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3:16] 교회에 대한 세 가지의 비유

'코이네' 2021. 12. 15. 21:46

지역 교회에 관한 지혜 

고전 3장



영국의 성경 학자 켐벨 몰간(G. Campbell Morgan)박사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 모두 목사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몰간 박사의 손자 한 사람에게 당신도 목사가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아닙니다. 저는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목사가 사역하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만일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목사의 사역을 평하는 법도 알 수가 없습니다.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정말 자기가 할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지역 교회 내에서 이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교회의 세 가지 모습을 설명하며, 이런 설명을 통해 교회 사역은 과연 어떤 일을 아루어야 하는지를 지적합니다. 바울이 설명하는 교회의 세 가지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이며 그 목표는 신자를 성숙시키는 것이다(3:1-4)
둘째,교회는 하나님의 밭이며 그 목표는 풍성한 결실을 맺는 일이다(3:5-9상)
셋째,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그 목적은 신자를 거룩케 하는 일에 있다(3:9하-23)

1.가정으로서의 교회(3:1-4)

앞서 바울은 이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 곧 육에 속한(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신령한(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구원받은 자들 중에도 두 부류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구원받은 자들 중에도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 두 부류는 장성한 그리스도인과 미숙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께서 말씀으로 자기를 먹이시게 함으로써 장성합니다. 반면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일을 위해 살며 영적인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직 장성치 못한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갓 구원받은 성도의 미숙함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라는 가정을 탄생시킨 영적 아버지였습니다(4:15). 18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사역하면서 바울은 그의 영적 자녀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이려고 노력했으며 그들을 믿음 안에서 장성시키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장성했다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첫째,그가 섭취하는 음식으로 그 사람의 장성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부모의 보살핌으로 음식을 먹고 있다가 장성하면서 혼자서도 솓가락을 들고 먹을 수 있습니다. 비록 흘리면서도 그 솜씨들은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감에 따라 여러 가지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바울이 표현한 대로라면, 젖대신 밥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흔한 말로 대답한다면, “젖”은 비교적 알아듣기 쉬운 「말씀」(Word)을 뜻하고 “밥”은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통상적인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한 예로써
(히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히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이 구절 말씀은 “젖”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일들을 의미하며 “단단한 식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재 천국에서 수행하시는 일들과 관계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현재 천국에서 수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을 가르쳐 주고자 하였으나, 그 편지를 받는 수신인들의 영적 상태가 미숙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의도를 알릴 수 가 없었습니다(히6:1-4참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양식입니다. 이 말씀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벧전2:2), “떡”(마4:4), “단단한 식물”(히5:11-14), “꿀”(시119:103)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잡힌 식사를 해야 하듯이 우리의 속사람도 균형잡힌 신령한 양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처음에는 젖을 먹지만 점점 자라고 이빨이 나기 시작하면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신자가 영적으로 장성했는지 아니면 아직도 미숙한지 구별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가 어떠한 음식을 즐겨 먹는가를 보면 바로 그의 영적 상태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미숙한 신자들은 천국에 계신 예수께서 지금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삶과 지상 사역에 대해 밝혀진 사실들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그분께서 천상에서 현재 행하고 게신 사역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성경의 이야기에 근거해서 살아가지만, 성경의 교리 위에서 살지는 못합니다. 이들은 고린도전서 2장 6-7절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모인자들마다 단순한 흥미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명을 받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모였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해석해 주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신약성경은 그 전체가 복음에 대한 해석서이며 성도의 삶 속에 그것을 적용시키는 말씀입니다. 한 예를 든다면, 바울은 어떻게 하면 구원받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 로마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쓸 당시 로마의 교인들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구원 속에 포함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로마 신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로마서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깊은 것”에 대한 설명이며 또 그것을 생활속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알려 주는 서신인 것입니다.

둘째,사랑을 실천하며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는가를 보아서 그 사람의 장성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서로 다투고 소란피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그들은 스포츠 스타나 인기 영화배우를 자신과 동일시하기를 즐깁니다. 고린도 교회의 “어린아이”들은 바울, 아볼로, 베드로 중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가지고 피차 간에 싸움을 벌였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우리 아버지는 너의 아버지보다 싸움을 잘해! 우리 아버지는 너의 아버지보다 돈을 더 많이 벌아와!”라며 싸우는 것과 같았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결여된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곧잘 교회 내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다양한 영적 은사를 주시고, 또 은사를 받은 이 사람들은 여러 교회에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각 교회의 성도들을 성장케 하십니다. 신자들이 자라간다는 것은 곧,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 은사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더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이야기되어야 할 것은,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이 영적 은사를 교회를 우는 도구로 사용하지만, 미숙한 신자들은 이 영적 은사를 가지고 노는 장남감이나 남에게 자랑하는 상품으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고 다니는 경우는 많았으나, 그 은사로 남을 섬기거나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의 사역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가족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먹이고 훈련시켜 그 어린아이들이 믿음 안에서 장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많이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2.밭으로서의 교회(3:5-9상)

바울은 농사와 관계된 비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했으며 자신의 서신에서도 그것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라는 말은 간단히 말해 “너희는 하나님의 경작된 밭이요 하나님의 동산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씨에 비유하셨습니다.(마13:1-9 / 18-23). 바울은 개인에게 적용된 예수님의 비유를 다시 집합적으로 설명합니다. 즉, 지역 교회는 열매을 맺어야 하는 하나의 밭인 것입니다. 교회 사역의 임무는 씨를 뿌리고, 땅을 갈고, 물을 주며, 열매을 거두는 일입니다.

