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어린이주일 설교] 기독교와 어린이, 김홍도 목사 설교

'코이네' 2014. 5. 2. 14:25

마태복음 18장, 어린이주일 설교, 대학 합격하면 교회 나오겠다는 아이


기독교와 어린이  
본문  마18:1-10
금란교회 /김홍도목사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기요, 19C는 여자를 발견했고, 20C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전에 사람 수에도 들지 못하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에 편지하기를 "만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 라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면 버리시오"하고 펴지 했고 세네카는 "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은 우리는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들과 여자들은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사상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한번은 많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짖으며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때에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장 16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 어린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유리 조각을 주우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몹시 사나운 주인집의 유리병을 잘 못하여 깨뜨려서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기에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내일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이 마침 자기의 연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게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키울 때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 학교 어린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추운 겨울 새벽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내복을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입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마자 "아침부터 어린것이 어른의 옷을 왜 입고 있니?" 하고 꾸짖었다고 하니 그 어린 동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이 열등감이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고민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해도, 운동에 우승을 해도, 모형 비행기를 잘 만들어도 부모가 칭찬은 해주지 않고 만족하지 못하다는 듯이 트집만 잡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청년은 만사에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할 때에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교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반항적이고 불평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칭찬해 주면 교만한 성격이 자리잡게 될 염려도 있기는 하지만, 부모가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대단히 주요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안아 주며,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나 뺨에 뽀뽀해 주거나 어깨를 툭툭 치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 사랑의 채찍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많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인데, 그녀는 말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기르는 것이 된다."고 했고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무법천지처럼 되어 가고 자식이 부모를 구타하거나 죽이기도 하는 등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각하게 증가되고 악화되는 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교육 철학 자체가 잘못된 이유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체벌을 못하게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내버려두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규휼이나 사회의 규율을 어겼을 때는 고통이 오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②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③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징계해야 합니다.
④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를 해야 하고 제자리에 돌려놓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집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면회를 청하더니 철창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더랍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어려서 물건을 훔쳐 와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자기가 결국 사형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방법이나, 방안에서 혼자 벽을 향하여 한 시간씩 앉아서 반성하게 한다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루나 한 두시간 못하게 한다든지, 회초리를 따끔하게 때려서 깨닫게 해 주는 방법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때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평생에 몇 번, 꼭 필요할 때 채찍을 들 필요가 있습니다.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를 때려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감정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어야지. 화풀이로 때렸구나 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도끼나 칼을 가지고 쫓아다니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② 공평하게 징계해야 합니다.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많이 때리거나 하면 자녀가 감정을 사서 더 삐뚤어진 길로 가게 됩니다.
③ 징계 받는 이유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을 주면 징계가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갖게 합니다.
④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는 역성을 든다던가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머니는 때리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를 나무란다던지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⑤ 매를들때 욕구 불만을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만 하지 말라. 매를 쥘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고 자녀에게도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⑥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로 용서해 주고 끝나야지 한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말하면 안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한번 회개하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⑦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데서 벌을 줘야지 사람이 많은데서 망신을 주면 안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으며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식들은 한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3. 부모가 생활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은 자녀들이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지만 눈을 보는 것은 결코 잊지 않고 깊은 감화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진실한 신앙생활과 헌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자녀는 속이지 못합니다. 자식들 보는 데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 정성껏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것이 백번 말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꿈에도, 교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 지키지 않으면 부모의 위신도 떨어지고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잘 생각해서 줘야 할 것은 약속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드시 시행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됩니다. 말만해 놓고 내버려두면 부모의 말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적당히 기회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합니다. 또 시행하지 못할 것은 명령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4.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그 집에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합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