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 3:1]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코이네' 2024. 2. 7. 21:09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본문 ; 3:1-6

 

 

 

<서론>

 

인도의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한 농부가 논을 개간했습니다. 그의 논에 댄 물이 아주 많은 양분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논을 기름지게 하여 그야말로 대풍을 이루어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부자는 기름진 논물이 이웃에 있는 다른 사람의 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하고 샘이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해에는 자기 논의 물을 일절 어디에도 못빠져 나가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논에는 역시 양분을 제공해 주는 물이 흘러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흘러 나갈 곳이 없기 때문에 벼는 모두 썩어 쌀을 얻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욕심장이는 손해를 받는 것입니다.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16년만에 다시 생겨난 국정감사는 연일 온 국민의 관심속에서 그 질문과 대답의 신빙성을 놓고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있습니다. 워낙 많은 것을 잘못한 5공화국의 뒤를 이은 사람들이라 여당은 변명식의 질문을 하던지 아예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에 반대하여 야당들은 엄청난 질문 공세로 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모습이나 그 대답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하고 차라리 의심해 보는 부정부패는 욕심에 지나쳐 아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만큼 손대지 않은 곳이 없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의 입을 막느라 상처를 입히지 않은 곳이 없는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많은 욕심에 이끌려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이끌려서 살기도 하고 타인의 유혹에 이끌려서 살기도 합니다. 때로는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도상 어쩔 수 없이 이끌리기도 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각종 욕심들은 죄를 낳게 만들고 죄는 사망을 낳게 된다는 야고보서 115절의 말씀처럼 언제 어느 때 우리의 심령이 순식간에 죄 가운데로 빠져드는지 알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곧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번째 계명을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오직 자신의 일에 충성하는 자들은 욕심에 끌려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만이 욕심을 잉태치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길을 제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본론>

 

1. 그 본이 되는 모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1) 그는 백성의 지도자요, 제사장이며, 율법을 준 자였지만 하나님의 사환으로서 하나님의 영을 받아 행동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잘못해서 백성들이 딴 길로 갈 때는 자신이 그 죄를 대신 받기를 간구했고 심지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까지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3232절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모세는 자신의 생애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리만큼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마지막 생애는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그 일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그 무덤조차도 남겨놓지 않은 채 하나님의 철저한 심부름꾼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2) 모세는 종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섬기는 종으로서의 충성은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종의 자리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온 집들 중에서 충성을 다하였기에 신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말할 수 있었던 충성스런 종 모세를 비난한 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에 대하여 하나님은 모세의 충성을 친히 선언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12:7)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토록 모세를 감싸주실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4016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충성된 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2. 그러나 여기에 모세보다 뛰어나신 분이 계시니 그리스도이십니다.

 

(1) 모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종의 신분으로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환이나 종의 모습으로는 충성을 바치기 쉽지만 아들로서 충성을 다했다는 것은 자신의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 충성인 것입니다. 집을 세우신 주인의 아들이 바친 충성된 모습은 "사도"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고, "대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일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최고, 최대의 충성된 모습인 것입니다.

 

(2) 모세가 섬긴 집은 이스라엘이었으나 그리스도가 섬기신 집은 하나님이 만드신 지상의 모든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는 독생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허락되었습니다. 왕권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집안을 완전히 통솔하시는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메시아로서 받을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지 않으시고 세상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제자들로부터 "선생님" 소리를 들으시면서도 그들의 발을 먼저 씻기시면서 우리에게 서로 발을 씻기는 본을 보이시기를 서슴치 않으셨던 분이십니다.

 

3.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충성하고 자신이나 세상의 욕심에 끌려 살지 않기 위하여 믿음을 지켜 우리의 생활 모습이 변화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참여자가 되었다는 말이요, 하늘에서 온 은혜의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것을 나누어 받으리라는 소망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동안만 잠시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맡겨 주신 것을 잘 간직할 뿐이요, 하나님나라에는 가져갈 수 없는 변하고, 썩고 사라질 것들을 향하여 관심을 갖는다면 하늘나라의 보화를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하늘나라를 어떻게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하늘의 것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2) 거룩한 형제들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이라고 번역된 말은 "구별되었다"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생활의 실제적인 면에서도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9:2).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별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거룩한 형제들은 더러움에 때를 타서는 안 됩니다.

 

(3)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잘 깨달아 알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사는 신앙 생활은 적당히 대충 대충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면 넘어집니다. 유혹에 끌려가고 맙니다. 세상의 물결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14:30). 우리 신앙의 완성자요, 근본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고백의 대상이요, 우리 죄를 구속하신 예수, 그 분은 충성되고 신뢰하기에 족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4)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잡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이러한 충성과 천국의 유산에 대한 확고한 기대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사귐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정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태도가 아니라 끝까지 변치않고 가질 수 있는 충성스런 태도여야 합니다. 믿음의 열기가 식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희미해져 갈 때, 우리는 곧 세상적인 유혹에 넘어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힘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주실 신령한 약속을 자랑하면서 끝까지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들의 확고한 믿음의 뿌리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 만큼 강합니다. 권력의 힘은 하나님의 약속도 무색케 할 만큼 세상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네 것 내 것 구별하지 않고 모두 다 내 것처럼 삼으려고 갖은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뛰어듭니다. 이런 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신앙 양심을 갖고 사는 우리의 마음도 화인맞은 양심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신 약속만이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