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디모데

[딤후1:3] 네 속에 있는 믿음

'코이네' 2021. 4. 20. 21:56

네 속에 있는 믿음

시편24:3-6 디모데후서1:3-8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세가지 방향에서 살아갑니다. 첫째는 사람들과의 관게,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셋째는 세상과의 관계입니다. 이 세 관계를 어떻게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숙제요, 기도의 제목입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의 믿음을 칭찬과 격려로 말씀하면서 이 세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사람과의 관계에서 디모데가 깨끗한 양심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거짓없는 믿음을 가진 것을 칭찬합니다. 그리고 맡겨진 일에 대해서 뜨거운 사명감으로 감당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인 줄 믿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들여다 보면서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1. 청결한 양심--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칭찬한 청결한 양심이란 어떤 것입니까? 믿을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말합니다. 속과 밖이 다르지 않는 마음입니다. 생각이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기적이고, 욕심스러움이 없는 마음입니다. 더불어 함께 살 줄 아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의 성격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까지도 그 성격을 따라갑니다. 바울같은 열정적인 사람은 믿음도 열정적이고, 바나바와 같이 순한 사람은 그 믿음도 순한 모습으로 합니다. 성격이야 좀 급하면 어떻습니까, 성격이 좀 느긋하면 어떻습니까, 좀 까다로우면 어떻습니까?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적절한 곳에 쓰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깨끗해야 합니다. 청결한 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항상 청결한 양심을 지녀야 합니다.

청결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좀 실수해도 믿을 수 있습니다. 까다롭고 꼼꼼해서 좀 대하기 어려워도 괜찮습니다. 그 근본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권모술수나 욕심사나운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가 추해질 때가 언제입니까? 자기 권력유지에만 몰두할 때입니다. 깨끗한 양심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벌이 추할 때가 언제입니까? 회사는 망해도 자기 자신만은 뒷돈으로 살아나려고 할 때입니다. 청결한 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추해질 때가 언제입니까? 자기만 잘되고, 자기만 복을 받겠다고 이기적인 신앙의 모습을 가질 때입니다. 신앙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더불어 살 줄 아는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생각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씀입니다. 불순한 동기나 더러운 이기심이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뜻만 따르려고 하는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성전을 찾아와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축복도 받아야 하고, 은혜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깨끗한 마음을 얻는데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 와서 십자가를 바라 볼 때마다 욕심과 이기심과 시기와 원망과 더러운 생각들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깨끗하고 정결하고 맑은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사람과의 관계--청결한 양심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편24:3-6

 

2. 거짓없는 믿음--하나님 앞에서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없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이 믿음을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물려받았습니다.

어떤 것이 거짓없는 믿음입니까? 거짓없는 믿음은 형식적이거나 겉치레의 믿음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믿음이 거짓없는 믿음입니다. 비록 조금 실수 한다해도, 조금 부족한데가 있어도 그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기쁘게 충성하는 사람--그가 거짓없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엄히 책망하신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완벽했으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의를 자랑하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짓믿음입니다.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가 비록 실수할 때도 있었고, 죄를 지을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신 이유는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거짓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치레나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생활이 거짓없는 믿음입니다. 구원받은 감격이 사라지고, 은혜받은 심령이 무디어질 때, 어느 듯 믿음이 형식적이 되고, 뜨거운 기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믿음을 경건의 모양은 있되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감격을 되찾으십시다. 뜨거운 기도와 열정 어린 찬양이 가슴에 넘쳐나는 믿음이 되십시다. 주님사랑과 사람사랑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아름다운 믿음을 가지십니다.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25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와 점령하였습니다. 인민군들이 사람들을 분류해서 악질분자로 분류된 자들은 즉결처분이 되곤 하였습니다. 교인들은 반공 악질분자들로 분류되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총구 앞에서 벌벌 떨며 앞으로는 신앙생활을 포기하겠다고 각서를 쓰고 풀려났습니다. 그 중에 장로 한 사람만은 끝까지 남았습니다. 자신은 절대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민군 대장은 이런 악질 반동은 내가 직접 처형하겠다고 숲으로 데리고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었습니다. 한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가 공중으로 총을 쏘았기 때문입니다. 그 인민군은 이 장로에게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짜 교인입니다. 어서 피하시오. 나는 어쩔 수 없이 군에 왔지만 당신은 어서 가서 좋은 신앙인이 되시오. 그래서 풀려 나왔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사야43:2-3

 

성도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진실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거짓 없는 믿음, 황금 같은 믿음이 되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뜨거운 사명감--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디모데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몸도 약하였습니다. 그러나 맡은 바 사명은 뜨겁게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격이 조용하다고 해서 하는 것도 미적지근한 것은 아닙니다. 깊은 강이 소리없이 흐르는 것입니다. 겉으로 요란하지 않지만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속으로 감추어진 채 깊은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냄비처럼 금방 끓어오르지만 불기가 가시기 무섭게 식어버리는 신앙이 아니라 뚝배기처럼 덥히기에 오래 걸리지만 한 번 달아오르면 식을 줄 모르는 정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재물이나 명예나 욕심에 대해서는 맞는 말입니다. 누구도 재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없고,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空手來 空手去입니다. 누구도 대통령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없고, 대통령이라고 두 번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공수래 공수거입니다.

그러나 인생 그 자체는 절대로 공수래 공수거가 아닙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세상에 오고, 자신의 삶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사명이 있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고, 주신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자신의 삶의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빈손으로 우연히 온 것이 아닙니다. 다 나름대로의 할 일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여러분들이야말로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처럼 세상에 보내셨겠습니까?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서 자신의 사명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명으로 사는 성도가 되십시오. 미적지근하여 그냥 세월을 좀먹듯이 사는 삶은 사명의 삶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충성심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십시오. 세상에서도 무엇을 하든지 기왕에 하는 일들을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하십시오. 하는둥 마는둥 하는 생활태도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언제나 적극적이고, 열심있는 태도--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사명으로 세상을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태도와 자세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우리는 그 자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짓없는 믿음으로 섬기고,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항상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행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