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사도행전

[행21장] 본분을 다하는 자 본분을 망각한 자

'코이네' 2015. 3. 15. 01:33

본분을 다하는 자 본분을 망각한 자

 

성 경: 행21;27-40

 

 

1,본분을 다하는 바울

2,본분을 다하는 천부장

3,본분을 망각한 유대인들

 

 

심방을 하다가보면 개를 기르는 집에 갈때가 있다. 대문에 들어 서기가 무섭게 개가 맹열히 짖어댄다.

집 주인이 개를 꾸짖기도 하고 개를 개 집에 몰아 넣기도 한다. 그러나 개는 막무가내기다. 주인의 다리 가랭이 사이로 사나운 이빨을 치켜 들고 계속 물듯이 짖어댄다. 그럴 때 어쩔줄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사람은 그 개의 주인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인이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중에도 목사인 저는 많은 것을 깨닫고 많은 것을 배우게된다. 마치 그 사나운 개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목사님 그리고 심방 대원들이여 나의 주인이 나를 먹여 기르고 있는 뜻은 개의 본분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개의 본분은 낯선 사람이 집안에 들어서면 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짖는 것은 목사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개인 나의 본분을 다하기 위함인즉 조금도 고깝게 생각마시고 목사님은 목사님의 본분을 다해 주십시요"라고 개가 나를 격려해 주는 것만 같다. 그렇다. 모든 피조물이 다 그 나름대로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들에 이름도 없이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작은 풀잎 하나라도 그 나름대로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이라고하는 사람이야 말해서 무었하겠나? 더우기 조물주 하나님을 신봉하고 살고 있는 성도들에겐 더더욱 귀한 본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분에 보면 자기의 본분을 다 감당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본분을 망각한 사람들이 있다. 오늘 우리들은 이 본문을 살펴 봄으로써 과연 나는 나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지난 시간의 연속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의 제안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사도 바울이 나실인의 의식을 거행키 위하여 자비를 들여 몇 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결례의 기간 동안 결례를 다마쳐 갈려는 때에 예기치도 않았던 곳에서 사건이 전개되었다.

 

무슨 일인고하면 바울이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고 있는 동안에 예루살렘에는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몰려 들었다. 물론 이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바울이 이방인의 선교사였기에 성전에 이방인들을 데리고 들어 갔다고 생각을하고 무리를 선동하여 난동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 성전 앞에는 헬라어와 라틴어로 이방인이 들어 오면 사형에 처한다는 푯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성전터를 이토록 귀중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바울이 이 거룩하게 생각하는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오해때문에 난동을 부리게 되었고 그 결과 바울을 체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난동 소리를 듣고 백부장이 달려 왔고 천부장이 달려 왔다. 여기에서 누가 무었을 했나를 살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1,본분을 다하는 바울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도이다.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하여 이방 땅에서 죽을뻔한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또 많은 매질을 당하면서 또 감옥에도 많이 같이기도 하면서 많은 고생이 있었으나 바울은 복음 전파가 그의 사명이었기에 복음 전파를 목숨보다 더귀하게 여기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힘차게 달려 온 것이다.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배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키 위하여 사력을 다한 복음 전도자였음을 우리는 계속해서 보아 왔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노라"(딤후4;7-8)고 하면서 그의 말년을 회고했던 것처럼 바울은 주께서 주신 자신의 사명 즉 자기의 본분을 최선을 다해서 아니 목숨을 걸고서 감당해 온 사람이다.

