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24:1] 성막과 피

'코이네' 2020. 8. 10. 17:13

성막과 피

출 24:1-11


  어제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여름성경학교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금년도 여름성경학교 주제가 ‘모든 생명 귀한 생명’입니다. 최근 몇년간 성경학교 주제는 인권, 환경, 공해 문제 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 열악하다는 반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에서 일곱번이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으니 인간에게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겠습니까? 그 아름답던 환경이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도 흉칙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만들고 유지하시는 창조질서를 이해하고 환경을 돌보고 가꾸는 노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극은 모든 부분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에덴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자유를 허락하셨지만 유일하게 금령으로 선악과만을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율법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마귀와 함께 멸망당할 운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마땅히 죄와 허물 속에 죽어야할 인간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죄인된 인간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를 만나도록 하나님은 인간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면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죄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목마르면 물을 달라고 합니다. 굶기면 밥을 달라고 합니다. 율법을 줘서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자를 필요로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바로 알면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장에서 23장에 걸쳐 613가지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이 모든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때에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 말합니다. 이때에 모세는 소를 잡아 받은 피를 백성에게 뿌립니다. 두 번에 걸쳐 피를 뿌린 뒤 모세는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말씀합니다. 모세는 자기가 할 말을 행동으로 한 것입니다. 모세가 피를 뿌린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인간은 한가지 율법도 못지키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613가지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니 기가막혀 말이 안나옵니다. ‘너희는 결코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고 대속의 피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하는 의미로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전체 40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장에서 23장까지는 율법 613가지를 수여하는 내용입니다. 25장에서 40장까지는 성막건축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24장이 가리키는 내용은 인간은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고 대속의 희생을 통해서만 구원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4:16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에서 부르시고 성막을 계시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이 성막이 상징하는 의미입니다.

 

1.성막은 율법의 마지막이며 복음의 시작입니다.

  율법으로 구원 받겠다고 이스라엘 백성이 외칠 때 “너희는 결코 그렇 수 없다”말씀하시며 하나님은 성막을 제시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은 성막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행위로 다른 종교로 구원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눅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다시피 하여 먼 외국에 나가 허랑방탕하여 모두 잃게 됩니다. 그는 돼지를 치는 사람에게 붙어 살아갑니다. 꿀꿀이 죽을 먹습니다. 때로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 마저도 주는 사람이 없어 먹지 못했습니다. 쥐엄열매는 처음에는 달착지근하나 나중에는 모두 토하게 되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열매입니다. 그 열매마저도 주는 사람이 없어 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일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주여, 제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 아니면 제게 죽음을 주옵소서” 기도했던 존 녹스(Jhon Nox)는 이 장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조금 배고프면 돼지를 찾는다. 그러나 너무 배고프면 아버지를 찾는다” 참으로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우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감기에 걸리면 약국이나 병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암에 걸리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작은 일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절망적인 문제는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옵니다. 천원 이천원 필요하면 친구를 찾습니다. 그러나 100만원이 필요하면 부모님에게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관계없이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찾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막은 율법이 아니고 복음입니다. 스스로 율법을 지켜 구원얻을 육체가 아무도 없습니다. 죄인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인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대신 피흘려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막은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얻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며 복음으로만 구원얻을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율법의 마지막은 복음의 시작입니다. 왕은 백성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페르시아의 왕이 어느날 궁궐 앞에 있는 1M 되는 나무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면 큰 상금을 주겠노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그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인지라 백성들이 웃으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한달 후에 다시 동일한 방을 붙였습니다. 궁궐 앞을 지나던 바보가 이 방의 내용을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고는 나무를 옮겼습니다. 왕은 자기를 믿어준 그 바보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었습니다. 왕의 말을 믿어주었기에 왕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믿을 때만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2.성막은 피로 시작하여 피로 끝을 맺습니다.

