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4:1] 감추인 것이 드러날 때

'코이네' 2021. 12. 30. 21:04

감추인 것이 드러날 때

 

성경:고전 4:1-5

 

 

바울은 자신을 포함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두 가지 명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일꾼이라는 말과 비밀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꾼이란 헬라어로 휘페레타스라는 말인데 그 뜻은 배의 맨 밑창에서 노 젓는 노예를 지칭할 때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그러니까 노예 가운데서도 제일 힘든 일을 하는 노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맡은 자라는 것은 오이코노모스라는 말로서 오이코()를 노모스(관리한다)한다는 뜻입니다.즉 오이코노모스란 청지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을 배의 맨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보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사역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본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는 성직자의 양면성을 발견해야 합니다.성직자란 노예선의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와도 같이 낮아지고 섬기는 자여야 하는가 하면 한편 천사에게도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복음과 거룩한 교회를 노모스(관리하고 다스리는)하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함부로 대하고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그 이유는 바울이나 그의 동역자들을 고린도 교회 교인의 종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다시 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자기네 노예선을 배 밑창에서 노 젓는 종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분명한 입장을 천명하고 있습니다.그는 본문 1절에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이 말을 의역하면 나는 노예임에 틀림없다.그러나 너희들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노예이다라는 말입니다.그리고 4하반절에서는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청지기는 그 책임이 컸습니다.주인의 위임을 따라 주인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는가 하면 일꾼들을 감독하고 물자를 분배하고 집 전체 살림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그러니까 청지기의 충성여부는 그에게 일을 위임한 주인이 판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에게 청지기의 책임을 주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다만 주님만이 나를 판단하실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우린 본문에서 세 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충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충성이라는 말과 믿음이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자기가 맡은 일에 얼마나 충성을 다하느냐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바울의 경우처럼 노예선의 맨 밑창에서 노 젓는 일을 맡았든지 보다 그 책임이 큰 관리자의 일을 맡았든지 충성해야 합니다.일반적으로 충성이라는 말은 신실이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충성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맡은 일에 항상 신실한 자세와 마음으로 임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충성은 곧 신실함입니다.

교회 음악의 대가라고 불리는 작곡가 바하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고 있으면서 주일마다 부르는 성가대의 노래를 새로 작곡하는 일을 했습니다.그러나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출판되지도 못했고 별도의 작곡료를 받은 바도 없었습니다.그러나 그는 매주일 꾸준히 사명감과 신앙으로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그러나 훗날 바하의 음악 세계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보수도 없이 매주일 작곡했던 그 곡들이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바하가 만든 265개의 오르간곡과 263개의 합창곡과 162개의 피아노곡,그리고 그 외에도 수백 개의 오르간곡들은 그가 날마다 주일마다 꾸준히 작곡했던 성실과 신실성이 낳은 작품들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일을 맡는 것은 쉽습니다.그리고 무엇이 되는 것도 쉽습니다.그러나 그 일에 신실과 성실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어떤 중책이나 중임을 맡게 되면 처음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기도 하고 결심을 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변질되기 마련입니다.다시 말하면 세월이 지날수록 게을러지고 태만해지고 완고해져 가게 됩니다.한 차례의 충성은 쉽지만 일생 충성은 어려운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한문의 충성 충()자는 글자의 구성 자체로서 뜻이 있다고 해석했습니다.그의 말에 의하면 입()과 마음()을 못질( )해 놓은 것이 충성 충()자라는 것입니다.입과 마음,말과 행동이 괴리 현상을 일으키지 않도록 대못으로 고정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충성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맡은 일을 입으로 모조리 해치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속으로만 골백번 결심하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러나 충성은 마음과 실행이 병행해야 하는 실천 윤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송년 마지막 주에 우린 얼마나 충성했으며 얼마나 충성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십시다.

 

2.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고 했고 4하반절에서는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주경가 바클레이는 판단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첫째는 다른 사람의 판단,둘째는 자신의 판단,세째는 하나님의 판단이라는 것입니다.세 가지 판단 중에 가장 정확한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이유는 하나님은 내 마음속의 생각과 동기와 계획까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나에게 일을 맡기신 분이시기 때문에 나를 판단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최후의 판단자,심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그러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7:1 이하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고 7:5에서는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 비판 정신이 높이 평가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가장 멋있는 비판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판단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3.감추인 것이 드러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5하반절을 보면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지금은 의와 불의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선과 악의 정체도 드러나지 않습니다.그러나 주님이 이 세상에 재림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실 때 감추인 비밀이 폭로된다는 것입니다.지금은 그 사람이 충성하는지 충성하지 않는지,정직한지 거짓된지가 드러나지 않지만 그날에는 감추었던 것들이 모조리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끼리는 눈가림이 가능하고 위장이 가능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베드로후서 3:10을 보면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가령 오늘 하루 동안에 살아가는 내 모습이 무비 카메라에 의해 모조리 녹화가 되었다고 가정에 보십시다.그렇다면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호텔과 같은 공공 시설에는 중요한 곳마다 감시용 카메라가 장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일이 녹화되어서 분석 자료로 쓰여진다고 합니다.성경은 감추인 것이 드러날 때를 심판의 날이라고 합니다.감추인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한순간도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고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미국 UCLA의 심리한 교수인 로저 골드 박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가 있다면 그것은 고독이다라고 말했습니다.고독이란 글자 그대로 홀로 있으면시 느끼는 외로움을 의미합니다.

골드 박사는 성인의 발달 과정을 7단계로 구분했습니다.

첫재 단계는 16-17세로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도망의 시기

둘째 단계는 18-22세로 여러 가지 삶의 가능성을 찾는 탐색의 시기

셋째 단계는 23-28세로 생존을 위하여 발버둥치는 투쟁의 시기

네째 단게는 29-34세로 인생을 깊이 생각하는 회의의 시기

다섯째 단계는 35-43세로 초조와 위기를 느끼는 불안의 시기

여섯째 단게는 44-50세로 정신없이 덜려온 과거를 비로소 돌아보는 반성의 시기

일곱째 단계는 51세 이상으로 나를 알고 나와 너의 관계를 알게 되는 성숙의 시기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위에서 말한 대로 이 모든 세대가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고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긍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독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우린 오늘 이 해를 마감하는 송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은 어중간한 크리스챤을 원치 않으신다”(God does not want a half-Christian)고 했습니다.어중간한 크리스챤이란 반쪽짜리 크리스챤을 말합니다.크리스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사람,한편에서 보면 크리스챤인 것 같고 다른 편에서 보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바로 반쪽 크리스챤(Half-Christian)인 것입니다.또한 웨슬리는 하나님 외에는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죄 밖에는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사람,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백명만 있으면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지나간 우리의 한 해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날 것입니다.매주일 제 설교하는 모습이 비디오로 녹화되고 있습니다.저는 그것을 다시 V.T.R 기계에 넣어 들여다보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저의 표정과 눈빛과 몸짓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솔직하게 이 시간 우리의 지난 한 해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합시다.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엔 보다더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이 되겠노라고 약속합시다.그러면서 나의 가는 길과 삶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라고 부탁드립시다.

주여,신실한 종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