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베드로서

[벧전2:4] 진정한 교회의 모습

'코이네' 2015. 9. 13. 23:04

 

진정한 교회의 모습

 

벧전 2:4-8

 

 

신약에는 교회가 여러 모양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지가 많은 포도나무, 혹은 양들을 거느린 목자, 또는 왕이 다스리는 거룩한 도성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가 총사령관을 모신 막강한 군대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교회가 머릿돌을 가진 성전, 곧 영적인 집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그 성전이 아닙니다. 그는 오늘날도 지어지고 있는 영적인 집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교회’라고 할 때에는 물체적인 건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란 항상 하나님의 전체 백성들이나 특정지역에 있는 성도의 그룹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기초

4절에서 예수님은 “산 돌”로 불립니다. ‘둘’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명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돌은 영구성을 대변합니다. 그래서 산들은 굳건히 서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야를 돌에다 견주어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확고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만세 반석ㄹ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동일한 속성을 가기신 분입니다.

이 돌은 ‘산 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갚기 위해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일어나셨습니다. 주님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교회의 기초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세 개의 구약 본문을 인용하였습니다.

(사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시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사8:14)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올무가 되시리니

(벧전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시온은 교회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짓기 위해 예수님을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령한 작정에 의해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내가 택한” 그리스도의 권위를 배척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나는 그리스도가 나를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자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을 배겨하는 사람입니다.

“보배롭고” 예수님은 귀중하신 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귀중히 여기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그런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심판날에 그들의 귀한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6절은 예수님이 머릿돌 또는 기초라고 말합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제일 먼저 기초가 될 돌을 골라 놓아야 합니다. 이 머릿돌은 모퉁이의 교차점에 놓이고 다른 기초석들이 그 곁에 같은 각도나 높이로 나란히 놓입니다. 그리고 상부 건축물을 위한 돌들이 기초석들 위에 쌓입니다. 따라서 머릿돌이 비뚤어지면 건물 전체가 불안정하게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인 기초석(머릿돌)이라고 부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

예수께 나아온 자들과 계속 그에게 나아가는 자들이 교회의 구성원들입니다. “예수에게 나아와”(2:4), 여기서 ‘나아온다’는 말은 구약에서 경배의 장소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자기들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독립심을 기꺼이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 맡깁니다.

바꾸어 말하면 교회의 구성원들은 “산 돌같이”되고 싶어합니다. 성도들은 사람들에게서 멸시와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로 나아온 신자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수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듯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 속한 산 교회의 일부가 되고 주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각처로 흩어졌던 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당시에 기가 퍽 죽어 있었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여러분은 산 돌들입니다”라고 했을 때 실은 베드로 자신의 간증이 시사된 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반석’(베드로)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본문(2:5)에 나온 산 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교회를 지어가는 자들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교회를 믿음의 고백을 지닌 자들로 지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듭나기 전에는 죽은 돌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일에 죽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아름답거나 귀하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섬기기 위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주님께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지하의 어둠 속에 깔린 차갑고 단단한 돌들과 같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 쓸모가 있으려면 체석되고 다듬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으로 예수께 일단 ‘나아 온’자들은 거듭나게 되어 주님의 영적인 성전의 산 돌들로 살아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면 보편적인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이 말은 어던 기독교 교회의 명부에 등록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회개하면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적힙니다. 이것은 개인의 구원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반면에 누구도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하면서 지역 교회의 교제로부터 단절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산 돌들로서 함께 영적인 집을 지어져 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모든 참 신자는 제사장입니다. 신약의 교훈 위에 세워진 교회들에는 제사장들이 없고 목사들이나 다른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신자들은 누구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그럼 어떤 의미에서 신자들이 제사장일까요? 신자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대제사장인 예수님의 거룩을 반영합니다(1:15),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희생 제물을 바쳐야 하며(2:5),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고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을 배변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애쓴다면 우리는 곧 제사장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의 제물을 올린다면 우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우해 기도한다면 우리는 제사장의 사역을 행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면 우리는 제사장의 직임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희생 제물들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신중히 행하도록 권명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제사장이 되어 올리는 희생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하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도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점

그리스도인들과 비(非)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관찰력이 있는 자들의 눈에 그 차이가 뚜렷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네 우리들이 한 가지 분명히 숙지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인이라고 해서 다 진정한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례를 받았거나 주일날 교회에 참석한다거나 혹은 찬양대 대원이라거나 헌금을 잘 하는 것들이 반드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직접 만나서 그분을 구주로 믿는 자입니다. 그 후에는 사고 방식과 생활 자세에서 뚜렷한 변화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예수님의 귀중하신 분으로 비칩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2:7)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보배로운 돌이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시편 118편을 보면 건축자들이 돌을 내버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건축자들은 자기들의 목적에 맞지 않는 돌들을 내버립니다. 사람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수준이나 필요를 채워줄 수 없다고 배척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까닭은 오직 현세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순전히 물질적인 축복만 따집니다. 그들은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금 당장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들의 삶에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식으로 판단하며, 예수를 믿으면 자기들이 원하는 삶이 이루어지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내버린 분을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8절)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불신자들은 복음의 초대를 받지 않으면 이 돌에 걸려서 넘어집니다. 구원의 복음이, 진리를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마치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자기의 선택된 백성들이 진리의 길로 나오도록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를 배척하는 자들은 복음을 내던지는 불신과 불순종을 통해 멸망케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매 주일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일지도 모릅니다. 교호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교회에서 하는일에 적극적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교회를 다니는 일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서 등록을 하고 교회 생활을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어쩌면 교회의 권유나 절차에 따라 세례를 받고 모든 의식을 치룬 후 직책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 하나님으로 믿고 그분께 당신의 삶을 다 맡긴 자입니까? 복음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정말 보배로운 분이라고 여겨집니까? 그렇다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회원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