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신명기

[신20:5] 축복하는 자

'코이네' 2021. 10. 8. 13:21

 

축복(祝福)하는 자

20:5, 15:27-29

 

 

우리 진잠 제일교회가 하나님의 또 다른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받을 준비를 오늘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근우 준목님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이근우 준목이 목사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작게는 몸담고 있는 우리

진잠 제일 교회의 성도들을 위함이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하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이라고 생각됩니

.

한 교회에서 목사님을 배출한다는 것은 교회의 영광이고, 그 교회는 대단히 큰일

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진잠 교회가 비록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

, 큰 교회는 아니지만 귀한 목사님을 세울 수 있게 되어서 노회의 임원으로서

감사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해서 몇 가지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 목사의 소명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라고 하십니다. 물론 하나

님의 백성들이 다 택하심을 받았지만 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목사로 부르심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신 자들입니다.

 

. 목사의 특권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목사의 특권에 대해서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많은 사람가운데 택했다는 것입니다. .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요,

. 백성을 재판하는 것이요, . 성례를 주관하는 일(성례권)이요, . 안수권(

16:17,18)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는 목사는 축복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특별히 레위 지퍼를 세워서 하나님의 일

을 수종 들게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읽어 나가다 보면 레위

지파 제사장을 세우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제사장을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

리에게 교훈해 주십니다. 그 중에 첫 번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하

기 위해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님은 백성들을 축복하는 분입니다. 그것도 자신에게 있는 그 무

엇으로 하는 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축복하

는 직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6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우고 그

할 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르쳐 구약의 축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서 모세에게 자기의 백성들을 이렇게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그들

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한 대로 말입니다. 6:27"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하나

님께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가르쳐 주신대로 손을 들고 하나님

의 백성들을 축복하게 된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며

2) 너를 지키기를 원하며

3)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며

4)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런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어떤 사람은 "축원합니다."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축복은 안수 받은 목사

만 할 수 있는 축복 권입니다. 목사는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세운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근우 목사님이 안수 받으시고 목사님이 되시면 축도를 하시게 되겠는데

그 때 하나님께 우리 진잠 제일 교회에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가정과 교회 위에

내려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 성경에도 하나님의 종들만 할 수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고후13:13절입니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라는 축도입니다. 신약에 의식 가운데 하나님이 축복을 쏟는 시

간이 축도입니다. 예배의식 가운데 축도가 있는데 이것이 축복을 하나님께서 회중

에 직접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천주교에서는 강복이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교회의 주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는 것입니다. 즉 목사가 하나

님을 대신하여 축복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

시겠다고 하신 대로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사역을 위탁받은 사람들이 백성에게 축복하는 것이 옳다."고 기록하고 있

습니다.

 

둘째는 목사는 치리 권이 있습니다.(벧전2:9)

 

이 권세는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질서와 건덕을 위

하여 사도들에게, 즉 주의 종들에게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치리권을 주신 것입니다. 매고 푸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잘

못하면 권면하고(책망), 권징하고, 제명하고 파면하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교회 생활은 순종의 생활입니다.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

. 주님의 몸된 제단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주님의 대

명령인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지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의 종들에게

치리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목사는 강도권이 있습니다.(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2:42에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

회에 주신 놀라운 축복 중에 두 가지는 첫째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것입니

. 우리에게 이 성경! 특별 계시가 없었다고 하면 어떻게 우리 주님께서 나를 사

랑하셔서 십자가에 대속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

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기록된 성경을 주셨기에 우리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 수 있

었고! 구원 얻는 길은 오직 주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가 흘려졌다는 것

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성경을 주신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도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르치는 일을 하는 분이 사실은 목사님 한 분이 아닙니다. 교사도 있고,

구역장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인 것은 모두가 주의 종의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가지고 또 다른 충성된 자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딤후2:2)

 

제가 중국에 가보았는데 거기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고 열심히 모이기도 합니다.

주일 예배도 보통 두시간씩 드립니다. 말씀 전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사모하는지

모릅니다. 저녁 시간에도 열심히 모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가르치는 사람

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깨

닫고 가르칠 주의 종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용해서 이단들이 들어 가 마

치 거짓 것을 바른 것처럼 가르쳐 미혹하는 예가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우리

는 이 한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말씀 잘 가르치는 주의 종들이 있다

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의 종들에게 강도권을 주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하루는 주목사님

이 강단에서 설교하는데 일본순사가 교회 문에서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주목사

가 설교하시다가 국가문제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순경이 "주목사!

