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가정의달 설교, 창2:20] 창조질서로서의 가정 _ 유경재 목사

'코이네' 2022. 3. 31. 20:33

창조질서로서의 가정

창 세 기 2:20-25,  골로새서 3:18-25

설교 : 유경재 목사 

 

 

가정의 달인 5월 마지막 주일에 다시 한 번 성경 특히 창세기에 나타난 가정을 살펴보므로 우리의 가정들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창조의 완성인 가정

 

창세기 2장의 창조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의 창조가 점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셨는데, 아직 사람을 만드시지 않아서 들에는 초목이 없었고, 채소도 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흙을 가지고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에덴동산을 창설하셨는데, 그 동산에는 온갖 아름다운 나무와 강이 흘렀다고 하였습니다. 훨씬 아름다운 세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안 좋아 보여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가 이런 짐승들로 구색을 갖추게 되어 훨씬 보기에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워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인 여자를 지으셔서 그와 짝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들 부부가 좋아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만족해 하시면서 그의 창조사역을 일단락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바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로 아담의 짝이 되게 하시므로 완성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창조 이야기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자가 창조되고 그 여자와 남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므로 창조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가정이 창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처음 창조 목적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속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이 설정하신 신성한 제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에서 가정이 빠졌다면 그것은 미완성 창조였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창조되었지만 저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창조의 그림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남녀가 각각 독립하여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혼자 살면 여러 가지 편리한 점들이 많이 있겠지만, 가정이 없는 사회가 이루어질 때 그 사회가 진정으로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회는 사랑이 메말라버린 이기적인 사회로 겨울처럼 찬바람만 불게 될 것입니다. 가정이 있으므로 해서 이 삭막할 뻔한 세상이 부드럽게 아름답게 따뜻하게 변화되었습니다.

 

피조계에 속한 가정

 

따라서 우리가 알 것은 가정은 창조 질서를 따라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피조의 세계가 창조의 질서를 따라 운영되듯이 가정도 이 질서를 따라 세워질 때 건강하게 되고 아름다운 가정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질서를 따른다는 것은 바로 그 질서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름을 의미합니다. 가정이 창조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면서 다른 가정, 다른 피조물과 조화와 협력을 이루어 가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뜻합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하는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임을 기억할 때 이 가정을 잘 가꾸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에 협력하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가정이 깨어질 때 하나님의 창조의 그림은 오점(汚點)을 남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 창조의 그림을 더럽히는 인간의 여러 가지 죄악이 많지만, 가정의 파괴는 가장 큰 오점으로 이 그림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하신 것을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도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2장에서 창조 질서의 일부로서의 가정의 구성 요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결합으로 가정이 이루어졌지만, 단순하게 두 사람만이 그 가정의 구성요소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저들을 만드시고 또 결합하게 하셨다는 사실과 땅과 하늘, 그리고 거기에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바로 그 가정의 중요한 구성요소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나오는 가정은 우주적입니다. 가정은 들판에 피어나는 꽃처럼 돋아나지만, 그 가정 홀로 있을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서 모든 피조물과 호흡을 같이 할 때 비로소 그 가정이 존재하며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거기에 사랑이 있을 때 그 가정은 행복하게 됩니다. 부부가 사랑하고 부부 사이에서 자녀가 탄생하면 그 자녀를 사랑하며, 그리고 그 가정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만들어 놓으신 피조 세계를 사랑할 때 그 가정은 든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창조 질서로서 이해하면서 그 질서를 따라 자연스럽게 나갈 때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녹색운동을 하시는 김종철 교수의 어떤 강연에 나오는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인류학자로 진 리들로프라고 하는 여성이 있는데, 이 사람이 베네수엘라 아마존 밀림에서 에쿠아나라는 원주민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몇 년 동안 현지조사를 하였답니다. 이 학자의 주관심사는 어린아이의 양육방식이었습니다. 그 부족사회는 아주 가난하였지만 사람들 표정이 모두 밝고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답니다. 이렇게 넉넉하고 행복하게 사는 까닭이 무엇일까를 찾아보는 중 아기가 태어나고 양육되는 방식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이 마을에서 아기의 탄생은 마을 전체의 공통된 관심사가 되고 마을 전체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임신부는 동네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자기가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을 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는 물론 모유를 먹고 자랍니다. 태어나면서 아기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데, 그 보살핌은 주로 신체적 접촉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아이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아홉 달까지 어른들이 밤낮 없이 아기를 만져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키운다고 합니다. 그렇게 양육된 아이들은 굉장히 원만하고 평화로운 심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내면이 평화로우니까 남들에게 자연에 대해서 저절로 공경하는 태도가 길러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디언들과 달리 현대인들의 출산은 공포로 일관됩니다. 아기는 병원에서 출산되면서 바로 엄마 품에 안기는 대신에 신생아실로 옮겨져서 우유를 먹게 됩니다. 편안한 엄마 뱃속에 있다가 바깥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와 떨어질 때 그 아이의 불안과 공포는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다 밥벌이에 바쁜 엄마가 그 아이를 떼어놓은 채 직장으로 달려가서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 보니 그 아이가 엄마의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의 심성이 원만하기 어렵고 늘 불안과 불만과 짜증으로 가득 차게 되고 결국 거기로부터 폭력성이 배태되게 됩니다. 이렇게 자라난 사람들이 결국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이 되어 자연을 정복하고 다른 사람을 정복하려 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불안하고 근본적으로 평화를 만들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잘못된 길로 나가게 되는 현상들은 결코 우연이거나 몇몇 가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창조 질서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대 사회 구조가 우리의 심성을 파괴하고 우리의 가정으로 파탄으로 몰고 가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가정

