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 28:20] 가르쳐 지키게 하라 (교사헌신예배)

'코이네' 2023. 4. 29. 16:45

가르쳐 지키게 하라 

28:16-20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학생 하나가 오래간만에 그 학업에서 해방되어, 그 해방감을 가지고 여행을 하다가 어느 조그마한 산장에서 어떤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대화가 오고 가던 중에 노신사가 이렇게 묻습니다. "학생은 무엇을 하고 있소" "예 저는 방금 수학을 다 배우고 끝을 냈습니다. "노인이 한참동안 빙그레 웃습니다. 그 학생이 다시 반문을 합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노신사가 웃으며 대답을 합니다. "나는 방금 수학 공부하기를 시작했소" 그러나 청년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보통 분이 아니신데 존함이 어떻게 됩니까? 그랬더니 자기 이름은 화이트 헤드라 했습니다. 화이트 헤드 교수는 유명한 수학자이요, 과학자입니다. 그가 방금 배우기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청년은 이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졸업시험을 치뤘는데 마치 다배웠다라고 뽐내었던 것입니다. 그는 겸손하신 교수앞에 머리를 숙이며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학문이라는 것은 모르는 분야를 배우는데 얼마나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이지도 모르고 배웁니다. 그래서 현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불 확실과, 무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배워라! 성경을 배워라! 그 다음에 확신하라! 확신하라! 확신하라! 우리 교사는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부지런히 노력하고 배워야하며 훈련해야한다.

 

1. 가르치고 지키게 하기 위해 교사가 먼저 훈련되어야 합니다.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주일학교 교사들은 반드시 훈련을 받아야 한다.

허드슨 테일러는 "훈련받지 않은 병사가 쓸모 없듯이 훈련받지 않은 선교사는 쓸모 없다"고 말했는데, 바꾸어 말하면 "훈련받지 않은 병사가 쓸모 없듯이 훈련받지 않은 교사는 쓸모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훈련된 교사는 어느 날 갑자기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연구, 그리고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영적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영적 세계를 다루어야 하므로 막대한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교사들 보다 더 한 전문성 있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교사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다.(고전12:28) 그렇기 때문에 1-2년 하다가 싫증나면 그만 두어야 할 싸구려 직분이 아니다.(여러분 성가대와 교사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느 것을 택하렵니까?-성가대가 편하기 때문)

3-4년 하다가 그만두는 교사가 70-80%에 이르고, 10년 이상 근속 교사는 불과 5-10%미만인 것이 오늘 우리 교회 주일학교의 실정이다. 젊었을 때 잠깐해 보다가 직장을 구하거나, 시집가면 그만 두는 것이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교사는 평생토록 감당해야 할 사명이요 직분이다. 주교 교사는 일반 학교 교사들처럼 일정 기간 전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므로 어린이들을 양육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고, 미숙한 점도 많다.

오늘 우리가 가르치는 어린이들이 누구인가?

눈부시게 발생하는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안방에 안방극장인 TV나 비디오를 갖추고 있고, 오디오가 발달해 안방 노래방까지 갖추고 있다. 또 물질적 풍요 속에 세속적이고, 쾌락적인 문화에 젖어 들었는데도 주일학교 교사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교수 방법과 전문성도 없이 막무가내로 가르치는 교육 상식은 현대 문명 사회 속에서 길들어진 어린 심령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가 힘들며 더 이상 비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2. 왜 교사는 자기를 훈련해야 하는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어떤 주인이 먼 나라에 가면서 자기에게 있던 종들에게 장사하라고 자본금을 맡기고 길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었다고 합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맡긴 목적은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남기라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받은 바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의 주신 뜻대로 열심히 충성하여 장사를 잘했는데, 어떤 종은 달란트를 받기는 받았지만 장사를 하지 아니합니다. 일찌감치 포기해서 땅을 파고 묻어 버립니다. 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냥 묻어 두었을까요?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지, 손해볼까 염려해서, 어쩌면 게을러서, 또 자신의 능력을 과소 평가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는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훗날 주인이 돌아 왔을 때 많은 것을 남긴 종들을 보고 칭찬하며 더 많은 것을 맡기리라고 하였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시켰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한 달란트를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결코 탕자와 같이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의 하게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가지고 있다가 드릴뿐이었습니다. 그는 본전 그대로인데 책망이야 하시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반응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셨습니다. 달란트를 묻어 둔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활용하지 아니한 게으른 마음과 자세가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 종은 주인에게는 쓸모 없는 종이 되었습니다. 충성되지 못한 종은 쓸모가 없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충성했느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한다면서 충성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봉사하는 사람은 기쁨이 따릅니다. 마음의 즐거움이 함께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무 즐거움이 없고 미음에 기쁨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거의가 봉사 안하는 사람이거나 교회에만 다니는 사람입니다.

봉사하는 것은 시간이 남아 일하는 것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맡겨 주신 사명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한가할 때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쁘지만 그 시간을 쪼개어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는 시간이지만 먼저 주님이 쓰셔야 하겠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칭찬 받은 충성스러운 종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말합니다.