그런데 밭으로 비유된 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특별한 문제를 안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 적용될 수 있었을까? 우선, 우리가 강조하고 주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아닙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자신에게 할당된 임무를 다한 종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신자들이 갖고 있는 믿음조차 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5절) 그렇기 때문에 종들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종보다는 추수의 주인이시며 모든 축복의 근원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바는 증가(增加) 또는 성장이라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왜 설교자들의 능력을 비교하고 통계 수치를 비교합니까? 교회 성자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도 교회 성장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장에 필요한 일을 모두 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은 씨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6절).

이러한 비유적 표현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사역의 양상은 다양하다.
한 사역자가 땅을 갈면 다른 사역자가 씨를 뿌리고 또 다른 사역자는 물을 줍니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이 자라고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면 또 다른 사역자들이 열매를 거둡니다. 사역의 다양성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바울이 교회를 다양한 지체를 가진 몸에 비교할 때에도 또 나타납니다.
둘째, 사역의 목적은 단일하다.
어떤 사역자가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든 그는 여전히 추수의 한 부분입니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8절).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는 서로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일만을 수행해 나갔습니다. 이처럼 복음 사역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그 다양성은 단일한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사역에 임하는 정신에도 또한 단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사역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자라나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인간 사역자가 아니라 추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은혜롭게도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에서 당신의 사역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인간의 노력이 실패하고 맙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자랑하고 그 회중 내에 있는 여러 다양한 그룹들은 각기 자신들의 지도자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높이는 테도는 교회의 분열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요한복음 4장 34-38절에 기록된 것과 똑같은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는 함께 일할 뿐만 아니라 추수하는 날에는 같이 기뻐하며 각각 자신의 상을 받게 됩니다.  외따로 떨어져 사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사역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수고해 놓은 일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미 씨를 뿌렸고 사랑과 기도로 물을 주었습니다.
(고전3: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의 사역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최고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은 사람으로부터 칭찬이 아니라 추수의 주님으로부터의 “잘하였도다”라는 칭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밭이 번성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역 교회가 성령의 열매(갈5:22-23).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롬6:22). 구제의 열매((롬15:26), 선한 일의 열매(골1:10) 찬미의 열매(히13:15)를 맺기 원하시며 뭇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롬1:13)
영적 성장이 이루어짐에 따라서, 놀라운 양적 부흥이 있어야 합니다. 한 열매 속에는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씨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역의 열매가 진실로 순수한 것이라면 그 열매는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사역에 종사하는 자들은 교회라는 “토양”을 끊임없이 돌보아야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근면해야 하며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사단은 불화와 거짓말과 죄악의 씨를 뿌리느라 분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좋은 씨를 뿌리고 가꾸는데 더 분주해야 합니다.


3.성전으로서의 교회(3:9하-23)

본문 말씀은 흔히 성도의 삶을 세워가는 것에 대한 설명이라 해석됩니다. 즉,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위에서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좋은 건축 자재를 사용하는 데 비해 어떤 사람들은 부실한 자재를 사용합니다. 어떤 자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받을 상의 종류가 결정된다’고 해석되는 것입니다.

이는 본문 말씀을 적절히 적용한 것일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해석은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인 지역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6:19-20에서는 신자 각 사람이 하나님의 전으로 설명되나, 본문에서는 지교회 회중을 하나님의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엡2:19-22에도 온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느 날엔가 하나님께서 지역 교회와 연관된 사역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고전3: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자재로 교회를 세우느냐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교회는 설교자나 회중 자체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째,교회는 올바른 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3:10-11)
올바른 터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린도에 온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만을 전파하기로 작정하였었습니다(2:1-2). 그리고 그 결심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30년 이상 사역을 해 오면서 나는 유명한 설교자나 어떤 특별한 인위적 방법, 또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특정 교회 위에 교회의 터를 닦으려고 애쓰는 교회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역들은 항상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할 때에 바울, 아볼로, 베드로와 같은 인간을 더 중요시했었습니다.
교회의 올바른 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놓여집니다. 터는 그 위에 세워질 건물의 규모나 모양 그리고 강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 건축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서 행해지지 않는 사역은 일순간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결국엔 허물어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또 어떤 사역자가 자기가 터득한 진리에 동조하는 자들을 기존 교회에서 따로 이끌어 내어 교회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가 새로 세운 교회는 여기 저기 흩어졌으나, 여전히 그는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자를 찾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그릇된 터 위에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올바른 자재를 사용하여 지어져야 합니다(3:12-17)
본문에서 바울은 서로 반대되는 두 종류의 자재들을 설명합니다. 


금, 은, 보석
나무, 짚, 풀
영구적이다.
아름답다.
가치있다.
얻기가 어렵다.

