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십자가와 나(2) 고전 1:18, 십자가 지혜와 능력_김명혁 목사

'코이네' 2023. 1. 31. 17:48

십자가와 나(2)

"지혜와 능력"

본문 : 고전 1:18-25

 

 

지난 주일부터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성경의 핵심이고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에는 고상한 윤리도 있고, 철저한 사회정의도 있지만 기독교의 핵심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첫째 나의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십자가는 둘째 나의 말과 설교를 변화시킵니다. 십자가는 셋째 나의 자랑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 설교의 내용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붙잡을 때 사람의 운명이 변화됩니다. 이와 같은 운명의 변화가 강도에게서 일어났고 바울에게서 일어났고 어거스틴에게서 일어났고 진젠돌프에게서 일어났고 그리고 십자가를 믿는 여러분들과 저에게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여러분들의 운명의 변화인 것을 날마다 믿고 날마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붙잡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도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합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미련함과 약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미련함과 약함을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고 약하게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1:18). 십자가는 미련한 것입니다. "이방인에게는[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3). 무식하고 불행한 인간들에게 지혜와 행복을 가져 다 줄 하늘의 신이 세상에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십자가에 처형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였습니다. 십자가는 또한 약한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고전1:23). 유대인들은 강력한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는데 십자가는 너무 약해서 그들의 기대에 거리끼는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개인과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가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약하고 너무나 무력하게 보였습니다.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었고 십자가는 약한 것이었습니다. The cross was foolishness. The cross was weakness.

현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고 십자가는 약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현대인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도 못하고 현대인의 정치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도 못합니다. 현대인의 상식에서도 벗어나고 민족의 문화와 전통에서도 벗어나고 현대인의 개인적인 욕망에서도 벗어납니다. 십자가는 여전히 미련한 것이고 여전히 약한 것입니다. 니체와 같이 권력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여전히 약하고 거리끼는 것이 되고,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현대 지성인들에게 십자가는 여전히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 됩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철학자 A. J. 에어는 기독교의 교리를 멸시하면서 기독교는 "지성적으로 멸시할 만하고 도덕적으로 분개할 만 하다" 라고 기독교를 비난했습니다. "Intellectually contemptible, morally outrageous." 김용옥이란 사람에게도 기독교는 한갓 조소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미련하고 약한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십자가는 미련하고 약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미련하고 약한 십자가의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파했습니다. 철학적 지혜로 옷을 입히지도 않고 정치적인 힘으로 가면을 씌우지도 않고 십자가를 있는 그대로 미련한 방법으로 약한 방법으로 전파했습니다.

 

둘째, 십자가는 지혜와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미련함과 약함인 동시에 지혜와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실패 작품도 아니고 하나님의 실패 작품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의 아우성과 로마 군인들의 무력에 밀려서 예수님이 힘이 딸리고 하나님이 힘이 딸려서 저질러진 실패 작품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최상의 걸작품입니다. 물론 희곡적 작품은 아니고 비극적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신 지혜와 능력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조품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성부 하나님에 의해서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만들어진 신조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서 양의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실 때 벌써 십자가를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전날 밤 모세와 아론에게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명했을 때 이미 십자가를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명했을 때 이미 십자가를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로 하여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라고 예언하게 했을 때 이미 십자가를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사람이 만들어 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계획하신 신적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첫 설교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2:23). 인간의 불법이 십자가 사건을 발생케 한 것이 사실이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모두 미리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지혜와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난 신적 작품입니다.

1) 첫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지혜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공의가 함께 어우러져서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은혜의 손길과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손길이 함께 어우러져서 나타난 지혜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시면서도 동시에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가 나타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은 일이 다른 종교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종교인 기독교에만 있을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이 범한 죄악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몸에 모두 쏟아 부으시므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그리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꾸는 모든 죄인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십자가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가 나타난 곳입니다. 은혜와 공의가 함께 나타난 곳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지혜를 멸시하거나 대항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A. J. 에어나 김용옥 같은 무식하고 건방진 사람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지혜를 멸시하고 대항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 세상과 우주에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감히 멸시하거나 대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둘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는 외형적으로는 약해 보입니다. 실패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곳입니다. 저주 받을 인간을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곳입니다.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실 십자가는 유대인과 로마인은 물론 사탄이 보아도 약해 보였고 실패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능력이요 성공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을 멸망시킬 세 가지 원수들을 깨트려 부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멸망시킬 세 가지 원수들은 죄악의 세력과 마귀의 세력과 인간 자신의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이 세 가지 원수들의 세력을 깨트려 부셨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죄악의 세력을 깨트려 부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악의 세력을 모두 자기 몸에 받아서 용해시켜 버렸습니다. 원죄와 자범죄의 모든 독소들을 자기 몸에 받아서 용해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들이 범한 죄악 때문에 우리들을 처벌하라고 부르짖는 마귀의 아우성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십자가는 마귀의 세력을 깨트려 부셨습니다. 사실 마귀는 예수님이 탄생한 때부터 예수님을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므로 자기가 승리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귀를 결정적으로 때려 눕힌 곳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였습니다. 마귀는 죄지은 인간은 대적할 수 있었으나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을 대적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마귀는 인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므로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을 대적하는 결과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마귀의 세력을 깨트려 부시는 승리였습니다. .

셋째 십자가는 인간 자신을 깨트려 부셨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원수는 인간 자신입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탐욕적이고 위선적인 인간 자신이 인간의 원수였습니다. 십자가는 인간 자신을 깨트려 부신 곳입니다. 인간의 최고 모델인 예수님이 인간 자신을 깨트려 부신 곳이 바로 십자가이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을 깨트려 부실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2:20).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들의 세 가지 원수들을 깨트려 부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곳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말씀을 맺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누구에게 그렇습니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붙잡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시는 구원을 얻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