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 5:12] 성숙한 성도의 삶을 위해

'코이네' 2024. 2. 19. 20:51

성숙한 성도의 삶을 위해 

본문: 5:12-6:2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어린 아기를 가진 부모에게 가장 큰 걱정이 있다면 아기가 성장하지 않을 때 일 것입니다. 키가 자라지 않고 정신적인 성장이 없을 때 매우 당황하고 큰 근심이 생길 것입니다.

태어난지 수년이 지나도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아기는 가정의 슬픔이요 아픔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을 믿어 새로 태어난 성도들이 자라지 않는 것도 교회의 큰 걱정이며 괴로움입니다.

믿는다고 나온지 수년이 지나도 전혀 생활에 개선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지 않을 때나, 믿는다고 교회 나온 때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전혀 진보가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성경이 어디 쯤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가정 생활과 사회 생활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부정과 부패, 불의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배척하고자 하는 확고한 자세도 없습니다. 그저 불신자 수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인들은 진실로 교회의 걱정거리요 교회의 지진아들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런 사람에 대해 질책하고 있습니다.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이 사람들은 기독교의 초보적인 교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해 설교하면 어렵다고만 합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와 진리들을 잘 알고 이해 하고도 남아야 할 사람들이 그저 단순하고 쉬운 예화만 즐기려 합니다. 선생이 되도 한참 되었을 사람들이 젖이나 먹으려 하지 단단한 식물은 아예 생각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10살 먹은 어린이가 어머니 젖만으로 살 수 있습니까? 목은 축일 수 있어도 살이 찌고 건강하게 클 수가 없습니다. 죽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욱 장성한 자가 되고 성숙한 자가 되도록 신앙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장하고 성숙하려는 노력없이 우리는 결코 자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는 성숙한 성도의 삶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먼저 온전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듣고, 온전한 성도들의 특징을 듣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성도가 되려 기도하고 노력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먼저 온전함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온전한 성도, 성숙한 성도라는 말을 하는데 그 온전하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여기 완전함이란 말씀은 지식이나 행실이 완숙하다는 뜻입니다. 성숙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장성한 자라고 번역된 말씀과 동일한 어근을 가진 말입니다.

(5:14)에 있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라는 말씀에서 장성한 자란 말씀과 완전하다는 말씀은 같은 뜻의 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자” “성숙한 성도영적 지식이나 행실이 완숙하게 성장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삶의 전 분야를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는 사람입니다. 예배당 안에서의 삶과 밖에서의 생활 모두가 하나님의 손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생활 따로, 직장생활 따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겸손하고 온유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포악하고 부정한 사람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생활의 전 분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도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성숙한 성도는 통합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도가 이렇게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숙하고 온전한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모든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산상설교에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렇게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야 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오늘 모든 성도들이 지금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완숙한 자리, 보다 더 장성한 자의 자리에 서도록 신앙의 경주를 다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음으로 온전한 성도, 성숙한 성도는 어떤 특징을 가진 성도입니까?

 

첫째로 온전한 성도 성숙한 성도는 지적 능력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성도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데, 지각을 사용하여 그렇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지각(智覺)”이란 말씀은 인식 기관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알아내고 그것을 판단하고 분별하는 기관을 뜻합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의 뇌의 활동을 뜻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성도는 이런 지각을 사용하여 그의 신앙생활을 이루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때 머리를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 하고 그 말씀을 더 잘 알려고 뇌를 쓴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장성한 성도는 생각할 줄 압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머리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선악을 분별하며 분별력 있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 스스로 노력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 머리는 집에 두고 옵니다. 단지 가슴만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마음에 뭐가 와 닿기를 바랍니다. 가슴이 뜨겁고 마음이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감정을 자극하는 설교, 마음을 뜨거워 지게 하는 설교를 좋아 합니다. 소위 부흥회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이야 어떻든 나의 이 가슴을 뜨겁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과 열광에 사로잡히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몰라요 그러나 나는 느껴요

느낌이 중요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면 느낄 수도 없습니다. 진실을 알때 알때 진정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아니라 의미가 중요합니다. 의미를 알때 느낌은 진실한 느낌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앞서고 말씀과 진리가 뒷 전에 밀릴 때 공허함이 있습니다. 진정한 인격적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60년대 70년대 교회들이 특히 그랬습니다. 그래서 목쉰 설교자를 은혜로운 설교자로 쳣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기 보다는 산에 올라가 악쓰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목이 쉬어가지고 교회에 와서 설교했습니다. 그러면 그저 교인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목사의 쉰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은혜도 덩달아 컷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 의미를 아는 기쁨보다 목사의 장단에 이리 뛰고 저리 뛰어 흥분의 도가니에 들어가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단들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말씀보다 감정에 치우친 당연한 결과 였습니다.

이렇게 설교의 내용이 전혀 성경과는 무관해도 그저 마음만 뜨겁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설교요 신앙생활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달라졌습니다.

싄 목소리 가지고 폼 잡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큰 목소리로 주름잡던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 교회에서 차분히 성경을 배우는 교인들이 늘어났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부흥회 보다는 세미나와 성경공부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성숙해 간다는 좋은 징표입니다.

