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 15:12] 해방의 자유와 기쁨의 부활

'코이네' 2023. 5. 31. 17:44

해방과 자유와 기쁨의 부활

본문 : 고전 15:12-20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12절-20절)

 

우리는 어릴 때에 어머니나 형, 누나의 입에서 나오는 소박한 우화들은 실감있게 듣고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흥분하여 손에 땀을 쥐기도 하였습니다. 그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순박한 산촌 마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웃을 형제같이 여기며 오순도손 잘 살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을 앞 산중턱 굴에 사나운 짐승이 와서 살았습니다. 그 짐승은 밤이면 굴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며 마을을 돌아 다녔습니다. 동리 사람들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같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짐승은 해마다 그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 한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응하지 않으면 짐승이고 사람이고 닥치는 대로 해를 입혔습니다. 그 동리의 처녀 수는 점점 줄고 동리는 수심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는 홀아버지가 기른 무남독녀 외딸이 제비에 뽑혀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온 나라의 유명한 장사나 포수들이 그 짐승을 잡겠다고 다짐하며 그 굴 속에 들어갔지만 살아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친 한 미남 장정이 나타나서 자기가 그 처녀를 대신해 그 굴에 들어가 기필코 그 짐승을 잡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의 뜻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

처녀를 바쳐야 할 날이 되자 이 장정은 두주먹을 불끈쥐고 신발을 단단히 묶은 후 짐승의 굴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걱정했습니다. ‘과연 이 장정이 짐승을 죽이고 나올수 있을까’하고 깊이 염려했습니다. 굴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이 사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역시 이사람도 전 사람들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구나하고 탄식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이 었습니다. 갑자기 산천을 뒤흔드는 고함소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뛰어와 보니장정의 손에 죽은 짐승이 있었습니다.

그는 옷과 몸이 다찢기고 피투성이가 된채 굴 밖으로 끌고 나온 짐승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동리는 자유와 해방, 기쁨이 넘치게 되고 이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이 처녀와 결혼해서 잘 살았다는 우화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참으로 가슴 따뜻하게 듣고 감격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찌 보면 우리가 어릴 때에 듣던 이 우화와 너무나 흡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라는 흉악한 영체에게 속아 넘어가 하나님을 배반, 버림을 받고 죽음이라는 깊은 구렁 속에 떨어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1. 아담 이후 마귀는 죽음의 동굴로 일류를 끌고 가고 있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 다음,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을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그리고는 계속해서 인생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은 죄악의 굴레에 묶여서 노예생활을 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사람들은 또한 병들고 고통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저주받고 급기야는 죽음이라는 아득한 동굴로 끌려들어가서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는 비운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인간의 운명을 해결하겠다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나와서 마귀와 싸우려 하고 죽음의 동굴 속에 들어갔지만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역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원수 마귀에게 희생되고 만것입니다.

수많은 도덕군자가 나와서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죽음의 동굴 속에 들어가서 마귀와 싸웠지만, 죽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많은 철인들이 나와서 자기들이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했지만 그들도 죽고 난 다음에 마귀의 손아귀에 잡힌 이후, 나오지 못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 마귀와 싸웠지만 죽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마다 가슴 속에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문호 톨스토이는 인간의 운명을 다음과 같이 멋있게 문인답게 표현을 했습니다. 러시아의 넓은 광야에서 갑자기 들소떼들이 몰려왔습니다. 들소떼에 쫓긴 사람은 ‘걸음아, 나 살려라’고 도망을 치다가, 도망을 치다가 숨이 턱에 차고 이제는 들소뿔에 산산이 찢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눈 앞에 큰 우물이 있는지라 그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한참 떨어지다 ‘덜컥!’나무에 걸렸습니다. 나무에 걸린 채 가지게 걸터앉아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 보니까 빈 우물이라 밑에는 독사들이 새끼를 쳐서 많은 독사가 뒤엉켜서 우글거립니다. 먹이가 떨어진 줄로 알고 독사들이 전부다 꼬리를 들고서 위를 쳐다보고 혀를 널름거립니다. 이 사람이 혼비백산하여 위를 쳐다보니 들소떼들이 김을 내뿜고 발로 흙을 파며 올라오면 죽이겠다고 그 뿔을 벼르고 있습니다.

그가 나무에 앉아서 자기가 앉은 나무 주위를 찬찬히 보니까 잎사귀에 벌들이 꿀을 쳐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내밀어서 그 나무 잎사귀에 붙은 꿀을 따서 입에 대면서 ‘아하, 맛있다. 참좋 다’고 말합니다. 위를 쳐다보니 들소떼가 죽이겠다고 뿔을 세우고 있습니다. 밑을 내려다 보니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걸터앉은 나무뿌리를 보니까 흰 쥐 세 마리가 나와 나무뿌리를 싹뚝싹뚝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의 운명은 바람 앞에 촛불같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들소도 쳐다보지 않고 독사도 보지 않고 흰 쥐가 자기가 걸터앉은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있는 것도 보지 않고 계속해서 잎사귀에 붙은 꿀을 따서 먹으면서 ‘아하, 맛있다. 참 맛있다’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인생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위를 쳐다봐도 절망이요, 아래를 내려다봐도 절망이요, 옆을 둘러봐도 절망인데, 그 가운데서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짧은 순간의 꿀을 취하고 있다가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없다. 인간에게는 오직 절망 밖에 없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든 존재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누가 소망을 주며 누가 구원을 줄 수 있습니까? 그 누가 사나운 짐승에게서 인간을 구출할 용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2.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망 권세를 이겼다

