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어린이주일 설교] 네 자녀를 축복하라

'코이네' 2014. 5. 2. 14:50

마태복음 19장, 어린이주일 설교, 네 자녀를 축복하라


네 자녀를 축복하라
마태19:13-15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여 축복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외한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직장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것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도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녀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중요한 자녀를 문제없이 키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서 많은 가정이 자녀로 인한 갈등과 고민과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이 우리의 자녀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은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부모는 하나도 없습니다,.이 자리에 있는 부모치고 내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나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자녀를 사랑합니다.그러나 무조건 사랑한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없이 키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고 사랑하기는 하지만 정작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당나라 학자 유종원이라는 사람이 쓴 <삼계(三戒)>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무꾼 형제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새끼 사슴 두 마리를 사로잡았습니다.형제는 나란히 한 마리씩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집안에 들어서자 개들이 달려들어 어린 사슴들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형은 개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늘 사슴을 자기 곁에 두고 정성껏 보살폈습니다.마치 어린 자식 키우듯 음식도 따로 주고 편안한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습니다.하지만 동생은 처음부터 사슴이 개들과 싸우며 자라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음식이나 잠자리도 개들과 비슷하게 해주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는 과거를 보러 머나먼 길을 다녀왔습니다.두 형제가 과거를 보고 돌아왔을 때 두 마리의 사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형의 사슴은 개들에게 물려 죽었고, 아우의 사슴은 개떼에 섞여 주인을 반갑게 마중 나왔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 사랑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어쩌면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사랑이 부모 중심적인 사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 중심적인 이 사랑 때문에 내 자녀를 망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육 심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제 있는 자녀는 없다. 다만 문제 있는 부모만 있을 뿐이다."아주 극단적인 말이긴 하지만 부모가 된 우리가 꼭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많은 경우에 우리 자녀의 문제는 그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부모인 내 자신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그러기 때문에 부모 된 우리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찾아내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는 문제들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이 시간에 그 중에 몇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그것은 '무지함'과 '함부로 대함' 그리고 '방임주의'와 '본이 되지 못함'입니다.

첫 번째 무지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린아이에 대해서 매우 무지한 어른들을 발견합니다.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이었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고 계셨습니다.그때 몇 무리의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와서 축복 기도를 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꾸짖고 내 쫓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어투로 말씀하십니다."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리고서 어린 아이 하나 하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하여 축복하여 주십니다.여기 예수님의 제자들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저들이 생각하기에는 어린아이들은 아직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자들의 무지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천국은 바로 이런 자의 것이다" 그러시면서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부모 된 우리도 색깔은 다르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졌던 그 무지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내 자녀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무지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는 공부하라고 하면서 정작 부모들은 내 자식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하여 거의 모릅니다. 지금 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 속에 있는지 거의 모릅니다. 또, 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거의 모릅니다.아이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의 아내가 운전교습을 받고 있습니다.항상 겁이 많고, 운동신경이 둔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운전을 배우겠다는 것을 저가 말렸습니다.그러다가 제 사역이 바빠지면서 아내도 운전을 배워야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요즘 한달 가까이 운전학원에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아내가 운전학원에서 운전을 정석대로 배우는 것을 보면서 저는 제 운전 면허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학원에 정식으로 등록하여 운전을 배우지 않았습니다.돈을 조금 절약한다고 쿠폰을 끊어서 강사에게 교습을 받은 몇 시간외에는 제 혼자서 운전을 배웠습니다.그러다 보니 운전 기술은 익혔고 면허는 빨리 땄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제 운전에는 문제가 많습니다.초기에는 크고 작은 사고도 여러 번 내었습니다.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살아 남아있지 벌써 하나님 품에 안길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운전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별 것 아닌 자동차도 운전을 하려면 많은 훈련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가장 중요한 자녀의 인생을 운전하는데는 공부도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그런 면에서 오늘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있어서 무면허자 들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공부해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책도 읽어야 하고 세미나에 참석하여 좋은 강의들도 들어야만 합니다.보통 부모들이 임신 중이거나 아이가 어릴 때에는 아이 교육을 위해 책도 사보고, 공부도 많이 하다가 정작 아이가 좀 커져서 아이에 대한 지식이 더 많아져야 할 시기에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닙니다. 아이가 사춘기로 갈수록 책도 많이 읽고, 아이와 대화를 더 많이 가져서 아이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을 이하고 저들을 바르게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교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 '어떻게'에 대해서 무지합니다.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기 기준에다가 아이를 끼워 맞출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 자녀에게 사고가 일어납니다.

어느 박물관에 하루는 이상한 관람객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겉은 멀쩡하게 생긴 신사인데 쪼그려 앉은 채 앉은뱅이 걸음으로 관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처음에는 앉은뱅이인 줄 알았지만 돌아갈 때 보니 여느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진 수위가 신사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선생님, 건강하신 분이 왜 그렇게 앉은뱅이 걸음으로 관람을 하셨습니까?"그러자 신사는 빙그레 웃으며 "내일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대답하고 돌아갔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그 이상한 신사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이끌고 박물관을 견학을 왔습니다.바로 이 신사가 '눈높이 교육'으로 유명한 피바디 선생님입니다.