그리고 요즘의 성도들도 지적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목사님 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이 수두룩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박사 따려고 안달입니다. 그래서 가짜박사 소동까지 일어납니다. 이젠 더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잘 가르치려 그만큼 노력하게 되었다는 증거 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교회가 말씀을 더 알려하고,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는 모습들은 진정 성숙해 가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단지 감정만을 가지고 머리는 집에 두고 오신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인들이 무지한 가운데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인지, 지적인 이해가 너무나 부족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제대로 못찾는 젊은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각을 사용하는 성도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여기 단단한 식물은 말씀의 초보에서 떠나 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단순히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았다는 진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삶을 가르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단단한 식물이란 좀더 깊은 말씀의 진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좀더 깊은 말씀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성도들은 이런 일에 훙미가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더 배우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만 뜨겁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알고 배우고 믿어야 할 많은 교리적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기본적인 교리를 설교해도 딱딱하다는 둥, 어렵다는 둥 졸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머리 쓰기를 싫어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들은 교리에 괸심이 있습니다. 말씀의 실천에 관심을 가집니다. 스스로 말씀을 알려 노력하며 기독교 진리에 목말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지각을 사용하여 더 깊은 진리의 자리에 이르려 힘씁니다. 이렇게 지각을 사용하는 성숙한 성도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우리 어떤 여집사님이 치매(痴呆)”(소위 노망)에 대해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치매의 원인 중 하나가 머리를 쓰지 않아서 온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에게 많이 오는데 여자 분들이 두뇌 쓰기를 싫어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각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식 기관을 잘 사용해서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머리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에도 좋습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읽고 배우고, 지각을 사용하여 건강한 정신을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들어도 소용없어하지 마십시요.그래서 머리쓰는 것을 중지하지 마십시요.

콩마물도 자랍니다. 물을 부면 시루에서 다 빠져 나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자랍니다.

그러니 자꾸 듣고 자꾸 생각하면 신앙이 자랍니다. 성숙하고 완숙한 성도가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지각을 사용하여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숙한 성도, 온전한 성도의 특징은 말씀을 경험한 성도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여기 젖을 먹는 자어린 성도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어린 성도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입니다.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실재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린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어려서 부터 교회에 나왔거나 믿는다고 교회 나온지 오랜 사람들이 성경을 배우고 들었지만 그 말씀을 생활에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걱정 근심으로 한숨만 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해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걱정 근심이 있는 사람, 새벽에도 기도하고 금요 기도회도 나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못 나옵니다. 그러니 말씀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그 근심 걱정으로 얼굴 필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고 물질의 복을 받으라고 말씀했는데도 듣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물질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십일조를 못드립니다. 당장의 아까운 마음, 손해나는 것 같은 마음이 앞서니 말씀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어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또한 어린 성도들은 쉽게 마음이 변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쉽게 마음이 변하듯 마음이 여립니다.

투정하기 잘하고 불만과 불평이 많습니다. 쉽게 쌜쭉거립니다. 자기 맘에 안들면 하던 일도 그만 둡니다.무엇인가 믿음직 스런 모습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대하려면 항상 불안 합니다. 언제 어떻게 변해버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정말 말씀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어린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확신도 없고 안정됨도 없습니다. 그저 들쑥 날쑥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들은 말씀을 실천합니다.

현실이 하나님 말씀과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아도 말씀을 믿고 순종합니다. 항상 안정감을 갖고 생활 합니다.들쑥 날쑥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리에 굳게 섭니다. 말씀과 기독교 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과 여러 거짓된 가르침을 분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 선악을 판별하여 덕스러운 신앙 생활을 이루어 갑니다.

그래서 자기의 신앙에 따라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힘씁니다.

이렇게 성숙한 성도는 스스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루려 노력합니다.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많은 영적 경험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교회의 직분자(집사)들을 세울때 이 말씀의 경험을 가진 자들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딤전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딤전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딤전3: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딤전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여기 집사의 자격에 대한 여러 말씀들이 나옵니다.여기 집사는 안수집사를 의미합니다.

집사는 단정하고 일구이언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에 인백여서 술 없이 못사는 사람은 집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사람도 않됩니다. 오직 깨끗함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 믿음의 비밀이란 믿음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풍부한 말씀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집사의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풍부한 경험은 바로 성숙한 성도의 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박해도 받고 말씀에 따르고자 어려움도 이기고 참고 인내하며 말씀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바로 성숙한 성도요 직분을 받을 만한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진실로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직분자가 되고 교회를 섬길 때 그 자신에게 복이 되고 교회에 큰 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앞으로 장로를 세우고 권사를 세워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그리고 안수 집사도 세우고 여러 직분자들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을 세워야 합니까?

바로 성숙한 성도를 세워야 합니다. 온전하고 성숙한 성도, 말씀을 경험한 성도들을 뽑아, 주의 교회를 잘 섬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성숙한 성도들이 되고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성숙한 성도의 삶을 위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생활의 전체를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께 자기의 전 삶의 영역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적 능력을 사용하며 자기의 분별력을 사용합니다. 선악을 분별하며 믿음과 신앙에 따라 자기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말씀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모두가 성숙한 성도, 완숙한 그리스도인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지각을 사용하며, 말씀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