  성막 안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사장도 피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죄사함을 받기 위해 제사드릴 때는 네가지 동물만 사용되었습니다. 양과 염소와 소와 비들기입니다. 죄인은 동문 앞에서 제사장에게 자신이 끌고온 양을 인계합니다. 이때 제사장과 더불어 안수하는데 안수의 의미는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북쪽에 가서 짐승의 가죽을 벗깁니다. 위선과 가식을 벗는 것입니다. 팔과 다리를 끊어 냅니다. 나쁜 장소에 가고 불의한 일을 일삼았던 죄가 벌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장을 꺼내어 물로 깨끗히 씻어 냅니다. 그리고 번제단에 드립니다. 이때 하늘에서 불이 내립니다. 나팔수가 동서남북에 나팔을 불어 죄가 사해졌음을 알립니다. 성막은 문앞에서부터 피투성입니다. 세마포에 피를 바르고 제사장은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분향단에도 피, 법궤에도 온통 피투성입니다. 동서남북 모두가 피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성막은 피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은 범죄할 경우 인간에게 사망이 찾아올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사 하나님 자신도 뒤집을 수 없습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무죄가 피가 죄지은 피를 대신해야 비로소 구원은 가능합니다. 성막은 인간의 죄를 피를 통해 사하시겠다는 약속의 장소입니다. 성막은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피로 범벅이된 장소입니다.

 

3.성막은 교만의 마지막이요 은혜의 시작입니다.

  인간은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인간은 ‘당신은 죄인이요’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 화를 냅니다. 십계명에서 1-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관한 계명입니다. 5-10계명까지는 인간에 관한 계명입니다. 하나님께 관한 잘못은 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잘못은 악입니다. 인간은 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공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그의 의를 하나님도 사단에게 자랑하셨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의 이유를 하나님 앞에 따져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공의를 어느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를 왜 미워하시는가?를 묻는 것은 왜 꾀꼬리가 노래하는가를 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 밥을 안먹으면 배고픈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절대공의를 인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하나님의 공의 앞에 인간의 죄악을 참소합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변호하십니다. 지옥가야 마땅하지만 내가 그를 위해 대신 죽었습니다. 자녀의 빚은 부모가 갚아 줍니다. 주님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십니다. 한가지 율법도 못지킨 인간이 613가지의 율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뻔히 못할줄 알면서도 자식이 내가 하겠다고 고집부리면 부모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교만을 포기하고 복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6일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으나 성막을 계시하신 것은 40일간이었습니다. 만드는 것보다 고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습니다. 고장난 나를 스스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나를 포기하고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스스로의 무력함을 절감하시고 주님 품에 안기십시오. 내가 하겠다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것 다 맡겨야 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피를 뿌린 것은 인간은 복음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은혜로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4.성막은 지옥의 방파제요 천국의 정거장입니다.

  모두가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야할 운명이었으나 짐승이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주님이 담당하셨습니다. 불신자들을 볼 때마다 저는 저 사람지옥구경 한번 한다면 당장 예수 믿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앙인으로 나태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저사람이 천국을 본다면 얼마나 충성된 일꾼이 될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성경책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으로 읽으니 실감이 잘 안나고 그나마 잘 읽지 않으니 무지하기에 신앙이 나태해집니다. 신앙의 고삐는 느슨해지지 않도록 언제나 바싹 조이시기 바랍니다. 사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은 주변적인 내 상황을 바꾸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천국과 지옥을 알 때 가능합니다. 주님을 통해 영생을 소유할 때만 참행복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이 당신의 모든 불행을 막아 주십니다. 매일 매순간마다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이 당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막아 주시겠다고 당신 앞에 서서 그 구원의 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겠다는 교만을 꺽으십시오.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십시오.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겸손은 자기가 하겠다는 교만보다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막은
첫째, 율법의 마지막이요 복음의 시작입니다.
둘째, 피로 시작하여 피로 끝을 맺습니다.
세째,  교만의 마지막이요 은혜의 시작입니다.
네째, 지옥의 방파제요 천국의 정거장입니다.
  성막의 실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의 생명과 참된 행복을 소유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