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혀를 지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가장 큰 실패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과학이 놀랄 정도로 발달하고 있지만 인간의 혀를 지배하는 과학은 발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자기의 혀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1편 3-4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주를 먹지 말게 하소서”했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내입에 파숫군을 세워 주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세요. 필요 없는 말, 무익한 말, 남에게 손해 되는 말, 헐뜯는 말, 파괴적인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세상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만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비행기나 기차나 자동차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빠른 교통 수단입니다. 그러나 일단 사고가 나면 얼마나 피해가 큽니까? 전기가 얼마나 우리 생활에 도움을 줍니까?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전기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불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필요합니까. 그러나 잘못 다루면 불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 소통으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게 되는 것은 인가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혀를 잘못 사용함으로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잠언 기자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18장 21절에 보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습니다. 우리의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죽음과 삶을 좌우합니다. 혀의 위력이 대단하므로 잘 다스리지 아니하면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 주신 말씀 5절 이하를 보세요.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분, 공장이나 집에 불이 난 것을 보셨어요? 그 파괴력은 엄청납니다. 우리의 혀가 이처럼 큰 불과 같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길이 퍼질 때 그것을 다스리기 어렵듯이 우리의 혀를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화재가 나면 비참하게 되는 것처럼 혀는 그와 같은 재앙과 상처와 비극을 초래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쟁이가 없어지면 평화가 옵니다.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불에 타는 나무를 더 놓는 것처럼 다툼을 좋아하는 자마다 시비를 일으키고 그들은 이 불처럼 무서운 파괴력을 주위에 확산시킵니다.
전에 모간 블레이크(Morgan Blake)란 사람이 미국 애틀랜타 신문에 이런 기사를 썼습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나는 죽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나는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닌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갈한 사람도 내게는 별게 아니다. 나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경멸한다. 나는 나를 통해 희생된 자를 전 역사와 전세계에 갖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다. 내 이름은 중상 모략입니다.”
우리의 혀가 가져오는 중상 모략의 파괴력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어느 교회 성도가 그 교회 목사에 대해서 입에 담기 어려운 정도의 말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만나서 또는 전화로 헐뜯었습니다. 아무 근거도 없는 것 가지고 말하자면 중상 모략을 했습니다. 목사도 그 아무개가 그런 터무니 없는 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소식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목사가 교인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해명할 수 있습니까? 그저 마음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부인이 찾아와서 목사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죽을 죄를 지었어요. 제가 시험에 들었었어요. 그래서 목사님의 인격에 타격을 주는 말을 퍼뜨리고 다녔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때 목사님은 “그러세요, 그러면 오리 털 베갯속의 오리 털을 동리로 다니며 다 뿌리세요.” “네 알았습니다.” 그 부인은 동리로 다니면서 오리 털을 다 뿌리고 돌아왔습니다. “목사님, 오리 털을 다 뿌렸어요.” “그렇습니까? 수고스러운 대로 그 오리 털을 그 베갯속에 다 모아 담으세요.” 한참 후에 돌아온 이 부인이 “목사님 오리 털이 이미 다 날아가 버렸어요” 그때 목사님이 “자매님, 자매님을 제가 용서하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쏟아 버린 말을 주워 담을 길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도둑질은 아무리 해도 다시 갖다 줄 수 있어요. 그러나 남을 중상 모략한 말은 되돌려 줄 수가 없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번 한 말은 다시 회수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신상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혀의 영향력이 이처럼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신앙생활에 승리 할 수 있습니다.
by 코이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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