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자료

[어린이주일 설교] 잠 4:1 무엇을 가르칠까?

'코이네' 2024. 5. 3. 21:19

무엇을 가르칠까?

본문 : 4:1-9

어린이주일 설교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자녀 양육에 대하여 말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하여 언제나 깊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대단히 많은 부족이 있는 모습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서로에게 가르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잠언 기자자신의 아버지 교육에 대단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여기서 '유약한'이라는 말은 '연하다, 부드럽다'는 의미입니다. 약해서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유순하게 순종하는 긍정적인 의미가 강한데 이것을 보다 겸손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잠언 기자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외아들이라는 좋지 않은 교육환경에서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교육이 중요했고 어머니의 부드럽게 살피시는 손길에서 부드러운 사람으로 자라났음을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좀 새롭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절에도 보시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또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6장에도 보면 "아비들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를 말씀합니다.

 

성경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였으니까 그렇게 표현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자녀교육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을 전혀 도외시하지 않고 있는 점을 보아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즈음 우리 가정에서 남성들이 역할이 극소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가부장적인 질서를 강조하고 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런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남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성경이 일방적으로 남성 편을 들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묘한 것은 성경이 결혼하기 이전의 남성의 역할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시절은 청년들이라는 포괄적 의미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남과 여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부터는 조금 달라집니다.

 

결혼한 후에는 남자, 여자라고 말하지 않고 남편과 아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성의 구별이라는 측면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얘기하고 남편과 아내로 말씀 있습니다.

 

남성은 남성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 그리고 남편으로서 있습니다. 남성은 가정의 가장입니다. 그래서 남성이 머리이지 성의 우월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은 가정의 가장이요, 제사장이요, 그리고 가정을 책임 있게 이끌고 나아갈 지도자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아버지 여러분, 그리고 아버지 되여러분! 여러분에게 특별한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땀 흘려 돈을 벌어다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가족 모두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지도력을 갖추고 이끌어야 할 지도자입니다. 자녀교육에 대하여 성경은 아버지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강조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살아나야 합니다.

 

요즈음 대다수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실종되어 가고 있습니다. 흔히 듣는 말 중에 좋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아버지들의 말입니다. '나는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당신은 집에서 놀면서 애들 하나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 뭐한 거야'

 

물론 자녀들이 어머니와 공유하는 시간이 아버지와 공유하는 시간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올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자녀의 양육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아비들과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래서 어머니들은 아버지의 교양과 훈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의 가르침의 권위가 살아있을 환경을 조성해 줄 책임이 있습니다. 남편들을 아이들에 대한 가르침으로부터 제외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우리보다 앞선 사회가 이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소위 선진국들이 청소년 문제와 가정의 붕괴라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치유하기 위하여 여러 노력을 하는 중의 하나 두드러진 노력이 가정의 회복 운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아버지들은 회사에서의 진급이나 승진을 포기하는가 하면 회사를 경영하면서 성장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충실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나 부모다 가정이 그리고 가족이 귀함을 인식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가치가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고무적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교육에 대하여는 부모가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사실인데 자녀의 가르침은 아비의 입을 통해서 나오도록 성경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제대로 자리 잡고 살아나서 아버지의 교양과 훈계로 여러분의 가정이 복된 가정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 기자는 아버지께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깨닫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번째가 순종입니다.

 

요즈음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가 어디에서든 순종이라는 가치가 상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종을 얘기하면 박물관에 전시품을 보여주는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순종을 말씀하면 '저 양반 자기 말 들으라고 하는구먼. 독재하려고 하는구먼' 생각합니다. 성경 중에 두 구절 만 보겠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58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라고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을 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 님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 님은 아들이요,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아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완전하실지 모릅니다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들이시라고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을 즉" 예수 님의 온전하심이 무엇에 있습니까? 아버지께 대한 순종에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평생을 걸고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성경의 큰 줄기를 말해보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책이다.' 성경 안에는 불순종과 반역의 얘기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고통이 가득하게 됩니다. 마귀가 무엇입니까? 천사장인 루시퍼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해서 생겨난 존재입니다.

 

또 하나 찾겠습니다. 에베소서 6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자녀들과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들에 대한 성경의 명령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은 아비들에 대한 명령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아비들과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비들에 대한 명령의 첫 번째는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이고 자녀들에 대한 명령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에 가져야 할 삶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어떤 의미에서 곧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순종했느냐?'에 대한 책입니다. 순종을 얘기하면 인간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 같고, 은근히 우리 사회 현실이 인간 권리의 회복 수단으로 저항과 불순종을 부추기는 듯한 경향이 있습니다만 순종은 성경이 가르치는 위대한 진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엇이 복입니까? 누가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순종이라는 가치가 살아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오늘 주신 말씀 5절에서 지혜와 명철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지혜와 명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기자의 아버지는 잠언 기자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르쳤는데 지혜와 명철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의 생애 가운데 무엇이 참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삶의 가장 귀중한 재료인가를 알았습니다. 지혜와 명철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권고합니다.

