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 2;1] 새 역사의 창조자_임성익 선교사

'코이네' 2024. 1. 8. 20:34

새 역사의 창조자

성경말씀 요한복음 2:1-11

설교자: 임성익 선교사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엑 이르시도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즈음 김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한창입니다. 이것은 쉬운일이 아니며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이것은 공동의 노력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나라와 한민족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갈때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때는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럴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새역사를 창조하는데는 반드시 공동의 노력, 협력자들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라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 신앙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협력자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역사를 변화시키고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며 우리 삶에 맛을 내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말씀에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집에 청함을 받아 가셨다가 혼인잔치집에 포도주가 모자라게 된 것을 아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의 사건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천국을 혼인잔치라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혼인잔치로 비유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 안에 혼인 잔치집에서 맛보는 기쁨이 있고 함께 먹고 마시는 그런 기쁨이 있고 아름다운 결합이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속에는 신령한 기쁨이 있고 신령한 먹고 마심이 있고 신령한 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듯이 물이 포도주가 되는 새역사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혼인 잔치집에는 흥,기쁨이 있고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푸짐한 음식과 하인들, 돕는사람들은 내일처럼 좋아합니다. 그야말로 흥겨운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곳에 찬물을 끼엊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포도주가 모자란 것입니다. 보통의 유대의 혼인 잔치집은 일주일간 계속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큰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심으로 모든것을 회복하고 온전케 해주신것입니다. 새역사를 창조하신 것 입니다

우리의 삶도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예수님안에서 변화 될 수 있어야 우리의 삶 자체가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를 열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보면 새역사를 창조하는데 누가 어떻게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까?

새역사의 창조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명령이 있을때 새역사의 창조가 일어납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새역사의 창조가 일어납니다.예수님의 은혜가 따르는곳에 새 역사의 창조가 일어납니다.

예수님 가시는 곳에 병자들이 고침 받고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는 또는 새역사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눈먼 자는 눈을 뜨고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는 자는 벌떡 일어나고 죽은 자도 일어납니다.또 예수님의 이름이 역사하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3)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습니다.(2)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결핍,파극적인 상황을 채워 주십니다. 예수님을 모신 심령에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신 교회,신앙공동체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는 살아계신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회,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로서 새역사를 창조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 개인 심령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예수님을 왕좌에 모심으로 우리 하루하루 삶이 항상 새롭게 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새 역사의 창조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리아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목자의 심정을 가졌습니다.

마리아는 손님으로 초청받은 사람입니다. 손님은 대접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그집에 포도주가 떨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집이 파장된 것을 알았습니다.목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비판하고 판단하기 보다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마리아는 손님으로 왔지만 주인의식이 있었습니다.

주인의식이 있는 자에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항상 손님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문제가 따라다닙니다. 공동체를 흐트려 놓습니다. 교회에 있어서도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이 많을때 이 교회는 변화가 역사가 일어나고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에도 손님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고 주인으로 이 교회를 봉사하고 섬기는 분이 있습니다. 손님으로 왔다 갔다 하는 분은 교회가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자기 마음에 안 들었을때 교회를 비판하고 또 앞에서 일하는 분들을 비판하고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이교회에 주인으로 있는 사람든 주인 의식이 있는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하든 해결하려고 하고 이 교회 어떻게든지 부흥시키려고 하고 어떻게든 섬기려고 하는 목사의 심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여기에 변화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때 이런 주인 의식을 가진 성도님들이 여기도 많이 일어나게 되길 바랍니다. 손님 의식이 있는 사람은 대접 받기만 원합니다. 자기가 주고 대접하지 않으려면 자기 누가 관심 가져 주지 않으면은 거기에 불만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누가 관심이 있든 없든 자기 대접해 주든 주지 않든 목사의 심정을 가지고 이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고 새롭게 되길 원하는 것입니다.

손님의식은 어떤사회나 공동체에 문제가 있으면 비판합니다.

주인의식은 비판보다 분발력을 갖습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하든 해결하려고 합니다.

창조의 역사는 비판이 무성한 곳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 하려고 노력 하는 곳에 일어납니다.

마리아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성경에 우리가 다윗왕 사울왕의 차이가 뭡니까 ? 여러가지 이유를 들수 있지마는,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고 한사람은 기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을때 한 사람은 그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서 묻었습니다.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자기 스스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다윗은 문제가 있을때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지금 우리가 군사를 몰고 나가야 됩니까 지글 올라가야 합니까? 지금 내가 저곳에 가야합니까? 내가 이 일을 해야 됩니까? 물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묻지 않았습니다. 블렉섹과 싸움이 있을 때 기도하고 하나님에게 물어야 하는 데 먼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제단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와서 제사 드려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에게 묻지않고 자기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므로써 자기 스스로 판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민의 축복은 하나님이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묻는 자에게 있습니다.

