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사도행전

사도행전16장,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주저앉지 맙시다, 박조준목사

'코이네' 2014. 11. 15. 22:43

사도행전 16:1~15 / 박조준 목사 설교

꿈이 안 이뤄져도 주저앉지 맙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꿈이 있습니다. 이 꿈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주간 어떤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이 젊은이는 자기가 계획하고 구상하는 놀라운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젊었습니다. 굉장한 포부와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그만 그의 놀라운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고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는 좌절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는 가운데는 한번 마음먹은 일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기에 실망이 있고, 낙심이 있고, 좌절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는 가장 부요하고 모든 것이 풍성한 비두니아로 가는 것에 대해서 아무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비두니아로 가는 길이 막히고 대신에 비두니아와는 아주 대조적인 가난한 곳, 드로아로 갈 수밖에 없게끔 되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는 가보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아니하고 계획에 전혀 없었던 드로아에 이르게 되니 순간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로아에 가게 하신 분명한 뜻이 계실 것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 있을 때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환상을 보는 순간, 바울은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는 환상이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 되고, 그 환상을 따라 이미 주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위대한 봉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의 계획이나 꿈이 안 이뤄질 때 누구를 원망하거나 낙심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승리한 사람들은 꿈이 안 이뤄질 때 주저앉지 아니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은 농민화가로 유명해 졌습니다마는, 본래 밀레는 너무너무 가난해서 새 그림의 소재를 발견하고도 그 그림을 그릴 만한 캔버스를 사지 못했습니다. 그는 너무 힘이 들고 낙심되어서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이미 그렸던 낡은 캔버스에 다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밀레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게 했습니다. 그가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히려 밀레에게 성공의 발판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꿈의 소년 요셉을 보세요. 그의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것이 밉고 싫어서 자기들을 위해 멀리까지 심부름을 온 동생 요셉을 잡아서 물 없는 웅덩이에 넣어 굶어죽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애굽으로 가는 대상(隊商)을 보고, 죽게 하는 것보다 돈 얼마라도 받고 파는 것이 좋겠다는 안을 받아들여 요셉의 형들은 동생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어릴 때 품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을 원망하거나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애굽 왕의 근위대장 보디발에 집에서 말하자면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종으로서 그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보디발이 옆에서 볼 때 너무 신실하게 보여 그의 집안 살림을 모두 맡겼습니다. 요셉은 종살이하게 되었다고 낙심하고 절망해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젊은 아내의 감당키 어려운 유혹이 있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단호히 그 유혹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캄캄한 감방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요셉은 그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13년간의 고생 끝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돈 받고 팔아버렸던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요셉의 말 한마디면 원수 갚는 것은 문제 될 것도 없었습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이 원수 갚을 것이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나를 애굽으로 보낸 자는 형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려운 처지에 이른 경험이 있습니다. 내가 품고 있던 푸른 꿈이 산산조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도저히 품었던 꿈을 실현시킬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바울처럼 비두니아로 가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품었던 꿈과는 너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계획한 적도 없고 원하지도 않았던 드로아로 가고 있는 것을 보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일에 직면할 때 어리석게 후회하지도 않았고, 나약하게 주저앉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좌절대신에 드로아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지난주일 생각한 말씀처럼, 바울은 로마로 호송되어가던 중 뜻하지 않은,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광풍을 만날 때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 사명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실망하거나 주저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캄캄하고 답답해도, 꿈이 있는 한 늠름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버리면 실망하고 주저앉아, 인생을 초라하고 비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 왕의 마지막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손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의 꿈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마음입니까? 그래서 다윗은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여러 해에 걸쳐서 했습니다. 그는 성전에 필요한 자재를 다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집을 짓게 하여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해 정성껏 모든 것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 마음에는 뼈저린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윗이 당한 아픔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일을 꿈꾸며, 높은 이상을 가지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목표를 세웁니다. 그러나 그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다윗은 그의 귀한 꿈이 안 이뤄질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스스로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아니하고, 새 용기를 얻었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8장 1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殿)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방법대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은 다윗 왕이 세우고자 했던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다윗 왕의 마음속에 세워진 성전을 이미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겠다는 확신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결과를 중요시합니다. 그 동기와 방법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좋은 결과만 나타나면 다른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실제 결과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손과 발이 그 일을 성취한다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만 굳게 먹으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천국에 가면 놀랄 일이 많을 것입니다.