 

오늘 날 목회의 경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계에 이름이 나면 날수록 겸손해지시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그 반대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그 성공적인 많은 목회의 경륜을 가지고도 끝까지 겸손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그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2,본분을 다하는 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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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4절에 로마 군대의 고급 관리인 천부장이란 장교가 있다. 천부장은 천명의 부하를 거느린 사람을 천부장이라고 했다. 이 천부장은 로마의 군대 장교로 식민지인 이스라엘의 치안을 위하여 파병된 군대의 장교였다. 32절에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치기를 그치는지라"

 

천부장은 소요의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소집했다. 뿐만아니라 천부장인 자신도 함께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 갔다고 했다. 얼마나 본분에 충성스러운 천부장인가?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공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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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성도이면서 사회의 일원임을 잊어서는 않된다. 무슨 말인고하면 교회에서는 잘하는데 교회밖에서는 자기의 본분을 종종 잊어버리고 사는 그런 교인들이 간혹 있다. 얼마전에 교인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법을 집행하는 모 검사 부인의 땅투기 부정 사건으로 말성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또 모 병원의 원장부인들의 엄청난 부정 부패의 사건으로 사회를 놀라게한 사건이 있었다. 공인으로 공인의 사명을 망각하는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오늘의 천부장은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매 있어서 신속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본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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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사회적인 위치는 어떠한며 여러분들의 직위는 무었인가? 여러분들은 그 사회적인 책임을 맡은 사람들로서 마땅한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부디 어디를 가든지 여러분들의 뒤에는 사회인 말고도 성도라는 본분이 함께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살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이 맡은 사회적인 책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바로 알고 살때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 있는 것이다.

 

3,본분을 망각한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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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나 로마의 군인인 천부장이 자기들의 본분을 충성되이 잘 감당하고 있는 반면에 자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사람들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를 한다. 유대인이란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부른 하나님의 선민이다. 롬3;1-2절에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었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었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음이니라"

유대인의 나음이 전 세계를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인 말씀을 맡은 자라고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또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도록 작정을 하시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세계를 위한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사명을 망각하고 그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저들은 저들의 사명을 망각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들도 복음으로 돌아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 문턱을 높이 쌓아 올려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들어 갈려는 남들도 못 들어가게 했던 것이다.

 

오늘의 본문을 보라. 사도 바울이 무슨 일을 했다고 이들이 폭력을 쓰고 있는 것이가? 이유도 제되로 알지도 못하면서 바울을 모함하여 결박해서 매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 왔다고치자 바울이 무엇하러 성전에 들어 갔는가? 이방인을 인도하여 하나님을 믿게한 것이 죄가 된다는 말인가?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죄란 말인가? 전도의 사명을 가진 사람이 도리어 전도의 문을 막거나 남의 신앙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도리어 남을 타락케 한다면 이는 본분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나름 나름대로의 본분을 주셨다. 교회 안에서도 그리고 교회 밖의 삶에서도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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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자리 하겠다.

옛날 예수님께서 폭도들에게 잡히시어 십자가의 형장으로 끌려 가기 위하여 심문을 받으시고 있던 날 밤이었다. 그 밤에 주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던 제자가 거기서 숱불을 쬐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린 비자 하나에게 정당하게 예수의 제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가슴 앞은 실패의 말을 하고 말았다. 다른 제자들이 다 주를 버리고 모른다고 할지라도 자기만은 주님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맹세를 하던 제자였다. 그가 바로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인였는데 단 한 순간에 그것도 어린계집아이 앞에서 대 실패자가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패배자를 승리자의 자리로 승격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시골 집에서 때를 맞추어 울고 있는 새벽 닭의 울음이었다. 비록 집에서 기르는 작은 동물이지만 그것이 자기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할 때 귀중한 한 사람인 주님의 제자가 새로이 만들어 졌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시던 날 새벽에 닭이 울지 않았다고 가정을 해보라. 새벽을 알려야하는 닭이 본분을 그날 그 새벽에 울어야하는 닭의 본분을 잊었다고 가정을 해 보라. 그렇자면 성도인 여러분들의 사명 즉 여러분들의 본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란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또 가정에서 여러분들의 맡은 바 본분을 다한다면 교회도 사회도 가정도 새로와 질것이다.

 

내가 본분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내 주위에 회개하지 못한 베드로가 있지 아니하도록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들의 본분을 지금 보다 더 열심히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 멘 !!!!!!!!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