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재물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출 16:13-20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거주했던 애굽 땅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황량한 광야로 접어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새로운 땅,가나안 복지(福地)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믿음의 행진을 계속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난 부분이 있었으며,변화되지 않고 또 앞으로 변화될 수도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그들이 서 있는 위치였습니다.신앙을 갖기 전의 그들의 위치는 애굽이었습니다.그러나 믿음을 지닌 후 그들은 광야라는 새로운 장소로 나왔습니다.아무런 변화가 오지 않은 부분은 그들이 입고 있는 육신이었습니다.애굽에서나 광야에서나 동일한 육체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하나님을 믿는 새 마음으로 새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들의 육신은 이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자신들의 육체가 필요로 하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광야에서도 동일하게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고기를 달라,떡을 달라,물을 달라….이 욕구는 그들의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비록 하나님과 함께하는 광야로 나왔지만 육신의 욕구와 필요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여전히,아니 더욱 강렬하게 육신의 필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양면성을 지닌 채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후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를 맺어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신자에게는 변화된 부분과 변화되지 않고 변화될 수도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영적 위치입니다.심판받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의 위치에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러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품속으로 옮긴 것입니다.그러나 변화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그것은 자신이 입고 있는 육신입니다.하나님을 믿더라도 육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즉,육체가 지닌 속성들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도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사회에서 얻고 싶은 것들을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느끼고 필요로 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잘 먹고 싶고 잘 입고 싶고 편리한 집에 살고 싶고 훌륭한 사회적 지위를 얻고 싶고 본능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싶은 욕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갈망하는 육신의 욕구와 필요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물과 고기와 떡을 달라고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그들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간구대로 먹을 것을 공급하셨습니다.고기로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 주셨고 떡으로는 만나라는 신기한 떡가루를 내려 주셨습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필요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며 살기를 원치 않으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원하는 육신의 필요들을 채우게 되기를 바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육신의 필요들을 얻게 되는가를 가르치셨습니다.또한 불신자가 육신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방법과 그리스도인의 방법은 근본적으로 다름을 가르치셨습니다.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필요를 만족시켜야 합니다.그러나 불신자와 그리스도인이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길은 서로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14-16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이스라엘 민족이 필요로 한 것은 떡을 만들 재료였습니다.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신 하나님은 새벽 미명에 이슬과 함께 천막 밖 들판에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그리고 한 사람에 한 오멜(에바의 10분의 1,즉 2.3㎖)씩 취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강조되는 점은 거둘지니라는 말씀입니다.행동하라는 것입니다.백성들의 의지를 촉구하는 것입니다.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노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 때에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던 것이었습니다.그들은 자신들의 수고의 대가로 애굽에서 고기와 곡식을 넉넉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는 당연히 자신들의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바로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거두어들이는 행동을 명령하셨습니다.사실 들판에 먹을 것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천막 안에도 그와 같이 하실 수 있으십니다.그런데 천막 밖에 만나를 내리시고 그들의 노력을 동원하라고 하십니다.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는 기적을 베푸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만나를 주워 모아야 할 일을 주시는 이유는,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은총과 기적의 가운데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은총과 기적을 직접 체험하는 데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땀과 수고가 필요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여 살리시고 물질을 주시며 도움의 손길을 펴신다고 해서 안방에 저절로 먹을 것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그분은 모든 것을 준비하여 놓으신 후,우리가 사회와 직장과 일터에서 수고하고 노력하여 필요를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오늘날 땀 흘리고 애쓰고 수고하는 것은 이미 도움의 손길을 펴신 하나님의 은혜를 주워 모으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주워 담는 장면에서 이스라엘에 커다란 잘못을 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7,18절을 봅시다.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만나를 줍는 무리들은 많이 거둔 자와 적게 거둔 자로 나뉘었습니다.여기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많이 거둔 자들입니다.하나님은 분명히 사람 대로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는데 한 부류의 사람들은 많이 거두었습니다.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많이 거두어 들였을까요? 많이 거둔 자들은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이 노력하면 그만큼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열심히 벽돌을 굽고 일하면,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가를 받던 습관에 젖어 있었습니다.이 습관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더라도 자신이 노력하면 그만큼 더 소유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남보다 더 많이 거두려고 달음질하고 애쓰고 땀 흘렸지만 결국 다른 사람과 동일한 양을 거두게 되었습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한다 할지라도 소득이 없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 살 때는 자신들이 땀 흘리고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었습니다.그러나 애굽을 떠나 광야로 들어온 후로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새로운 삶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하나님께서 이 점을 가르치기 위하여 말씀을 어기며 만나를 많이 거두려고 애쓴 자들의 수고를 무위로 돌리셨습니다.이것은 오늘날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노력하고 수고하는 대로 그 무엇을 성취하고 소유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헛수고가 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들인 수고나 노력은 어떤 좋은 결과도 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알아야 할 새 삶의 법칙 두 가지가 있습니다.이제 그 두 가지를 살피면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물질관을 세워봅시다.
