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갈라디아서

[갈 5:13] 자신을 사랑하라 _임성익 선교사

'코이네' 2024. 1. 8. 20:37

자신을 사랑하라

성경말씀: 갈라디아서 5:13-15

설교자:임성익선교사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 가진 장점에 대해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끼며 자신을 사랑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은 자신이 가진 결점에 집착해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긴 모습 그대로 감사하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가 하면 다른 한편은 자신의 모습에 열등감을 느끼며 부정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누가 자신을 비난하더라도 그냥 부드럽게 받아넘기고 훨훨 털고 잊어버리는가 하면 다른 한편은 자신에 대한 조그만 비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오래도록 그것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임에서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서 마음을 쓰는가 하면 다른 한편은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후자의 사람은 자신을 바로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자신 있게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의 타입 중에 어떤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바르게 사랑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바르게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을 용납한다고 하지만, 바르게 용납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치관 속에 지배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용납하도록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사람의 아름다움에 가치를 두며 어떤 유명한 배우처럼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가치관에 지배된 사람들은 어떤 유명한 배우처럼 되려고 끊임없이 성형수술을 합니다.

또 세상의 가치관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판단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끊임없는 경쟁을 합니다. 경쟁에 이기면 만족하고, 지면 이길 때까지 승부를 겁니다. 그래서 자신도 파괴시키고 남도 파괴시킵니다.

또 세상의 가치관은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에 매달리게 합니다. 목표를 성취하면 성공자요 성취하지 못하면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우리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아름답지 못해도 마음이 아름다우면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과의 파괴시키는 경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목표를 성취 못하더라도 실패자로 여길 때가 있고 또 목표를 성취 못하더라도 성공자로 여길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나타난 표면에 신경을 쓰지만 하나님의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7절에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하지만 정말 우리 자신을 잘 아는 분은 내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를 잘 이해하려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을 잘 아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은 잘 알 수 있고 우리를 올바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십니까?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정한 것으로 보십니다. 골로새서 29-10절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으니

우리는 지금 불완전하고 연약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면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충만한 것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됩니다.

우리가 아직도 미완성품일지라도 미래에 있는 모습을 보며 완성품으로 보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우리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품성들을 보십니다.

고린도후서 517절 말씀을 보시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내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은 새롭게 출발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올바른 모범입니다.

 

고린도 전서 134-7절 말씀을 보시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나 자신에 대해를 넣고 읽어 보십시요. 사람은 나 자신에 대해 오래 참고----” 여러분은 이 말씀을 묵상하게 될 때 걸리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게 됩니까? 나는 내 자신을 용납 못하지만 주님은 나를 용납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범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궁극적인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이 그분을 보시는 것 같이 보셨습니다.

요한복음 15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는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폭포수처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여러분은 다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위대로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그렇게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 부터 끊임없이 그런 교육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부모님을 만족하게 해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에덴의 동쪽이란 명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 중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 중에서 형을 편애합니다. 어느 날 사업에 실패해서 실의에 빠져 있는 아버지를 보고 동생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버지를 위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당근을 심어 폭리를 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아버지의 생일날 둘째 아들은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아버지의 칭찬을 기대하고 그간 폭리로 벌어들인 돈을 생일 선물로 드립니다.

자기에 비해 형은 드릴 돈은 없지만 아버지에게 가장 기쁜 선물을 드리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사귀고 있는 애인을 며느릿감으로 소개합니다. 그때 아버지는 큰 아들을 보며 나에게 가장 기쁜 선물을 주었다고 기뻐하며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에게는 오히려 심한 책망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전쟁 중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전쟁 중에 먹지도 못하고 굶주리고 있는데 너만 잘 살겠다고 폭리를 해서 돈을 벌었냐고나쁜 자식이라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너무 실망하고 너무 억울해서 울면서 그 동안 정성스럽게 모아 아버지께 드렸던 돈을 사방에 마구 뿌립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성도님은 새벽기도에 열심히 참석하고 몇 번 빠지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벌을 주시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친구와 장난치다가 팔이 부러져 돌아왔는데 내가 요즘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고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하나님이 벌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도 열심히 하는 것이 좋고 예배도 잘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해야 신앙이 자라고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 몇 번 빠지고 예배에 몇 번 안 드렸다고 당장 벌을 주시는 그런 하나님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낙담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위해 번듯한 일을 해 드리는 것 없고,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요구 조건을 내린다면 우리도 도저히 사랑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만족함도 느껴야 합니다.

포근함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푹 잠겨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아니고 우리를 희생적인 사람, 우리를 강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약한다고 하신 사랑,이런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알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로소 바르게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비결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신자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세상의 매스컴과 세상의 가치관에 의해서 무수히 세뇌 당하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뇌된 가치관을 새롭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창조하신 하나님 마음도 바로 이해할 수 없고, 우리 자신도 올바로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우리는 이러한 가치관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2절 말씀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고아원에서 자라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도 고아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기 나이 또래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도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처녀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커서도 자신은 쓸모 없는 사람이고 세상은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였습니다.

비록 세상의 부모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공주같이 보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는 얼마 후에 교회 학교에서 유년부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어린이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열심히 가르쳤더니 그 교회에서 제일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그때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느꼈고 자신을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 자신이 점점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성격도 변하고 행동이 변했습니다. 그녀는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점점 예뻐졌습니다. 그녀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얼굴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공대 다니는 청년이 그녀를 사모하기 시작하고 드디어 그녀에게 프로포즈했습니다. 그녀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이 내가 국민학교 나온 줄 모르고 있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합니다. 국민학교만 나온 내가 어떻게 그의 결혼 상대자가 될 수 있는가? 고민하다 어느 신앙 선배에게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배는 그 자매에게 너는 세상에서 제일 귀하니 하나님은 너를 제일 귀하게 볼 것이다. 자신을 가져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청년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있는 대로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다행이 그 청년은 마음이 열려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자매의 이야기를 다 들고나서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네 속에 있는 그것을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 자매는 그 청년과 결혼해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지금 승리의 모습으로 만드셨고 하나님은 지금 있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고 기뻐하십니다.

세상도 때로는 나를 알아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들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나도 놀랍고 기이하게 기뻐졌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장점과 단점을 아십니다. 나와 똑같은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나누어준 분량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각각 생긴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의 은사,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의 은사, 어떤 사람에게는 봉사의 은사,어떤 사람에게는 중보기도의 은사가 있습니다. 각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다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가 다른 사람은 나를 인정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여전히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이 윤택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바로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바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우리의 약점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점이 있을 때 남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완벽 주의자로 만나는데 그런 사람은 자신과 남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매들이 너무 완벽하면 결혼하기 힘듭니다. 형제들로 하여금 프로포즈할 틈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완벽 주의라는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남의 실수를 용납 못하기 때문에 자신도 사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도 잘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허물도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허물을 보고 판단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허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연약해도 우리를 보호해 주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시면서 좀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시는 대로 나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분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우리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우리 자신을 올바로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를 볼 때만이 우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만 우리 자신을 바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로 사랑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주위를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고 진실로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지금 우리의 모습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보다 더 많이 인정받게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는 생애를 살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35절 말씀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나니 우리의 만족을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