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브리서11장] 아름다운 믿음 / 김창인 목사

'코이네' 2015. 7. 31. 23:13

아름다운 믿음 (히브리서 11: 23-29)

 

이 시간에는 히브리서 11장 23절에서 29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아름다운 믿음』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는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낳았을 때 그 아이의 준수함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그 부모가 그 아이의 준수함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사람들은 준수하다고 할 때에 톱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톱이라는 말에는 '아름답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그 됨됨이에 따라서 생활도 하고 믿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성품이 선하면 부부 생활도 선하게 하고 직장 생활도 그리고 교회 생활도 아주 착하게 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 즉 고약한 사람은 부부 생활도 고약하게 하고 직장 생활도 그리고 교회 생활도 고약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됨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를 가리켜 아름다운 아이라고 한 것은 인품이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일평생 살아온 생활이 아름답고 그의 믿음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운 믿음이 무엇이냐는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I. 뿌리깊은 믿음(23-24절)

 

 

뿌리깊은 믿음이 아름답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뿌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나무를 가만히 보아도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가뭄이 드는 해에도 걱정 없이 잘 자라고 크게 자랍니다. 그래서 아주 큰 재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초가 깊은 집이 견고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뿌리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뿌리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됩니다. 23,24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아는 사람, 바로 그 인생이 훌륭하다는 그 말입니다. 거절 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며 그 사람은 비극적인 인생이 됩니다. 또 비겁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그 말로가 비참해집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은 17세에 형들의 손에 의해서 애굽 왕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려가 종살이를 합니다. 그 집에 팔려가서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집 주인은 시위대장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경호실장인 까닭에 밤낮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시간이 많아 남편이 없을 때 자기 집의 잘생긴 종인 늠름한 요셉 청년을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 나이쯤 되면 여인의 사랑이 그리워 질 때도 되었습니다. 눈감고 그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면 얼마나 그 집에서 그 여인의 사랑을 받고 잘 살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절함으로 끝났다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후에 치러야 할 엄청난 댓가, 즉 희생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요셉이 거절한 결과 그는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중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의 제2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아는 사람, 그 용기 그 믿음을 성경은 아름답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 마귀가 뱀으로 둔갑하여 하와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사탄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 유혹에 빠지고 말아서 마지막에는 자신들도 불행해지고 온 인류에게 천추의 한이 되게 하는 불행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보아도 거절할 줄 아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의 모세가 바로 그런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장성한 후에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왕궁에 들어가 그런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자기 평생에 어떤 노력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어떤 공로를 세워서도 그 자리는 댓가로 주어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는 공주의 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세와 부귀영화가 약속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이것이 아니다 하고 박차고 나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공주의 아들이 아니요' 하고 뛰쳐나왔던 것입니다. 그 뒤에 치루어 지는 희생이 얼마나 컸습니까? 그런데 이 엄청난 혜택을 포기하고 마지막에는 망명 생활까지 해야 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모세가 만약에 이 자리를 거절하지 못하고 바로 왕궁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그대로 그 인생은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했기에 그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까닭에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거절할 것은 거절할 줄 아는 용기와 신앙 그리고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렇게 거절하기까지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낳을 때에 믿음으로 낳았다는 기록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기도 많이 하고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임금님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들을 석달 동안이나 숨겨 길렀습니다. 낳자마자 나일 강에 버리라고 하는 왕의 명령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모세를 기를 수 있는데 까지 기르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불의와 더불어 타협하지 않는 부모의 신앙을 모세가 물려받았던 것입니다. 이런 뿌리깊은 믿음이 거절할 것을 거절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린 그 부모의 믿음이 모세에게 뿌리가 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뿌리내린 믿음은 어디 가서나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일당 백, 일당 천을 할 수 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리켜서 성경은 아름다운 믿음, 불의와 더불어 타협하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자손들에게도 뿌리가 내리고 꽃 피우시기를 바랍니다.

 

 

II. 참여하는 믿음(25-26절)

 

 

