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베드로서

[베드로전서5장] 봉사자의 자세

'코이네' 2015. 9. 17. 21:47

 

봉사자의 자세

 

(벧전 5:1-6)

 

 

이 세상에 목적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목적없는 존재가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앞에서 이일을 감당하는 봉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함을 입은 모든 백성들은 이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봉사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주신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는 봉사자의 자세를 크게 3가지로 교훈하고 있는데...

 

1. 봉사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거하는 증인이라고 했습니다.(1절)

베드로는 자신만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아니요 함께 부름받은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앞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 봉사직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하고 있는 직분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결코 명예직이 아닙니다. 나의 이력서를 채우기 위한 악세사리도 아닙니다. 본문은 말하기를 봉사직은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안에는 각종 각양의 봉사직분이 있습니다만 그 모든 일은 결국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있는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직의 귀천이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높은 직분 낮은 직분, 좋은 직분 나쁜 직분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직분은 결국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교회 직분을 이와같이 생각한다면 이는 봉사자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요 기본 자세가 미숙한 사람입니다.

 

둘째, 이 말씀은 봉사자는 고난을 받는 직분이라는 뜻입니다. 사회에서 직분을 받을 때 명예스러운 직분일 수도 있고 영광스러운 직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받는 직분은 고난이 따르기 때문에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직분입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복음의 일군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로 채우는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직분은 고난이 따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일을 위해 부름받은 자들은 마땅히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봉사자들 가운데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습니다.” 물론 힘듭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분께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힘들어서 십자가를 포기하셨습니까?” 또 어떤 분은 너무나 바빠서 교회 봉사를 못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 묻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바빠서 십자가 지시지 못했습니까? 어떤 분은 다른 분과 마음이 안맞아서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과 마음이 맞아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봉사의 직분이라는 것은 나를 위해 고난의 길을 가신 그 길을 생각하면서 나도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겠다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 봉사요 봉사자의 기본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만 봉사자를 기다리고 있다면 누가 봉사하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대단히 큰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1절 후반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거자인 동시에 장차 나타날 영광의 참여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오셔서 고난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 멸시를 받으셨고,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셨고, 왕이 되셔야 할 분이 종이 되셨고, 종래에는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3일후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우편에 앉으셨고, 심판자의 주권을 거머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맨 마지막은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봉사자의 직분을 잘 감당할 때 이러한 영광에 동참케 되는 것이요 이는 봉사자만이 갖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2. 봉사자의 일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2절)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교역자를 돕는 일이 아니요 교회의 조직이나 목회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요원이 아닙니다. 그럼 봉사자의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봉사자는 그 내용과 직분이 달라도 다 하나님의 성도를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본문은 “성도”라고 하지 않고 “양무리”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봉사자가 하는 그 일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교회의 한 일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께 속한 양무리들입니다. 당신의 권능과 능력으로 영원토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양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봉사라는 일은 바로 하나님이 구속하시고, 하나님이 양육하시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천하보다 귀한 값진 성도들을 위해 하는 일이기에 그만큼 귀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일을 한다면 대통령과 함께 일한다고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대통령되시고 왕의 왕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과 함게 일하는데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습니

까? 어찌 귀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값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그렇게 귀한 것임을 말하기 위해 본문은 “양무리”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아무리 귀한 직분이라고 할 지라도 양무리를 위해 일하는 직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를 알았기에 자랑할 조건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나깨나 그리스도의 종임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둘째, 봉사자가 얼마나 두려운 마음과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만일 엇그제 개각명단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물론 영광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일을 하는데 얼마나 두렵고 떨리우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하는데 자기 기분나는대로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안하고...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의 가치를 말하기 위해 양무리라는 말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봉사직을 귀한 것으로 두려운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봉사의 직분을 맡기면 대개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까짓거 뭐 귀챦게 하느냐고...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괜히 오라 가라 나와라 들어가라 남아라 내라...귀챦기만 하지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거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부류는 “어떻게 나같은 사람이 그 같은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하며 자격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사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떠한 자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해 일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보람있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3. 봉사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2절) 부득이라는 말은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억지로 하는 봉사는 이미 봉사가 아닙니다. 또한 책임감때문에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내 인격이 있지. 이것을 못하면 내 인격에 손상이 오니까 하기는 싫어도 해야겠구나”고 생각해서 순전히 책임감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봉사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해야 합니다.

 

둘째,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2절)“내가 이일을 함으로 뭔가 얻어지는 것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일을 하면 내 인기가 올라가고 그러면 내 정치적 발판을 굳히는데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맘으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정받을 것을 계산하고, 인기를 의식하고, 자기의 특기나 기술을 살리는 기회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가르치는 연습삼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노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성가대 활동을 하거나 경력을 얻으려고 성가대 지휘나 반주나 꽃꽃이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심지

어 어떤 경우는 교회의 인쇄물량을 따내고자 교회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신자는 자기는 장사하는 사람이니 장사에 도움이 되려면 큰 교회에 나가야 겠다고 교회를 옮기신 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봉사도 아닙니다. 봉사라고 하는 것은 나를 구속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빚진자의 심정으로 일하는 것 - 이것이 진실한 봉사자의 자세입니다.

 

셋째, 주장하지도 말고 뽑내지도 말고 요구하지도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3절) 이 말뜻은 봉사자는 시범요원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먼저 해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한대로 하게 하는 것이 봉사자의 할 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봉사자는 누구를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어렵고 구질구질한 일을 솔선수범해서 먼저해야 하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일들을 은근히 하는 사람이 바로 봉사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을 위해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저도 봉사자요, 집사님들도 봉사자요, 교사들도 봉사자요, 아무 직분도 없는 분들도 다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난관도 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고 고난을 기쁨으로 인내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특정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요구하는 자세가 아니고 뽑내거나 명령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원하는 심정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로 하나님앞에 봉사의 직분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잘 감당하면 4절에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씌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당회에서 임명받을 집사님들이여, 92년도를 위해 일 할 주일학교 교사들이여, 남.녀 선교회 임원들이여,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여,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자세에 순종함으로서 우리 모두가 최후의 그 날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