마리아는 문제를 발견 했을때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처리 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녀는 그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갔습니다.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무거운 문제를 예수님께 갖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공동체 주변에 흔히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어떤 사람은 인간적인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말씀과 사랑과 우리의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삶 속에서 문제 의식을 느낀다면 이것부터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바로 이런 문제 꺼리를 예수님께로 가지고 나가 기도로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새역사를 창조하는 일에 좋은 협력자가 됩니다. (3)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이르되마리아는 예수님께 나가 기도하므로 혼인 잔치집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새역사 창조에는 기도하는 성도가 많아야 하며 기도할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기도할때 주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기도하는 사람으로 새역사의 창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가 내주변이 우리 가정이,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새로운 역사가 창조할 때에는 기도하는 성도가 많아 져야 합니다. 기도의 효력, 능력을 믿는 성도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믿고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 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정치가가 예수님을 믿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정치문제, 사회문제를 예수님께 하나님께 다윗처럼 물으면서 진실로 묻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이나라를 이끌어 관리 한다면은 이 나라 정치는 밝고 이 나라는 정말 새 역사 창조할 수 있고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할때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새역사의 창조에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은 구원 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 받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문제가 있을때 예수님께 나아가므로 해결 받을것을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어제의 믿음(내가 구원 받았다) 미래 (천당 갈 것이다는 믿음)의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이시간 당면하고 있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 문제에 대한 나를 향한 기대가 무엇이냐는 묻습니다다.

마가복음 4장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가다 풍랑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부들이기 때문에 웬만한 풍랑에는 자신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들 스스로 풍랑을 헤쳐 나갈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배안에 물이 들어오고 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예수님을 깨울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때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신 다음 뭐라고 말씀 하셨는가?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그뜻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는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원 받을 믿음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너희는 나에 대한 기대가 무엇이냐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사모하며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신앙이 과거와 미래에만 왔다 갔다 합니다.

예수님 옛날에 저를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옛날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미래에 (마지막 때에) 나도 하나님께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믿음의 고백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질책하시는 것 입니다.

(11:17-44)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와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전혀 하지 못하는 마르다와 마르아 때문에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보고 무덤으로 가서 돌을 치우라고 했을 때도 마르다의 대답은 요지 부동이었습니다.

우리 오라비는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은 현재 오라비를 살려 주시겠다는데 마르다는 과거와 미래만 왔다 갔다 하면서 정작 있어야 할 믿음의 고백은 못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호통을 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구원 받았을 때의 영광. 재림의 영광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말을 믿으면 네가 당면하고 있는 순간 순간의 문제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믿음을 무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여념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현재가 힘들면 과거를 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믿음, 어제의 믿음 옛날에 이렇게 역사 하셨는데 이렇게 해 주셨는데 하면서 또는 하나님께서 막상 오늘 ,현재 해주시겠다 하며 미래를 봅니다. 하나님은 어제의 믿음도 아니요. 내일의 믿음도 아닌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을 보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라고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새역사를 창조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거물들은 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 입니다.

새 역사 창조에는 하인들과 같은 순종이 필요합니다.(5-8)

항아리에 물을 채우자 하신즉 인구까지 채우니

연회집에게 갖다 주자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하인은 순종의 사람의 모형입니다. 하인들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자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대로가 아니고 시키는 주인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인들은 채우자면 채우고 갖다 주자면 갖다 주었습니다.

순종은 내가 지식으로 이해 되는 것만 순종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지지 않고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하자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나중에 형편이 좋으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이 좋듯 안좋듯 바로 지금 무조건 즉각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순종 할 수 있을까?

고난으로 순종을 배운 사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깨끗해지면 순종하게 됩니다. 영혼이 세상 욕심. 이기심. 미움. 시기.질투.등으로 더러워 지면 순종할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순종을 잘하는 사람은 영혼이 깨끗합니다. (말씀 .회개 . 기도로 영혼을 깨끗하게 합니다.)

순종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순종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말씀하십니다.

순종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순종 하지 못합니다. 순종을 상실하면 빈껍데기로 남습니다. 예배도 봉사도 형식만 남습니다. 여러분이 예배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예배드린다는 것은 형식뿐입니다.

순종할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순종할 때 기뻐하십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을 깊이 만납니다. 다른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순종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얼마나 귀한지,아름다운지 알수 없음. 순종할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은 하인들이 순종이 있었기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누가 새역사 창조의 주역이 될 수 있는가?

새 역사 창조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 역사 창조에 우리를 동업자로 반드시 부르십니다.

연회장은 맛을 아는 성도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은혜를 갖게 하고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하며,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그런 세상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당시 유대 나라의 풍속은 연회장으로 잔치를 주관하게 하며 먼저 음식의 맛을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연회장은 물로된 포도주를 먼저 맛 보고나서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다󰡕 고 신랑을 칭찬합니다. 맛을 본다는 것은 체험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맛을 보는 것입니다.

신앙의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교회 오더라도 기쁘지 않습니다. 말씀의 맛,은혜의 맛. 기도의 맛, 봉사 맛을 본 사람이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의 맛을 보지 않는 사람은 이런 말씀을 잘 읽지 못합니다. 말씀을 읽었을 떄 달고 오묘하고 아름다운 꿀 같은 맛을 경혐해 본 사람이 읽지 말라고 해도 읽습니다. 은혜의 맛을 본 사람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기도의 맛을 본 사람이 기도하고 봉사의 맛을 본 사람이 봉사하고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이 사랑을 합니다.

여러분 이런 맛을 아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맛을 아는 사람이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맛을 본 사람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맛을 아는 사람이 변화의 역사를 일어나게 합니다. 새 역사의 창조자가 됩니다. 누가 새 역사의 창조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새 역사의 창조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혼자서 새역사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새 역사의 창조의 그 변화의 물결에 우리를 동역자로 동참시키십니다.

여러분! 신앙의 맛을 알고 주께 충성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