 

 

우선 세상에서 "저런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천국에 가 있는 것을 보면서 아마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반면에 "저 분이야말로 하늘 나라에 가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으실 거야"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던 분이 천국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생각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세상에서 명예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던 사람이 천국에 가서는 아무런 찬사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저들은 세상에 있을 때 자기 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진리이지만 그것을 자주 잊고 지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각 사람에게 주어진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가 다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를 맡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를 맡았든지 맡은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결과보다 그 동기를 보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절대로 우리를 망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꿈이 안 이뤄져도 주저앉지 말고 그 꿈을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꿈이 이뤄지고야 맙니다.

 

 

20세기의 미국 흑인의 우상 같은 지도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당장에 이 꿈이 안 이뤄진다 해도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꿈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같은 환경에 사는 것 같지만 꿈을 가지고 사는 것과, 꿈이 없이 사는 것은 삶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의사였던 누가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떤 여인이 18년간이나 그 등이 굽어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육체적으로 당하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심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사실 이 여인에게 있어서는 육체적인 원인보다 정신적인 원인이 더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인 누가도 이 여인은 정신적인 질환이 문제가 되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여인은 등이 굽어지면서 열등감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게 되면 그 여인은 사람들이 자기의 굽은 등을 쳐다본다고 생각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여 서서 이야기하는 것만 보아도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이 핸디캡은 이 여자의 삶에서 즐거움을 앗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이 여인의 삶은 고통만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인이 하루는 예수님을 뵙게 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 여인을 향하여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인아, 네가 이제 정신적인 질환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 여인의 등을 똑바로 펴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실망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어려움에 관계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이 여인의 생각을 변화시켜주신 것입니다. 의사 누가는 이 여인이 고통과 혼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비관하고, 실망하고, 주저앉는 대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등이 굽은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마음으로부터의 병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 마음으로부터의 병,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프게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 몸 전체가 아프게 된다고 합니다.

 

 

정신요법의 권위자인 폴 두 보이스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교적 믿음은 영혼과 심신의 질병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발견한 치료방법 가운데 가장 효력 있는 약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등이 굽은 사람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을 압박하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 만나면 주님께서 우리의 어렵고 불리한 조건을 제거시켜주시고, 좌절을 딛고 일어서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변경시키고, 불리한 조건을 바꿔놓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그대로 머물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행복해지도록 내적인 힘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내적인 행복이 밖에 나타나는 환경이나 조건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악한 환경과 조건하에서 실망하거나 주저앉지 아니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줍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으로 인한 좌절감을 생각해볼 때, 누구에게나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우리에게 닥치는 불리한 조건들에 어떻게 대응해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를 잡지 못해서 실망합니다. 실망과 좌절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리고 맙니다. 주저앉는 것은 가장 나쁜 정신적인 상처입니다. 주저앉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끔찍스러울 정도의 깊은 상처를 납깁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화를 잘 내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환경이나 불리한 조건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저앉는 것이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주저앉으면 용기가 없어지게 되고 우리가 아주 약해져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주저앉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시편 37편 4~5절을 보세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로다" 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그 일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절대로 주저앉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아주 눌러버려서 주저앉았었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면 그 능력의 손길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을 때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 가지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그만 주저앉아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사람을 주저앉아버리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불의 선지 엘리야도 이세벨의 위협에 멀리 도망해서 로뎀나무 밑에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고 힘을 얻어 그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도 그 당시의 모든 부정과 부패를 공격하다가 감옥에 수감되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나 혼자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낙심하여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불같이 뜨거움을 주셔서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아니하리라' 했더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게 되어 다시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도 원수들이 대적하며 훼방을 했습니다. 얼마나 심했으면 바울이 옷을 떨며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가리라"고까지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날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일시적으로 넘어지고 패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저앉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나면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합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거나 실패하지 아니한다는 보장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심지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절대로 주저앉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 말씀, 저는 이 말씀을 너무 좋아합니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 힘이 솟아납니다. 바울은 최악의 경우를 최선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고통과 역경을 선용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실망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환경과 조건에서 주저앉지 아니하고 힘있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꿈이 이뤄지지 않아도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아니하고, 끝까지 꿈을 붙들고 힘차게 나아가 주 안에서 꿈이 이뤄지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