설교를 중단하시요!"라고 중지시킵니다. 그때 주목사님이 말씀하기를 당신들은 내

목을 벨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설교권은 빼앗을 수 없소!"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주목사님은 순교하시었습니다. 설교권이 주의 종들에게 있

습니다. 죄를 짓는 중에 무서운 죄는 주의 종들에게 주신 강도권! 설교를 훼방하

는 것은 무서운 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목사는 제사집행권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 인도권과 성례 집행권이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는 예배를

주관합니다. 그 백성들로 하나님과 만나게 합니다. 성경을 강론하며, 세례와 성찬

을 베풉니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이것이 제사 집행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할 때에 모세를 통해서 아론과

그 아들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단을 쌓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자기 백

성들과의 만나는 징표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으로 그 회막에 구름이 덮입니다.

이것이 주의 종들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이요, 권세인 것입니다. 이 예배와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 받게 하는 일을 주의 종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를 모신 교회가 받을 신령한 축복들입니다.

 

한마디로 목사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백성들을 축복하는 자요, 교회의 거룩성을

사수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건덕을 세우기 위해 주님께로부터 받은 치리자요, 하나

님의 말씀과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말씀의 선포자요, 해석자이며,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게 하는 예배와 성례의 집행자요, 교회의 대표자입니다.

 

이것을 알 때우리 주의 종들은 더욱 겸손히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주님이 사랑하는 양무

리를 때로는 푸른 초장으로! 때로는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기름지고 살찐 꼴로

양육하여 주님께 칭찬 듣는 종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 목회자를 돕는 성도에 대해서!

 

주기철 목사님의 일화 한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마산 문창

교회에서 시무 하실 때에 평양에 있는 산정현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님을 청빙하기

로 하고 조만식 장로님을 비롯한 당회원들이 청빙서를 가지고 찾아가 풍전 등화와

같은 이 시대에 교계를 이끌어 갈 산정현 교회의 담임 목사로 청빙을 하여서 부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목회를 하고 있던 어느 주일인가, 늘 일찍 오셔서 교회

를 돌아보시고, 부서들을 돌아보며 격려하시던 조만식 장로님이 그날 따라 예배에

지각을 하신 것입니다. 나라에 급한 일 때문에 말입니다. 설교가 진행 중일 때 비

로소 조만식 장로님이 헐레벌떡하면서 들어 와 신발을 벗어 들고 신발을 신발장에

넣으려고 하는데 설교하시던 주목사님이 소리치십니다. "장로님! 그 자리에 서 계

세요!." 그래서 설교가 다 끝날 때까지 신발을 들고 그 자리에 꼼짝 하지 않고 서

계신 것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주기철 목사님은 제자요, 조만식 장로님은

나라에 애국자요, 주기철 목사님의 스승이요, 나이로도 아버지뻘입니다. 그런데 그

런 나이 어린 목사님이 그 자리에 서 있으란 다고 설교가 다 끝날 때까지 서 계신

것입니다. 설교가 다 끝났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말씀이 "조장로님 기도하시기 바

랍니다." 라고 기도할 것을 명합니다. 허리를 굽혀 앞으로 나와 기도하시는데 "

부족한 종이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지각을 함으로 주의 종을 근심케 하고 성

도들의 본이 되지 못하였아오니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면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과연 훌륭한 장로님이 아니실 수 가 없으셨습니다. 이런 훌륭한 장로님이 계신

교회에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온 세상이 우상에게 절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에 일사 각오로 신앙을 지킴으로 이 민족을 세운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리 진잠 제일 교회에서 앞으로 목사님을 모시게 될 때에 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조만식 장로님과 같은 심정으로 순종해 드려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나가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 첫째로 중요한 것은 주안에서 수고하시는 것을 알아 드리고 가장 귀히 여겨 드리라는 것입니다.

(살전5:12,13)

 

사실 목회자들은 자기 개인의 삶이 없습니다. 목사도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지만

늘 교인들에게 우선권을 빼앗기고 늘 뒷전입니다. 교인들에게 즐거운 일이 있으면

목사가 즐겁고! 교인들에게 괴로운 문제를 만나면 그 괴로움이 목사의 괴로움입니

.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

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

제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

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

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후11:26-29)라고 하신 것입니

. 이것이 목회자들의 삶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집을 사서 아파트로 이사하면 자

기는 집도 없으면서 마치 내 집을 산것처럼 좋아하는 분이 목사님들입니다. 이 모

든 수고를 알아주고 귀히 여겨 드릴 때 주의 종들이 힘이 나는 것입니다.

 

참 목사의 일이 많습니다. 이것을 교인들은 잘 모릅니다. 보통 교인들은 목사님

들 주일에 설교만 하면 시간이 참 많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식구들

하고 밥 같이 먹을 시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퇴근 시간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뛰어 나가야 하는 5분 대기조 같습니다. 어느 때는 새벽 2시 고요한 시간 피

곤한 시간에 전화벨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면 가슴이 덜컥합니다. 성도의 가정에

누가 위독하신가!"하고 말입니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한사람이 나와 앉아 있어도 설교해야 합니다. 하루나

일주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 365! 평생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설교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대학교수들은 일주일에 몇 시간하고 또

두 달은 방학입니다. 목사님들은 주일 낮에! 또 저녁 때!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심방이다, 행사다, 가정에 의식이다, 이루다 말할 수 없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은 똑같은 수준의 사람들을 놓고 합니다. 그리고 일년마다

사람이 바뀝니다. 새로 올라옵니다. 때문에 한번 했던 강의 노트 가지고 가면 됩

니다. 거기에다 새로 나온 지식 조금씩 섞으면 됩니다. 그리고 몇 년에 한번씩 책

한 권씩 쓰면 됩니다.