2000년 전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그 영광과 권세를 벗어버리시고 육신의 몸을 쓰시기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 속에 자기를 내어 던져버리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태어나셔서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고 30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 40주 40야를 금식하시고 마귀를 이기신즉, 나와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죄를 용서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건지시고 그리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여주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뿐아니라 주님은 이제는 대접전을 하기 위해서 갈보리산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보리산 십자가의 대접전을 통하여 사망의 동굴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많은 종교인들이 들어간 그 동굴, 그 많은 도덕군자들이 들어간 동굴, 그 많은 철인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못한 그 동굴로, 그 많은 과학자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못한 그 동굴, 그 동굴로 우리 주 예수님 역시 인간을 대신 해서 싸우기 위해 죽음을 안고 들어가신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애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가는데, 살아서 나올까요? 이것이 우리의 질문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을까요? 과연 이 마귀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고 로마 군인들은 사흘 동안 철통같이 그 무덤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공적으로 죽였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마귀와 지옥의 세력들은 이젠 하늘나라는 이 땅에 임할 수 없다고 고함을 치고 춤을 추고 발광을 했습니다.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소문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마다 이제 예수의 흔적은 없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날 아침에 여자들이 예수의 몸에 향유를 바르러 갈 때, 하늘에 빛난 광채가 비취고 산이 진동했습니다. 그들이 가보니 바위문은 열렸고 파수하던 군인들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창검을 버리고 뿔뿔이 기어서 도망을 치고 그리고 그 바위 위에 앉은 천사는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너희가 찾는 예수는 이미 살아나셨느니라” 그들이 본즉 무덤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옷만 그 머리맡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후 40일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안식 다음날인 주일날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 해변가에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식사를 같이 하사 격려하여 주시고 40일 후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에는 오백 여명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주님은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바울 선생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 사람들중에 태반이나 살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나같은 사람에게도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축복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신 증거로서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에게 우리가 보고 들은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불이 떨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께 부어주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가 사망을 정복하고 사망의 문을 깨뜨리고 나오심으로 말미암아 해방과 자유와 기쁨을 영원히 우리에게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불안과 공포와 초조와 절망은 사라졌습니다. 주님은 죄에서 우리를 해방해 주셨습니다. 죄의 사슬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죄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는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죄에서 해방이 되고 용서받은 의인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들은 죄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셨습니다. 이제 원수된 담은 무너졌습니다. 미움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햇빛같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부은 바 되었습니다. 오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여 우리 마음을 감동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 품 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들어왔고 우리가 하늘나라에 소속한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마리암아 우리는 질병의 공포에서 해방을 얻었습니다. 병은 이제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마귀의 도구인 병을 예수님께서는 다 멸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동굴에 들어가서 병의 모든 사슬을 끊어버리고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물러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치료가 되시고 우리는 질병의 공포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실 때에 무덤속에 저주를 영원히 장례지내 버리셨습니다. 이전에는 마귀가 사람들을 끌고 가서 저주받게 만들고 따라서 사람들은 영도 마음도 몸도 생활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행복하게 살려는데, 행복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부부간에 인정있게 살려는데, 부부간에 갈등이 다가옵니다. 가정을 평안하게 만들려는데, 가정에 평안함이 사라집니다. 삶을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데, 역경의 가시와 엉경퀴가 돋아납니다.

누가 이 저주에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나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되지만 나사렛 예수는 저주를 이기고 만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가난을 이기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는 맥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저주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께 나와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해답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저주와 공포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의 공포는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떠나가고 만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문을 깨뜨려 버리시고 음부를 박차고 바귀를 없이하시고 위대한 능력으로 승리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영광과 영생만 남아있을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다 믿음으로 이미 영광을 얻었습니다. 우리 약한 몸은 강하게 됩니다. 우리 추한 몸은 영화롭게 됩니다. 우리 죽을 몸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의 육의 몸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의 육의 몸은 신령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인과 나그네의 길이 끝나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고향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슬픔과 눈물과 탄식이 없습니다.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앓는 것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가득한 곳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그 영광스런 미래가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마귀를 완전히 정복하시고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그리스도는 진정코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와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는 옛날의 억압과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삶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얻게 되고 그 결과 사랑과 기쁨을 만끽하면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내일도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도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가슴을 열고 마음껏 모셔들이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영광과 찬양을 드리며 그리스도의 자유와 해방과 기쁨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삶의 영원한 해방자가 되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여, 오늘 묶여 있는 사람 없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신 즉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주신 것을 감사하옵고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