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가복음

[막10:46] 겉옷을 내어 버리고

'코이네' 2021. 4. 20. 21:57

겉옷을 내어 버리고

마가복음 10:46-52, 에베소서 4:22-24

 

 

믿음생활은 매 순간 주님을 만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기도를 통해서 주님을 만납니다. 어떤 때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기도 하고, 사건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면하여 만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 주님의 동행하심을 느끼는 것,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충만해 지는 것등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과의 만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다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소경이 눈을 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에수님을 만났을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불행이 바뀌어 행복한 삶이 되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까?

 

1. 은혜받을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디매오가 주님을 만나서 은혜를 받은 것은 그가 바로 은혜받을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된 것은 전적으로 행운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바디매오가 진정한 믿음을 갖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는 운 좋게도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그 여리고의 길목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거기 있었고 예수님은 그에게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사람은 그가 있는 곳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그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술친구와 항상 같이 있으면 그도 술 먹을 가능성이 크고 불신자도 예수 믿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예수 믿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서 그 주인의 돈을 흠쳐 도망을 친 사람입니다. 그가 감옥에 갔지만 마침 그 감옥에 바울이 같이 있음으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됐고 결국은 유용한 사람이 됐습니다.

 

은혜 받으려면 은혜 받을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려면 예수 믿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좋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려면 기도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말씀에 확신 가운데 서려고 하면 말씀을 들어야 하고, 주님을 만나려고 하면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받고서 세상에 나가면 곧 잃어버린다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잊어버리는 것 같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의식에서만 사라질 뿐 여러분 영혼 깊은 곳에 보관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시루에 콩나물을 기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밑으로 구멍이 숭숭뚤린 시루에 콩을 놓고 매일 물을 줍니다. 금방 물이 밑으로 빠져 버립니다. 물이라고 해서 무슨 비료가 섞인 물도 아니고 맹물에 불과 합니다. 그나마 붓기가 바쁘게 모두 밑으로 빠져 버립니다. 그러나 며칠 뒤에 보면 콩나물은 수북히 자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있어서 말씀의 샤워를 계속 받으면 믿음이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은혜받지 못했다고 낙심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 받을 것입니다. 내일 못 받는다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모래 받을지 누가 압니까! 안나와 시므론은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 80평생을 기다렸습니다.

 

바디매오는 감사하게도 은혜받을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은혜를 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마침 자기 앞으로 지나가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었기에 눈을 뜰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2. 부르짖어 구함으로 은혜를 입었습니다.

바디매오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시간이 자기의 앞을 지나갈 때에 무심히 보내지 않았습니다. 확실하게 붙잡았습니다. 부르짖어 주님의 손길을 간구하였습니다. 그것이 그가 주님을 만난 비결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바디매오는 있는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자신의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하라고 면박을 주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는 그들에게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만 관심의 촛점을 집중한 것입니다.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은혜의 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왔다가 헛걸음을 치는 것을 봅니다. 촛점을 예수님께만 맞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을 성도--거룩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정하신 것이지 우리가 참으로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있어서 꼭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촛점을 예수님께 맞추는 것이지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거지였지만 자기의 삶을 자신의 결단에만 맡겼습니다. 주변에서 말리는 것이나 비난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향하여서만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외친 것입니다. 예수님께만 자신의 부르짖음의 촛점을 맞춘 것입니다.

이러한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속에 계셨지만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길가 먼 곳에서 그야말로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의 외침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바디매오는 그를 부르신다는 소리를 듣자 뛰어 일어나 소리나는 쪽을 향하여 달려 나아갔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바디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향하여 달려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사모하던 예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3. 겉옷을 내어버리고 달려감으로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께로 달려가는 바디매오의 모습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 오거늘

주님이 부르신다는 소리에 바디매오는 자기 몸을 두르고 있던 겉옷을 내어버리고 주님께로 달려나갔습니다. 바디매오는 소경이었고, 거지였습니다. 거지에게 있어서 겉옷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여행 중에 유대인들은 겉옷을 밤에는 이불로, 낮에는 천막으로 쓰는 요긴한 물건입니다. 하물며 거지에게 있어서 그 겉옷은 얼마나 큰 재산이었겠습니까? 겉옷은 이 거지에게 있어서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르실 때, 바디매오는 그 겉옷을 내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데는 겉옷이 필요 없습니다. 치장이 필요 없습니다. 허례가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족한 것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연약하면 연약한 대로, 주께로 오면 되는 것입니다. 겉옷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겉옷 챙기느라 주님을 놓지는 때가 있습니다. 겉옷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식일 경우도 있고, 경력일 경우도 있고, 경험일 경우도 있고, 재물일 경우도 있고, 염려 걱정일 경우도 있고, 자존심일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데는 겉옷이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만 진심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4:22-24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썩어질 겉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세마포만 입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겉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음성만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 간 것입니다. 바디매오에게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눈 먼 사람이 눈을 뜨는 이야기만큼 감동적인 말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를 깨닫는 이야기이요, 길을 찾는 이야기이요, 회복의 이야기이요, 결국은 구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말해다오. 말해다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생명이라.

내게 오라. 내게 오라.

 

오늘 우리는 여기서 한 절망의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 축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받고 은혜를 받은 것은

은혜받을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어 간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겉옷을 버리고 믿음으로 달려 나갔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곁에 계신 주님께 생각과 삶의 촛점을 맞춤으로서 은혜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받고, 삶이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