 

그러나 설교는 그 대상이 노인으로부터 청소년까지입니다. 박사로부터 일자 무식

의 사람까지입니다. 대대손손 믿는 집이 있는가 하면 초신자도 있습니다. 어디에

맞출 것입니까!! 또 자리도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10년 뒤에도 그 자리입니다.

자리에 앉은 사람은 20년 전에도 앞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거기다 전부 필기합니

. 어떤 분은 성경에 써 놓습니다. "아무개 집에서 본 말씀!" 그러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김재준 박사라는 분이 말씀하기를 대학 강의는 부담이 안 되는데 설교는 부담이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설교하는 것을 임산부로 비유했습니다. 목회자가 월요일만

되면, 다음 주일에 무슨 설교를 할까 하면서 기도하고 임신을 합니다. 토요일쯤

이면 만삭이 됩니다. 만삭이 되면 극도로 긴장이 됩니다. "잘 낳아야 할텐데! 아들

일까! 딸일까!, 순산이 될지 난산이 될지!, 정상일지 아니면 기형일지!" 얼마나 긴

장이 됩니까! 그래서 임산부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일에 설교를 토해 내

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여자들이 해산하고 나면 기분이 좋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주일이 지나 월요일이 되면 이번 수요일은 어떤 설교를

하나! 다음 주일 설교는 무엇을 하나!"하면서 임산부의 배가 불러오듯이 또 배가

불러옵니다. 이것이 설교자의 삶입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하나만 낳으면 좋은데

, 셋도 나아야 하고 열도 낳아야 하니 이름 짓기도 바뿐 것입니다.

 

교인들이 생각할 대에 목사가 기도하고 신령하니 "믿습니다!" 하고 기도만 하면

설교가 저절로 나오는 줄 알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목회학의 저자 곽알

련 박사는 말하기를 목사가 일년에 백번 설교를 한다고 보면 책 5권의 저술에 해

당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생 대학 교수하여도 책 다섯 권을 쓴다는 것이 쉽

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년에 목사는 책 다섯 권을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은혜 받았다고 집에 돌아 가 쉬면 되지만 주의 종들은 서재에 들어

가 책과 씨름하고 주님과 기도의 교통과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몸부림 속에 가

능한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도 답답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목사님도 있답니다.

가수들은 노래 하나 히트 치면 그거 가지고 평생을 부르지 않습니까! 가수 김정구

씨는 어디 가도 두만강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도 두만강인데 지금 50이 넘어서도

두만강입니다. "설교도 그렇게 하면 안되겠나!"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

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되 오는데 설교는 떠오르

지 않고! 그러면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때가 많은 것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의 수

고를 알아주고 귀히 여겨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성도들의 모든 백사가

다 목사와 관계가 되지 않습니까!

 

둘째로는 목회를 즐거움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13:17에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

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會計)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의 종들은 성도들을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목자

(13:15, 4:11-12)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어떻게 하면 양질의 꼴을

먹일까,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마시게 할까! 어디에서 참 쉼을 줄까! 하는 것이 목자

들의 고민인데,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 마음이 상하고 괴로움이 많으면 어떻게 그

일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교인들의 일이 잘 안되고, 사업에 부도가 나고! 어디가 아프면, 마치 그것이 나의

잘 못 때문인 것같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들이 목사님들이라는 것입니다.

런 차원에서 목사는 복음의 제사장(15:16)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즐거

움으로 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기를 키우는 유모가 마음이 상하고 괴로우면

좋은 젖을 먹일 수 없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주의 종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

 

계시록 113-20절에 보니 "...일곱 촛대가 있고 일곱 촛대 사이에 예수님께서

서셨는데 그 오른 손에 일곱별을 잡으시고 촛대 사이를 운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가르치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

즉 주의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주의

종들에게 맡기셨고 당신의 양들을 주의 종들에게 맡기셨는데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주의 종들을 손으로 잡으시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진

잠 제일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 드립니다.

 

모쪼록 목사 청빙을 앞두고 있는 우리 진잠 제일 교회가 더욱 복있어 지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우리 준목님은 진잠교회에서 사역하시면서 온 교회 성도들

로부터 목회 잘 하셨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온 교우들은 주의 종들을 잘 섬기면서

예수 믿고 복 받았다는 간증을 많이 할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

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의 영광이 이 교회에 영원히 빛나기를 소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