠습니다. 시작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성경이 분명히 말했는데 왜 다~ 똑같은 거 받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다 다르다 그랬어요. 다 교사겠느냐, 그럴 수 없어요. 다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겠느냐, 그럴 수 없어요. 다 방언을 말하겠느냐 그럴 수 없어요. 다 다르다 이말 이에요. 다 다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다른 은사, 은사에 따른 다른 직임, 다른 직분을 가지고 우리가 피차에게 정말 유익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숙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숙한 자, 이 은사의 성숙성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사실 제대로 은사를 받고도 막 상처만 주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성숙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숙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돼요, 사랑하는 자가 성숙한 자다. 다음 시간에 본격적으로 하겠습니다마는, 사랑은 오래 참고 이것을 이렇게 해 보세요. 어린아이가 오래 참고, 돼요 안돼요, 예? 어린아이들이 오래 참는 것 봤어요? 그런 아이가 있으면 좀 이상한 아이죠? 성숙한 사람이라야 오래 참을 수가 있다. 성숙한 사람이라야 자기 은사를 제대로 사용해서 남에게 유익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구절에, 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사랑의 은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많은 성서학자들은 여기서 은사란 말이, 큰 은사란 말이 꼭 사랑의 은사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열거한 많은 은사들 가운데서 이웃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더 좋은 은사를 구하라, 더 좋은 은사를 구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은사를 소유했든, 무슨 은사를 사모하든 그 은사를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잘 사용해야 되요? 사랑으로. 또, 사랑으로 잘 사용하려면 성숙해야 되요. 사랑과 성숙은 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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