누가 좋은 선생입니까?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는 선생입니다. 누가 좋은 부모입니까?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어주는 부모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된 우리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어서 무지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함부로 대함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른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온 아이들을 꾸짖었습니다.아이들이었기에 함부로 대한 것입니다.우리 어른들은 보통 아이들을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대부분의 부모들이 일단 꾸짖고 억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그러나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부모의 함부로 대함으로 인하여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또 사랑하기 때문에 함부로 해도 된다고 잘못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자녀들이 비록 어릴지라도 저들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들입니다.물론 아직 미숙한 인격이기 때문에 저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때로는 꾸짖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매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고 교훈하고 심지어 매질을 할 때에도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하고 예의를 갖추어 주어야 합니다.아이들의 인격을 함부로 무시하고 무례함으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반항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저들이 부모들의 말을 잘 들으려고 않고 반항하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꾸짖음과 매 때문이 아닙니다.부모들이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을 대할 때 예를 지켰습니다.사람들이 멸시하는 거지도, 창기들까지도 예를 갖추어 대했습니다.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함부로 대했지만 예수님은 "저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를 다해 대합니다.참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식을 참 사랑한다면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예의는 어른에게만 갖추는 것인 줄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알 때,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의 젊은 신세대들의 자녀 교육 가운데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방임주의 교육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저는 불행한 경향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 부모들과 비교해서 한국 부모처럼 자기 자녀들을 멋대로 내버려두는, 교육의 의지가 없는 부모가 없습니다. 요즈음 한국인들을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많은 책들이 외국인들에 의해서 씌여지고 있고 그것들이 책방에 베스트셀러로 올라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The Times의 기자로 한국에 와서 15년 이상 살았던 한 분이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114페이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끊임없이 응석을 부린다. 특히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일을 참고 미루도록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모든 것을 즉각 마음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단기적인 일에 몰두하고 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곤 한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작년에 베스트셀러로 한국의 여러 계층에 회자되고 있는 그 일본 사람 이께마라 마모루, 그 분이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 책에 보시면 한 장, 한 Chapter의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는 온상 속에서만 자라는 떡잎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질이 별나서 꽤 말썽을 피운 축이다. 친구랑 싸움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내 손을 잡고 그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상대방 집에 찾아가 조건 없이 사과를 해야만 했다. 내 입술이 찢어졌든 터졌든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서야 어머니는 내 상처를 치료해 주셨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한국에서도 아이가 싸우고 오면 상대방을 찾아가는 것 까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단 찾아가서는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키웠기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이 꼴로 만들어 놓았느냐고 언성을 높인다. 그러니 아이 싸움이 곧잘 어른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설사 내가 좀 잘 못 했다 해도 내 뒤에는 부모가 버티고 있고 언제 어디선지 내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 행동에 잘잘못을 판단할 정도로 철이 들었는데도 정작 부모 눈에는 아이의 잘못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요즘 부모들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난리를 치고 떠들어도 혼내지를 않습니다. "애들 기가 죽는다나요!" 잘못 키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백지와 같아서 본대로 들은 대로 따라합니다.유치원에 갓 입학한 다섯 살 난 꼬마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소 싶어서 선생님에게 다급하게 말했습니다."선생님, 저 고추에 오줌이 마려워요, 금방 쌀 것 같아요" 아이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유치원 선생님은 화장실로 보내기 전에 훈계를 했습니다. "용식아, 여자친구들이 많은데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요.!" "그럼 어떻게 말해요?" "그럴 땐 '휘파람을 불고 싶어요'라고 하세요. 그날 밤, 꼬마는 잠을 자다 오줌이 옆에 자고 있던 엄마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엄마, 나 휘파람 불고 싶어요!" "뭐 휘파람?  밤에 웬 휘파람? 그냥 자!" "아이 엄마, 너무 급해, 꼭 불어야 한단 말이야!" 그러자 몹시도 졸린 표정으로 엄마가 말했습니다,."얘가 왜 이래? 정 불고 싶으면 엄마 귀에다 대고 살짝 불어!" 아이들은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와 같습니다.그 백지 위에 가장 많은 그림을 그려 넣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 부모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말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말, 긍정적인 말, 약속을 지키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온 부모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저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고, 주님의 기도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목사님께서 심방을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 합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축복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면 그것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열심히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키면 훌륭한 자녀들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보다 중요한 부모의 책임은 저들에게 세상과 인생 그리고 신앙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와 영적인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생의 스승으로 만난 자녀들이 복이 있습니다.부모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받고 축복 기도를 받을 수 있는 아이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축복 가운데 잘 양육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훌륭한 일꾼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녀 교육에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공부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여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들의 심리와 성격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그와 같은 진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법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자녀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 말 한마디라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록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유혹이 많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들로 키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들의 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서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받으시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홍익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