충성된 종이란? 어떤 종입니까?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충성한다는 것은 지금 교회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를 정확하게 알아서 그 목적대로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하기 전에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오늘 한 달란트 받은자 사람은 주인의 뜻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주인이 왜 주고 갔는지 그 의도를 알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주인을 속이거나 사욕을 채우지를 아니했으며, 얼마를 감추어 두었거나 자기 일에 쓰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돌아와서 볼 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3. 교사는 무엇을 가르키고 지키게 해야 합니까?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수호한다. 유지한다. 실천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지킬 것이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나 자신입니다. 딤전5:22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믿음입니다. 딤후4:7에서 바울은 "내가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4:15에서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습니다.

교사는 훌륭한 믿음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을 바로 지키지 못하면 곧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약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을 바로 지키기만 하면 그 믿음이 점차 자라서 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1) 무엇을 가르치고 지키게 해야 합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가르치고 지키게 해야 합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고 했습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을 뵙고 왕으로 경배하면서도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릴리에 모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번 뵈었음에도 의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의심해선 안 될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주님께서는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던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헬라어로는 의심하다를 "디아크리노 라고 합니다. 그 뜻은 "철저하게 분리하다" 혹은 "철수하다" "주저하다" 입니다. 의심은 하나님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소망을 철수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교사는 자기 자신이 바로서야 하며 또 나를 통해서 배우는 제자들이 의심이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가서...모든 족속으로....제자를 삼아....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서"라는 것은 유대 전역, 나아가 전세계로 가라는 것으로 선교의 영역을 말합니다.

"모든 족속"은 나라와 언어를 달리하는 전세계 사람, 즉 선교의 대상을 의미합니다.

"제자를 삼아" 라는 것은 그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은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군인을 훈련시키는 것은 전투하는 힘과 기를 길러 주려는 것이고, 선수를 가르치는 것은 경기를 치러 내는 기술과 힘을 길러 주려는 것입니다. 현대 학교 교육의 허점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국 교육의 최종 목표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엔 그것으로 끝입니다. 인생이 토론되고 삶이 이야기되고 세계와 가치와 창조적 삶이 무르익어야 할 대학이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시달립니다. 존경과 평화 교육의 장이어야 할 대학이 불신과 폭력이 날뛰는 시장 바닥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같이 영적인 훈련장인 교회가 가르치는 자들의 자세와 사명의 의식이 결여되면 어떻게 될까요?

주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합니다.

주께서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의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그리고 너에게 지금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변하고 없어지고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는 한 분이 계십니다. 모든 것이 내 곁을 떠난다고 해도 온 세상이 나를 외면한다고 해도, 믿었던 것이 내 곁에서 사라져 간다고 해도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두 가지의 중대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1:28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하신 문화적 명령입니다.

28:19-20에 예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복음적 명령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50억 인구 중에 아직도 30억 인구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랄프 윈터(Ralph winter) 박사에 의하면 참으로 거듭난 신자, 확실히 구원받은 신자는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모든 신자들은 전도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한가지 영혼 구원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안다면 어떤 희생도 지불하고 어떤 불편도 참고 지옥으로부터 한 영혼을 구원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혼 구원은 영혼의 위험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3: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지옥은 사람이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이며 문자 그대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요, 영원한 고통의 장소이며 울부짖으며 괴로움을 당하는 장소입니다. 지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거절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영혼 구원은 영혼의 가치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불란서의 한 의사는 자기가 영혼의 무게를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의사에 의하면 한 죽어 가는 환자를 예민한 정루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본 후에 그 환자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죽은 후에 저울 눈금을 보니까 저울이 21g 이 내려가더랍니다.

그래서 영혼의 무게는 21g 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무게는 21g밖에 안되지만 영혼의 가치는 막8:36-37온 천하 보다 더 귀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영혼 구원은 예수님이 지불하신 댓가 때문에 중요합니다.

영혼 구원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다 가진 분인데 그 분의 최고 최대의 명령을 거역하면 되겠습니까? 크게 책임 추궁을 당할 때가 올 것입니다. 28:18-20"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에 성령의 권능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바로 지옥 불에 떨어져 가는 많은 영혼을 구원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나갈 때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영혼 구원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할렐루야!

결론으로) 오늘의 시대는 `영상 세대'가 되어 교회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인생, 의식구조. 가치관 등의 모든 문화를 `영상의 젖'이라는 T. V, 비디오, 오디오, 컴퓨터를 먹고 자란 세대들인 것이다.

문화적으로 발달한 아이들에게 아무리 탁월한 지식을 가진 교사들이 365일 붙들고 가르쳐도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렇게 될 때에 나타나는 결론은 모든 화살을 숫자나 환경이 돌려버리고 만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가 작으므로 성경 학교가 존재해야 하니 마니, 영상 문화를 따라가니 못하니, 가르칠 교사가 자질이 있니, 없니가 아니라 교사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에 붙잡히지 아니하면 교회 교육은 승리할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이 주일 학생들이 감소하는 것은 교회와 교사들이 미래의 한국 교회를 향한 비전과 뜨거움과 열정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쇠퇴해져 가는 한국 교회와 주일학교를 살리기 위해서 교사들이 지금부터 성령에 충만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