참여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온갖 좋은 것을 다 갖춰 놓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그 동산에 사람을 하나 만드셨는데 남자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시고서도 좋지 않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여자를 만들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은 혼자서는 못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울려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한 가정은 운명을 같이 하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한 식구가 되어 성공하면 함께 성공하는 것이고 망하면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망했는데 나 혼자만 잘 살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더불어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사업을 시작하여 물건을 팔려고 해도 사람들이 다 망했으니 누가 그 물건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의 불행에 대해 눈감으면 안됩니다. 거기에 우리가 끼여들고 참여해야만 합니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고난에 참여해서 함께 울고 함께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25절을 보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왕궁을 버리고 종살이하는 자기 동족에게 뛰어 들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큰 재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고난에 모세가 뛰어들지 않고 동참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모세는 추앙 받는 역사적인 인물은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과 믿음에 따르는 온갖 고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수고와 고생에 방관하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생할 때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란 오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이요, 교회 일에 참여한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일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과 더불어 고난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일에도 발 벗고 뛰어 들어서 같이 동참하는 믿음을 성경에서는 아름다운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책 중에 <천로역정>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사람인 존 번연입니다. 존 번연은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할 정도로 무식했습니다. 그런데 존이 자라서 17세가 되자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크롬웰 장군 밑에서 3년간 군인 생활을 할 때에 마침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존이 전쟁에 참여했는데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허무를 느끼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존이 믿음 생활을 하기 시작한 원인이었습니다. 처음 믿음 생활을 시작했지만 왜 그런지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성경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때라 교회에 가서 설교만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존은 이것이 무척이나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부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신랑의 옷을 한 벌 못해 줄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아주 귀중한 것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존이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던 성경책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그는 너무나 좋아서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묵상하고 연구하는 중에 자신의 믿음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존의 가슴에 복음이 부딪쳐 왔습니다. 그 순간에 그의 가슴은 뜨거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길에 나가서 자기가 깨달은 것을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교회에서는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영국의 국교는 성공회였기 때문에 성공회 외에 다른 종파는 용납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국교인 성공회말고 다른 종교를 믿으면 감옥에 가야만 했던 때입니다. 그렇지만 진리를 발견하고 가슴이 뜨거워진 번연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갔다가 풀려나면 또 나가서 전하다가 매를 수없이 맞았으며 감옥에 드나들기를 제 집처럼 하였는데 나중에는 12년간 감옥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천로역정은 바로 존이 감옥 안에서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느꼈던 것을 쓴 것입니다.

 

 

이 천로역정의 내용을 보면 장망성 즉 장차 망할 성에서 떠나 천성에 가기까지 기독도라고 하는 사람이 온갖 유혹과 고난을 이기며 천성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 믿고 믿음 생활하면서 천국에 가기까지 성경의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준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얼마나 유명한지 전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는 책이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은 한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존 번연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분명히 그는 편안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일이라면, 주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고난이라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뛰어 들었다가 감옥에까지 갇혔으나 마지막에는 전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이란 무사안일주의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졌으면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가졌으면 고난의 현장에 동참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그렇게 봉사하다가 나중에는 귀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참여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참여하는 믿음을 성경에서는 아름답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도 이런 아름다운 믿음으로 꽃피우시기를 바랍니다.

 

 

III. 모험적인 믿음(27-29절)

 

 

27절에서 29절까지를 보면 "믿음으로 애굽으로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느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이 말하는 세 번째 아름다운 믿음은 모험적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모험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모험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아무 일에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라고 생각될 때에는 우리가 몸을 던져 모험을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무모한 모험을 했다가는 망신당하는 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중에 마귀가 예수님에게 여기서 사뿐히 뛰어 내리면 천하만민이 당신을 따를 것이라고 할 때 뛰어 내릴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책망하면서 마귀를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예배당 꼭대기에 올라가서 "믿습니다" 하고 뛰어내려 보십시오. 천 명이면 천 명 모두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박살이 날 것입니다. 이런 모험은 성경이 명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에 모험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할 때에는 몸을 던져 모험을 하는 것이 믿음이요 또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 오늘의 본문이 가르쳐 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 당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간 것은 하나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로 가면 홍해 바다가 가로 놓여 있다는 것을 모세가 왜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그 때 모세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애굽 땅에서 떠나는 남자만 20세에서 60세까지 60만이면 부녀자와 아이들을 합하면 적어도 300만이나 됩니다. 이렇게 많은 무리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려면 몇 명이 타는 배가 몇 척이나 있어야 된다는 계산을 하고 그 배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아마 3,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니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서 보니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바다를 가르시고 육지가 드러나게 하시므로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모험적인 믿음이며 또한 승리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을 양식을 하나도 구할 수 없는 광야로 아무 준비도 없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기 때문에 모세는 떠났습니다. 광야에서는 쌀 한 톨,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으로 쌀 한 톨 준비 없이, 물 한 방울 없이 뛰어든 것은 모험 중의 모험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갔더니 하늘의 양식인 '만나' 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메마른 광야 한 복판에 있는 반석에서 생수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나갔더니 가나안 땅까지 가는데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험적인 신앙인이 가는 길에는 반드시 하늘이 열리고 반석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적인 신앙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모세는 다만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을 했을 뿐입니다. 계산해 보면 도저히 불가능했던 일도 모험적인 신앙으로 나갈 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험적인 신앙으로 나갈 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험적인 신앙이 여러분들의 생활에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아름다운 믿음이란 뿌리깊은 믿음이요, 참여하는 믿음이며, 모험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도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 아름다운 믿음이 되어 모세처럼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