 

우리 가정에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가정에 모시고 그를 예배함과 동시에 그가 가르쳐 주신대로 사랑을 회복하고 그 사랑으로 가정을 가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네브래스카 대학교의 인간 계발 및 가정연구부에서 많은 조사와 실험의 결과로 발표된 좋은 가정들의 공통점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습니다.

 

첫째로 성공적이고 행복한 가정일수록 가족들 간에 감사하는 마음이나 말이 아주 풍부하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많이 갖는 가정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함께 수고하고 함께 즐겁게 놀고, 함께 음식을 먹는 가족들은 훌륭한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추억과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남겨준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가족끼리 서로 대화를 많이 갖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신앙을 갖는 가정들이 아주 결정적으로 행복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가정에 어려움이 올 때에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처리하는 가정들입니다.

 

이런 공통점들을 요약하면 신앙과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좋은 가정을 이루려면 그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이루도록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신앙의 가정에서 아들이 분가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사업에 성공하여 좋은 집을 짓고 부모님을 초청하였습니다. 그 부모님은 화려하게 꾸민 자식의 집을 다 둘러보고 나서 그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얘야, 집이 참 아름답고 화려하구나. 그런데 이 집의 주인이 분명치 않구나"

 

그 집에는 기도하는 방도 없었고, 성경이 보이지 않았으며, 예수님 그림이나 성화가 하나도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두터웠던 그 부모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고 섭섭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심방을 다니면서 그 가정에 예수님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때에 마음이 흐뭇합니다. 예수님이 그 가정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많은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 가정의 주님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시편 16편의 기자는 하나님을 모신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가 나의 곁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이 마음 기쁨으로 가득 차고, 이 몸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는 까닭은 주께서 나를 보호하셔서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셨으며, 주님의 거룩한 자를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께서 내 곁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16:8-11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에 모실 때, 기쁨이 가득 하고 즐거움이 영원할 것입니다. 이런 가정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자손이 다 복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 가운데 조나단 에드워즈란 분이 계십니다. 그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종교와 도덕적인 면에서 크게 타락한 사회를 신앙부흥을 통하여 바로 잡은 분입니다(1703~58). 그가 죽은 후 150년이 지났을 때 후손은 무려 1394명이었는데, 교장 13, 교수 65, 의사 60, 목사 100, 군인 75, 관리 80, 저술가 60, 언론인 18, 부통령, 상원의원, 지사, 시장, 대사, 사장 등이었다고 합니다. 훌륭한 신앙의 전통을 이은 가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가정의 두 번째 요소인 사랑을 우리 가정들이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여자를 데려 오셨을 때 감탄하면서 아담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가족들 상호간에 서로가 서로의 뼈를 구성하고 있다는 연대감(連帶感) 혹은 소속감이 있을 때 거기로부터 사랑이 우러나게 됩니다. 오늘의 가정들이 이런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각자의 방에서 컴퓨터나 TV 앞에 앉아 있으므로 가정은 사랑으로 견고하게 결속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도 계속 만나고 확인하지 않으면 결국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많은 지식을 넣어주려고 온갖 과외를 다하고 있습니다만, 막상 중요한 사랑을 가르쳐 주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스위스의 교육학자 페스탈로치가 말하기를 "가정은 최상의 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과과정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정들은 사랑을 가르치는 최상의 학교로서가 아니라 들어와 잠자고 밥 먹는 하숙집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함이 곧 창조 질서를 회복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을 잃은 가정들, 함께 모여 노래하고 즐거워하며 대화할 시간을 잃어버린 가정들, 그래서 그 가정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둥지로서 기억되기보다는 잔소리와 짜증 부리는 소리로 가득한 곳으로 기억되어 가능하면 들어가려 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런 가정의 파괴는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임을 기억하고 빨리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 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가정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은 창조의 꽃이며, 아름다움입니다. 이 가정은 우주를 향해 열려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질서를 따라 돌아가는 우주의 한 복판에 이 가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가정을 신앙과 사랑으로 가꾸기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은 저절로 행복하게 지켜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그의 돌보심을 받으며, 사랑을 가꾸어 갈 때 비로소 거기에 행복의 파랑새가 날아들고, 기쁨의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가꾸어집니다.

 

이제 여러분의 가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시고 창조의 질서를 따라 믿음과 사랑으로 든든하게 세워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