일시적이고 현세적이다.
평범하고 보기 흉하기도 하다.
값싸다.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바울이 언급한 금, 은, 보석, 나무, 짚, 풀 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구성하는 “산 돌”이기 때문입니다.(벧전2:5). 
본 장의  각 단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이 사용하는, 교회의 상징적 이미지에 적합한 모양으로 상징화되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말씀은 하나님 가족의 영적 양식, 하나님의 밭에 뿌려진 씨, 또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기 위한 건축 자재로 상징화되는 것입니다. 
잠언은 하나님 말씀의 지혜를 우리가 찾고, 보존하고, 매일, 지니고 다녀야 할 보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일부 살펴보기로 하면,
(잠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잠3: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잠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수 없도다 
(잠2: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잠2: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잠2: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잠2: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잠2: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잠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잠8: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바울이 고린도전서 초반부 세 장(章)에 걸쳐 지혜가 무엇인가를 설명해 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건축 자재들이 지혜와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해야 마땅할 때에, 인간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로 교회를 세우려고 애썼습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은 성경이라는 광산 속을 깊이 파고들어가서 값진 금과 은과 보석들을 캐내야 하며, 그러한 자재로 성도의 삶을 건축해야 한다는 것이 이 말씀의 의미입니다.
무디(D.L.Moody) 선생은 “회심자들의 수만 계수될 것이 아니라 무게도 측정되어야 한다”고 종종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量)뿐만 아니라 질(質)에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바울은 교회가 질과 양을 겸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밭에서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역자들은 열매가 많이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건축할 수 있으며 그 말씀이 아름답게 열매 맺히고 영원한 축복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일입니다. 값싼 자재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실 것이라고 16-17절 말씀은 경고합니다. 물론 바울이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는 영원한 정죄가 아닙니다. 각 사역자들은 비록 상급은 잃을 지라도 구원은 모두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5절). 바울의 말은, 우리는 어떠한 자재로 각자의 삶을 세움으로써 곧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오랫동안 인디아에서 선교사로 사역한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은 “우리의 사역은 우리의 삶 자체보다 결코 깊어질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이처럼 지속성 있는 가치(價値)로써 교회를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삶을 산산조각내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성공적인 사역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 그 날이 공력을 밝힐 것이며” 그 헛된 공력은 타서 연기로 변할 것입니다.

사역자들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일은 현명치 못하다. 바울은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 까지는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고 경고한다(4:5). 젊은 사역자들은 켐벨 몰간 박사에게 그의 사역이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곧잘 묻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몰간 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항상 똑 같은 말을 합니다. 연구하라, 열심히 연구하라, 그리고 더욱 열심히 다시 연구하라!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몰간 박사는 매일 아침 6시면 벌써 일어나서 성경의 보물을 파내기 시작한다. 성경이라는 광산의 주변에서 나무나 짚이나 풀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것들을 뽑아서 건축 자재로 삼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금, 은, 보석과 같은 자재들을 원한다면, 힘들여 파내야 한다. 게으른 목사나 주일학교 교사는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많은 심문에 답변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성경을 연구해서 자기 소유의 금, 은, 보석을 갖지 못하고 대신 남의 것들을 훔친 목사나 교사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째, 교회는 올바른 계획에 따라 지어져야 합니다(3:18-20). 
지역 교회는 사업을 하는 방식대로 관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같은 사실에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의 훌륭한 원리들까지도 좇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업의 원리와 교회 관리의 원리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일을 위한 지혜는 교회의 일을 위한 지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권좌와 특권을 추구하며, 돈과 소수 중요 인사들의 영향력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기도, 성령의 권능, 겸손, 희생, 및 봉사 등에 의해서 움직여집니다. 세상의 방법을 흉내내는 교회는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듯이 보이나 이러한 교회는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곧 재로 변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초대 교회는 오늘날 우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의 비결”같은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돈도 없었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없었고, 보물도 없었습니다.(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라고 말했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규 학교에서 특별한 교육 같은 것을 받지 못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중 대회를 개최한 적도 없었고, 유명 인사를 초빙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각각의 지역 교회에 대해서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빌2:12-13) 각각의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는 그 자신을 사로잡는 덫일 뿐이며(욥5:13). 또한 헛되고 무익한 것으로 우리를 이끕니다(시94:11)고 19-20절 말씀은 각각 경고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의 지혜를 모방해서는 안 됩니다.

네째, 교회는 올바른 동기에 의해 세워져야 합니다(3:21-23)
올바른 동기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상도들은 사람을 자랑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사역자들을 비교했고(4:6). 육신에 속한 그런 행위들로 교회를 분쟁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려고 했다면 고린도 교회에는 화합과 일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각개의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주지시킴으로써 본 장의 결론을 내립니다. 또한 하나님의 종들은 각각 각개의 신자들에게 동등하게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나는 바울에게 속해 있다!” 혹은 “나는 베드로 좋아한다!”는 식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도 각각 개인적 성향에 맞는 사역자를 좋아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취향이 분열을 낳는 어떤 편견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어쩌면 나 개인의 경험상, 나의 취향에 가장 맞지 않는 사역자가 사실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자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