 

지혜와 명철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잠언은 말씀합니다. 25절 이하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히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어느 분은 말합니다." 약 당신의 자녀들이 커서 신앙을 간증할 때 부모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를 통해 예수 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무게가 있는 지적을 합니다.

 

믿지 않는 부모라면 이별수 없겠지만 믿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의 입에서 내 신앙의 표본은 부모님이라고 하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자녀를 둔 부모는 행복한 분들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오길 바랍니다. 여기에 지혜가 있습니다. 명철히 있습니다. 가만히 보세요. '저는 부모님의 신앙을 존경합니다.'는 자녀치고 못 되는 자녀 보셨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집 자녀들은 그 모양새도 부모 닮았지만, 신앙그렇더라고요. 예외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 자녀의 외모를 보면 어느 집 자녀인지 알 수 있듯이 그 아이의 신앙을 보면 그 부모를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감명받은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백화점에 갔는데 어떤 예닐곱 살 먹은 아이가 엄마랑 함께 백화점에 왔더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싶었던지 별로 값이 나가지는 않는 것이지만 조그만 장난감을 호주머니에 슬쩍 넣는 것입니다. 사실을 이 아이가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 엄마는 아이를 꼭 안아 주더니 뭐라고 얘기를 한참 하더니만 아이를 밀어내는 것입니다. 아이는 밀어내는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그래도 엄마가 자꾸 손짓하니까 이 아이는 할 수 없이 걸어갑니다. 보니까 백화점 점원에게로 갑니다. 그리고는 점원에게 말합니다. '제가 장난감이 너무 갖고 싶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훔치고 말았어요. 용서해 주세요. 이거예요.' 그러자 엄마가 점원 앞에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서는 '너 정말 갖고 싶었니? 갖고 싶은 것은 훔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얘기해서 사 달라고 하는 거란다. 여기 있다.' 그리고는 훔친 장난감을 사서 아이의 호주머니에 넣어 주는 것입니다. 지혜가 넘치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다음이 더욱 감명 깊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는 그 아이를 백화점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아이를 앉아서 아이를 꼭 안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멋진 엄마라 생각되어서 가까이 가서 물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물었더니 대답합니다. '예 제 아들 녀석이 물건을 훔치는 잘못을 해서 점원에게는 용서를 빌었는데 또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죠. 그래서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아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광경을 목격한 이분은 부연하기를 자신의 자녀교육 평생지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 중의 하나가 자녀들에게 기능을 가르치는 데열심인 데 비하여 자녀의 자녀 됨을 가르치는 데는 기능을 가르치는 열심에 비하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십시오. 대학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돈보다는 하나님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가르침의 우선순위를 알아야 합니다.

 

좋은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것이 신앙교육과 대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능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삶의 기초를 신앙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좋은 대학 나와도 망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돈 많아도 망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잘 믿어서 망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가 하나님 잘 공경하여 지혜와 명철을 얻어 흥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 기자는 지혜가 주는 축복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6이하를 보십시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지혜와 명철히 가져다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6절에 보보호합니다. 지킵니다. 8절을 보면 지혜와 명철은 우리 삶을 높여 줍니다. 영화롭게 합니다. 대단히 귀중한 복입니다. 9절은 아름다운 관과 영화로운 면류관을 보장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고 훈계한다며 자신의 인생을 강요하기 쉽습니다. '내 말 잘 들어라. 부모가 자식 잘못되라고 하는 사람 어디 있냐. 내 말을 잘 들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런데 오늘 잠언 기자는 자신을 내 세운다기보다는 지혜와 명철을 내 세웁니다. 자신의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자녀 되게 키우려고 애를 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할 때가 아니라 지혜와 명철히 말할 때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가르칩니다.

 

링컨 하면 참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1979년에 벌인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투표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의 일등은 예수 님이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이 링컨이었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개척자의 아내로서 무수한 고난과 빈곤과 싸우면서도 링컨에게 두 가지를 가르쳤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들어라. 그리고 책이 얘기하고 있는 것을 들어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얘기보다는 성경이 그에게 얘기하게 하고 책이 그에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어머니는 링컨의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엄마 쟁반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위대한 분입니다. 아버지 토마스는 링컨이 장작 패는 일이나 하며 평범한 농부의 길을 걷기를 원해서 성경과 책을 읽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때마다 사라는 그의 남편을 설득합니다. '나는 링컨의 엄마예요. 링컨을 낳아준 엄마 낸시처럼 키우고 싶습니다. 낸시는 성경의 가르침과 책의 가르침을 통하여 아이를 양육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협력해 주세요.' 링컨은 어머니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의 잘한 것은 우리 어머니 덕입니다. 두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가장 위대한 유산은 성경의 가르침과 책의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이 그리고 가족이 그리고 자녀들이 주안에서 복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