하나님의 허락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한 수고와 노력은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습니다.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까지 무언가 소유하고 성취했다 할지라도,오래가지 않아 품에서 떠나갈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육신의 필요를 채우며 살았습니다.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신 일반 법칙은 노력한 대로 대가를 얻고 사는 것입니다.특별히 사회의 구조적인 악이나 나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노력한 대로 대가를 얻고 사는 것이 세상에 세우신 하나님의 일반 법칙입니다.이런 법칙 아래서 생활하던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저변에는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무엇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이 생각이 신앙 생활에도 연결되어 나타납니다.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적절한 환경과 기회가 주어지면,자신의 육신의 욕구를 넉넉히 채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필요만을 충족시키고자 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달려가는 삶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무엇인가 세상의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그것을 차지하고자 합니다.이스라엘 군중들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가며 만나를 많이 거둔 자들처럼,자신이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까지 억척스럽게 재물을 모으려고 합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즉,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삶의 법칙이 적용되는 영적 광야에서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노력도 헛수고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수고하고 애쓰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사장이 부하 직원에게 주일 날 낚시하러 가자고 제안할 때,거절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사업의 성패가 달린 시점에 거래처 사람이 술자리를 함께하자고 하면 누가 거절하겠습니까? 주일 아침에 중요한 회합을 갖자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왜 거절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대로,인간의 수고가 부족하더라도 채워질 수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3절은 비록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울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요한복음 21장 3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떠나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고자 수고하나 결국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베드로와 제자들의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이스라엘 백성들은 들판에서 만나를 주울 때,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양(量)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했습니다.그리고 눈앞에 아무리 많은 만나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양을 다 주웠으면,더 거두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항하여 꿈과 이상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그러나 그 꿈과 이상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기 전에 두 가지 사항을 마음판에 새겨 두어야 합니다.첫째,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둘째,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활동하고자 하는 자신을 절제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당신은 육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수고할 때,그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에 대해 강하게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가면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성취하고자 애쓰는 것은 아닌지,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절제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만일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이라면,지금 당신은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당신은 당신의 노고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거나 괜한 고생만 했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그런 상황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하여 함께하시는 은혜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면,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필요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충족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기를 원하십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얻는 성공이나 안정은 당신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지녀야 할 첫번째 자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19절 말씀을 보십시오.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날 거둔 만나를 그 날 다 먹어 없애기를 원하셨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튿날 아침에 또 만나를 내리실 계획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을 마칠 때까지 매일 아침 만나를 내리기로 예정하셨습니다.그러기에 아침까지 만나를 두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아침까지 만나를 두었습니다.그 결과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남겨 두었던 만나는 버려야만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아침까지 만나를 보관했을까요? 이들은 다음날 만나가 또 내린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미리 양식을 저축한 것입니다.이들은 밤에 간직해 놓은 음식이 없으면,다음날 먹을 것이 없을까봐 불안해서 견디지 못했습니다.만나를 간직하지 않고서는 내일을 맞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이 어리석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앞일을 의탁하기보다 만나를 보관함으로 미래를 준비하였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소유한 물질로 내일의 생활을 대비하고자 하였습니다.이들에게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믿음이 부족하였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간직한 만나에 벌레가 생기게 하시고 썩는 냄새가 나게 하여 먹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저축한 일에 분노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질로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보셨던 것입니다.하나님보다 자신의 소유를 더 의지하는 마음이 잘못입니다.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육신의 필요를 만족시킬 때 지녀야 할 새로운 자세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즉,현재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 아니라 오직 살아 계신 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지금 당신이 누리는 성공,물질,명예,행복은 다가오는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거나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 아닙니다.당신의 미래에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는 분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구주되시는 예수님만이 당신의 앞날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수 있습니다.오늘날도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한 무리처럼,전능자 하나님보다는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성취하고 이루어 놓은 일들로 자신의 앞날을 안심하고 희망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있습니다.그런 사람들은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악착같이 일합니다.열심히 돈을 모으고 사회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사업을 번창하게 하고 집을 사는 등,물질 추구에 여념이 없습니다.만나를 남겨 둔 것으로 내일 일을 대비했다고 안심하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일하게,이런 사람들도 앞날에 대하여 안심합니다.이것은 올바르지 않은,변화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앞날에 대하여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편안히 잠자며 여유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물질을 어느 정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웬만한 재산과 기반 잡힌 사업이 있고 안정된 직장이 있고 남들이 보기에 부러운 집에서 살고 있어 부족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내일 일을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에 떠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가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입니다.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멀리 있을 때 미래를 보는 눈은,오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에 의해 좌우됩니다.이런 태도는 신앙 생활에도 영향을 끼칩니다.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도 가진 것에 따라 안심하고 뿌듯해 하거나 불안해 하고 근심하고 염려합니다.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아 신앙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그러한 미래관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그분은 바로잡기를 원하십니다.그리하여 현재 의지하고 있는 물질을 잃게 하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막지 못합니다.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듯이,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을 못 쓰게 만드십니다.물질과 지위와 명성을 잃게 하십니다.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까지 거두어 가십니다.미래를 보는 새로운 자세를 취할 때까지 육신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게 하십니다.그리고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겠다는 각오를 하기 원하십니다.성경에는 많은 소유로 인하여 자신의 미래를 안심하고 있는 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하나님께서는 소유물을 거두어 가시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영혼의 거둠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십니다.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뉘것이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19,20).당신은 미래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안심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이 가진 물질과 지위가 흡족하여 안심합니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서 불안하고 얼굴에 평안이 없습니까? 그러한 마음 자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으면,그처럼 의지하고 든든히 여기던 것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때가 올 것입니다.아무리 애써도 그것들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비록 앞으로 다시 얻는다 할지라도 머지않아 또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것을 모으고 좋은 자리에 앉게 되더라도 마음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두십시오.당신의 재산이나 지위가 당신의 미래를 확실히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오직 하나님만을 의탁하는 믿음을 간직하십시오.당신을 구속(救贖)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십시오.비록 당신이 가진 것이 없더라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으며 그분께 미래를 의탁하십시오.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당신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킬 때 비로소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소유에 대한 당신의 새로운 마음 자세를 보고 싶어하십니다.지금 그 마음이 당신의 생활에 자리잡게 하십시오.그러면 당신의 삶에 기적의 만나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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