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사상과 노인사역

경로사상(敬老思想, 孝思想)과 노인사역(老人使役, 老人牧會)

 

 

우리는 앞장에서 노령화사회의 노인문제를 논의하였으며, 21세기는 그 어떤 때보다도 아주 빠른 속도로 노령화사회에서 노령사회로 갈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그리고 노령화사회의 노인문제를 분석 진단하여 노인문제가 무엇인가를 밝혔다. 이제 우리가 논의할 것은 노령화사회에서 제기되는 그 많은 문제를 목회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노인사역’(老人使役)이 목회의 중요한 과제로서 목회의 중심에 있어야 할 그 당위성(Sollen)과 그 대안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1. 인간사랑의 으뜸계명으로서 기독교의 ‘孝’(부모공경) 및 경로사상(敬老思想)

 

유교사상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을 불효(不孝)막심 한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단지 조상을 섬기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그 한가지의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을 불효자식들이라고 매도한다. 그것은 전혀 잘 못한 처사이며 기독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기독교만큼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孝’(효), 즉 부모공경을 으뜸계명으로 하고 있는 종교는 없다. 그렇다. 참으로 기독교는 부모를 공경하는 ‘孝’를 인간사랑의 으뜸계명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의 10계명(출20:1-17)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첫 부분인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하나님 공경(하나님 사랑)을, 둘째 부분인 5계명에서 마지막 10계명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웃사랑(인간사랑)을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모공경과 관련된 제 5계명을 수평적인 인간사랑의 계명에서 ‘첫 번째의 계명’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최고의 계명, 으뜸 되는 계명이 바로 부모 공경하는 일이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것은, 부모공경을 명령하는 제 5계명에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규정하는 제 1계명에서 4계명까지의 계명에서와 똑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의 계명에서만 사용된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수평적인 관계의 다른 계명에서 사용되지 않은 하나님의 이름이, 유독 부모공경에서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부모 공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이것은 또한 유교에서 강조하는 ‘효 사상’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곧 부모를 하나님 공경하듯 하라는 의미라 하겠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지켜야 할 최고의 계명, 으뜸 되는 계명이 부모공경인데, 요즈음 우리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불경(不敬)스럽기 그지없는 세상이다. 노쇄한 부모를 거리에 내버리는 세상, 부모를 학대하는 세상, 부모를 부양하지 않아서 굶어죽게 한 세상, 이렇게 현대판 고려장이 실시되고 있는 불경스런 세상이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오늘날 이 세대는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는”(딤후3:2) 때이다.

오늘날 교회가 ‘노인사역’을 중요시해야 할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효 사상(孝思想)인 부모 공경이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 할 최고의 계명, 으뜸 되는 계명이기 때문이며, 또한 오늘날 이같은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敬老思想)이 날로 상실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2. 목회의 중요한 과제로서 노인사역(노인목회)

 

여기에서 우성 규명해야 할 것은, ‘노인사역’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역(使役)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부리어 시킴‘이다. 이 말의 영어는 고용(employment)과 봉사(service) 및 일(work)을 뜻하며, 독일어 역시 고용(Beschäftigung)과 봉사(Dienst) 및 일(Werk)을 뜻한다. 신약성서에서의 ’사역‘은 곧 섬김 및 봉사의 뜻을 가진 헬라어로 ’디아코니아‘(diakonia)이다.

신약성서의 ‘디아코니아’는 여러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식탁에서 시중들기, 즉 육신의 양식(식사)를 공궤하는 일(행6:1; 눅10:40)이며,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지고 나보다 남을 여기는 이웃섬김으로써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고전12:4절 이하)이다. 그리고 디아코니아의 절정은 ‘화목케 하는 직책’(diakonia tes katallages)이다(고후5:18). 여기서 말하는 ‘직책’은 헬라어 원어로 ‘디아코니아’이다. 그러므로 화목케 하는 직책이란 곧 화목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말한다. 이 일은 바로 하나님의 봉사(일)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실천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봉사(일), 즉 화해의 직책(Versöhnungsdienst)을 실현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로하여금 심자가에서 죽기까지 그 사명을 감당케 하셨으며, 또한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Versöhnungsdienst, 화해의 섬김 및 봉사)을 주신 것이다(고후5:18).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막10:45)고 하신 것이다.

이토록 이 땅의 교회는, 그토록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실현하신 화해의 직책, 바로 그 화해의 섬김(봉사)를 위임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20:21)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모든 목회(牧會) 행위 및 교역(敎役)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기려 오신” 그 분의 사역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사역, 즉 봉사의 일을 다른말로 ‘목회’(牧會) 혹은 ‘교역’(敎役)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것은 라틴어를 교회용어로 사용해 온 전통에서 ‘섬기다’의 어원(ministro)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목회 및 교역을 영어로 ‘ministry'라고 하게 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장황한 설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역’(使役)이란 다름아닌 ‘교역’(敎役) 혹은 목회(牧會)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목회자신학세미나 주제의 핵심인 가정사역은 곧 가정목회(family ministry)라 하겠으며, 노인사역 역시 노인을 섬기는 ‘노인목회’라 하겠다.

노인을 섬기는 노인목회,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목회의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하며, 노인사역은 더 이상 변두리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의 중심에 그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난 20세기가 어린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청소년들을 사회의 중심에 서게 하고, 또한 여성들의 지위향상과 권리신장을 위해 힘쓴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따라서 노인문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경로사상(효 사상)이 이웃사랑의 계명에서 으뜸이라는 것과 함께 교회가 노인사역을 목회의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이유이다.

목회(牧會)를 독일어로 젤졸케(Seelsorge)라고 한다. 이 말은 ‘영혼을 돌본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영혼은 영과 육을 가르는 이원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곧 생령(창2:7)으로서 ‘전인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목회란 하나님은 개개인을 결단코 포기하시지 않는 분이라는 믿음 안에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설교와 성례전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 주고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 하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목회란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가 처한 곤경에 연대하며, 그 사람이 입은 상처를 싸매 주고 치유해줌으로써 삶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교회의 한 건강한 지체가 되게 하는 일이다.

곤경에 연대하는 것(Solidarität), 이것이 목회의 중심(Herz)이다. 앞에서 우리는 노령화사회의 노인문제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는데, 노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빈곤과 질병, 역할상실과 외로움이라는 네 가지의 고통, 즉 사고(四苦)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같은 네 가지의 고통을 안고 있는 노인들이야말로 사회적 약자이다. 목회란 바로 이같은 사회적 약자로서 노인들이 안고 있는 고통에 연대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또다시 노인목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인식하게 된다.

 

(출처 : 김종렬 ' 21세기 목회와 가정사역-노인사역(목회)을 중심으로-' 숭실대 목회자 신학세미나.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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